실패란 다시 시작하겠다는 말

케이크를 굽고 글을 씁니다

by 춤추는바람



"난데, 가게 권리금없이 내가 아는 부동산에 내 놓아도 돼지?”

"네, 그러세요.”

가게 주인 아주머니의 전화에 흔쾌히 답했다.



4월에 만기였던 가게는 코로나로 인해 보러 오는 사람의 발길이 뚝 끊겨버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다음 세입자는 영영 오지 않을 것 같고 더 이상 버티기는 힘들 것 같아 7월에는 가게를 빼기로 했다. 그 사이 권리금과 초기 투자 비용에 대한 미련도 접었다. 가게를 정리하기로 마음 먹고 나자 아쉬움도 접혔다. 오히려 하루 빨리 정리하면 후련하겠다 싶었다. 그러니까 7월이 되면 내 인생에 실패담이 하나 더 늘어날 것이다. 손해를 보고 물러 선 일이 하나 더 생긴다. 그런데 말이다, 하루 빨리 그날이 오면 좋겠다.



실패하기로 마음먹었더니 다 괜찮았다. 실패하겠지만 무언가 남을 테니 말이다. 한 번 해보았으니 또 한 번 못하겠나 싶고. 퇴사하고 창업하고, 망하기까지 했으니 더 해볼 수 있겠다는 이상한 자신감도 생겼다. 실패가 끝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실패야 말로 다시 뛰라는 신호라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십 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의 우울증에서 헤매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베이킹 스튜디오를 열었다. 하지만 첫 욕심에 큰 공간을 잡은 게 문제였다. 세가 높고 손 갈 데도 많았다. 만기가 다가오자 이 가게는 정리하는게 맞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베이킹을 계속하더라도 좀 더 작은 공간에서 하는게 맞았고.



가게를 접기로 마음을 굳혔더니 코로나 19라는 전염병이 돌았다. 가게를 보러 오는 사람은 눈을 씻고 보아도 안 보였고 하염없이 날짜만 흘렀다. 권리금과 투자 비용에 대한 아쉬움에 인계할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버텨 보자 생각했는데 봄이 지나도 별다른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가게를 접기로 마음을 먹었다.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자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실패를 두려워했다면 회사를 그만둘 수 있었을까. 실패를 피하려고만 했다면 가게를 열 수 있었을까.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가게를 닫을 수 있었을까. 가게를 닫지 않았다면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돌아보니 실패가 모든 도약을 만들었다. 내 인생이 한 뼘 씩 자란 자리에는 실패라는 마디가 있다. 나를 자라게 한 것은 성공이 아니었다. 성공 이야기는 성공으로 마침표를 찍지만 실패의 서사는 실패했기에 다시 시작될 수 밖에 없다.



금정연 작가는 <담배와 영화>(시간의 흐름)에서 픽션은 현실을 현실로 수선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현실로 현실을 수선하며 가장 진짜 같은 픽션을 만들려면 반복은 필수라고. 결국 그 일에 실패하고 말더라도 중요한 것은 끝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픽션)의 과정 속에 있다고 말이다. 이야기(픽션)를 만들어 가는 과정 중에 혹은 이야기(픽션)가 만들어지면서 이미 ‘삶은 견딜’만한 것이 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담배와 영화>에서 금정연이 건네는 이야기가 내겐 이렇게 들렸다. “어차피 우리는 실패할 거야. 하지만 그게 뭐 어때?” 또 한 명의 사무엘 베케트를 만난 기분이었다.



"실패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린 이미 실패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실패하더라도 지금의 우리와 그리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 페드로 알모도바르 <담배와 영화> 금정연, 시간의 흐름



금정연도, 페드로 알모도바르도 실패 따위는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 말에는 패배감보단 무심한 의연함이 감돈다. 실패를 두려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 실패를 하더라도 반복에 반복을 더하겠다는 무모하지만 멋진 용기가 느껴진다. "현실을 현실로 수선하기"라는 금정연식 픽션 정의를 삶에 대한 정의로 재해석해 본다. 오늘을 오늘로 수선하기. 즉 실패한 ‘오늘’을 내일이라는 ‘오늘’로 수선하기. 그렇게 반복하면서 우리는 더 나은 오늘에 다가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인생은 계속되는 동안 계속"될 테니까 말이다.



가게 문을 닫았다. 나는 실패했다. 하지만 인생은 거기서 끝나지 않더라. 삶은 계속되고 오늘은 반복되었다. 그래서 어제의 실패를 오늘로 수선하고 있다. 오늘 또 실패하더라도 내일 다시 수선할 것이다. 중요한 건 실패한 오늘이 아니라 수선을 지속해갈 내일이다. 다시 시작할 내일을 기다리며 더 나은 실패를 만드는 것이다.



실패는 다시 시작하겠다는 말이라는 걸 실패를 반복하는 사이 배웠다. 그러니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인생은 계속되는 동안 계속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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