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를 굽고 글을 씁니다
나이가 들어 배우고 즐기게 된 것이 있다. 베이킹이 그렇고, 꽃과 그림, 도자기 등, 손으로 만드는 일이다. 예전에는 잘하지 못하면 즐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즐기는데 필요한 건 잘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가끔 드로잉을 한다. 내세울 만한 실력은 아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린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림 같은 건 잘하는 사람이나 그리는 거라고 생각하듯 나 또한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왔다. 나이가 들고 타인의 시선을 덜 의식하게 되면서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제약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두려움을 키워 시도조차 못했다. 하지만 전문가가 될 게 아니라면 꼭 잘해야 되는 건 아니다. 잘해야 한다는 압력만 없어도 새로운 시도는 훨씬 쉽다. 그렇게 시작한 일에서 즐겁고 재밌는 경험이 쌓였다. 그림이나 악기, 운동이든 뭐든지 시도해 볼 수 있다. 무언가를 하는데 필요한 건 잘하느냐가 아니라 즐길 수 있느냐라는 걸 알면 시작이 쉬워진다.
그림 그리기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화가가 되겠다거나 그림으로 인정받겠다는 욕심이 없으니 잘 그리지 못해도 그리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그리는 행위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번은 작은 촛대를 그려보고 싶어 책상 위에 촛대를 놓고 그림을 그려보려 했다. 하지만 선뜻 선이 그어지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려 하자 익숙했던 대상이 점점 낯설어졌다. 몇 년 동안 보아왔던 친숙한 물건인데 눈앞에서 멀어지듯 아득하고 생경하게 느껴졌다. 손을 움직이지 못한 채 펜을 들고 한참 촛대를 뚫어져라 바라만 보았다.
얼마나 길쭉한 거지?, 기둥에서 손잡이가 차지하는 비율은?, 타버리고 남은 초의 길이는?, 나선형으로 꼬인 장식은 몇 개지?, 꼬임은 어떤 식으로 이어지는 거지?......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촛대는 알고 있던 그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무언가가 되었다. 그동안 보았던 것은 촛대의 대략적인 실루엣이거나 이미지화시킨 촛대 비슷한 무언가였는지도 모르겠다. 본다고 보았지만 다 보지도, 제대로 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밋밋한 쇠줄이라고 생각했던 꼬임의 가장자리에 정교한 파임이 있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선형의 꼬임과 꼬임이 연결되어 전체를 이루는 모양을 눈으로 완전히 더듬어본 후에야 펜을 든 손이 움직였다. 펜을 잡고 앉은 후 이십 여분이 흐른 뒤였다.
하지만 한 번 시작하고 나니 어떻게든 선은 계속 더해지고 더해졌다. 선과 선이 절대 연결될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손은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온 정신은 눈앞의 사물과 펜 끝에서 그려지는 가느다란 선에 집중했다. 그동안은 촛대와 드로잉 북, 그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펜과 손만 남고 나머지 세상의 모든 것은 정적 속으로 사라졌다. 아니 잊혔다. 그리고 결국엔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무엇이든 시작은 늘 어렵고 힘들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움직임은 계속되기 마련이고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완성 혹은 끝에 다다르게 된다. 몇 장의 그림을 그려보고 나니 시작만 한다면 어떻게든 끝까지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럴수록 시작이 쉬웠다. 끝은 시작할 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멋진 경우가 많았고.
친구의 제안으로 겁 없이 시작한 베이킹 수업이 어찌어찌 흘러갔다. 엄마와 아이, 친한 친구들끼리, 아끼는 후배와 함께,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수업을 찾아왔다. 잘 알려지지 않은 초보 파티시에의 수업이지만 꾸준히 사람들이 왔다. 어떤 때는 아이를 데려온 엄마들과 수업을 했다. 꼬맹이들은 엄마가 베이킹하는 걸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다 한 두 번은 직접 휘핑도 하고 쿠키 반죽을 찍어 보기도 했다. 외할아버지께 생신 선물로 드릴 거라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포장을 하는 모습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흐뭇했다. 한 번은 카페 창업을 목표로 한 수강생을 만났다. 배우고 싶다는 열정이 있는 그에게 진중하면서도 단단한 기운이 느껴져 수업하는 입장에서도 기분이 좋았다.
수업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디저트를 만들며 즐거워하는 사이사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고 보니 이래 저래 연결되어 인연이 닿은 사람도 있었다. 직접 아는 사이가 아닌데도 우연한 인연을 믿고 마음을 내어준 사람들이라 더 고마웠다. 수업은 일로서 의미가 있었지만 세상과 소통하며 마음을 나누고 일상에 즐거움을 더한다는 데서 더 중요했다. 내 수업이 누군가에겐 꿈을 실현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겐 베이킹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준다는데 보람을 느꼈다.
수업을 시작하고 세 달 정도 지났을 때 아이가 독감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다. 갑자기 시작한 일이기에 아이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엄마에게 나 좀 봐달라는 듯 병이 났다. 온몸으로 엄마를 멈춰 세웠다. 아이의 입원으로 예정되어 있던 수업마저 취소했다. 사실 나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끼던 때였다. 주말에 하는 클래스는 육아로 갑갑했던 일상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주었지만 주중 육아 후 주말까지 쉬지 않고 달리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베이킹은 장시간 서서 하는 일이라 체력 소모가 컸다. 아픈 아이 곁에 꼼짝없이 붙어있어야 했지만 수업의 압박과 체력 고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게도 휴식이 있는 주말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는 금세 건강을 회복했지만 미리 계획해 두었던 여행으로 이어지면서 클래스는 긴 겨울 방학에 들어갔다. 소모된 체력과 열정을 방학으로 채워볼 심산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휴식이 길어지자 일에 대한 의문과 의기소침, 방황이 자랐다. 베이킹 수업이 하고 싶었던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은 옅어지고 어느새 해야만 하는 책임처럼 어깨를 무겁게 했다. 클래스 공지는 자꾸 미뤄졌다. 그러자 공간에 대한 불만도 생겼다. 수업만으로도 체력 소모가 큰데 수업마다 준비물을 챙기고 짐을 나르는 게 부담을 더했다. 친구의 카페 한편을 빌리는 게 아니라 나만의 공간을 마련해 자유롭게 수업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오랫동안 꿈꿔 왔던 것은 ‘베이킹 수업’이라기보다는 ‘나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고민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그런 마음으로 연말이 지나고 새해가 시작되어도 기운차게 일을 끌고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지난 시간의 의미를 헤아려보았다. 많은 게 탐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족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나만의 이름으로 클래스를 시작했다는 것만도 큰 일이었다. 덕분에 세 달 동안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행운도 누렸다. 모두 대가 없이 기회를 만들어 준 친구 덕분이었다.
고마움을 완전히 갚을 방법은 없겠지만, 마음이라도 전해야겠기에 선물을 준비하고도 차일피일 미루며 전해주지 못한 상태였다. 하루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바로 친구의 카페로 향했다. 전철에 앉아 한숨을 돌린 후 가방에 넣어 온 백지의 카드를 꺼내 무릎 위에 놓았다. 전동차가 흔들릴 때마다 볼펜이 적어 내린 글씨도 흔들렸다. 글쓰기를 배우는 초등학생처럼 한 자 한 자를 정성 들여 적어 나갔다. 그제야 내가 했던 일과 쓰고 있는 문장의 의미가 또렷해졌다.
베이킹 수업을 하고 싶다는 꿈은 품고 있었지만 실현하지 못한 채 긴 시간을 보내왔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실패를 무릅쓸 용기가 없었다.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망설임이 매번 발목을 잡았다. 가게를 얻고 일을 벌이면 그거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 부담이 컸다. 시작이 어려웠다. 그런데 장소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었고 그로 인해 시작할 수 있었다. 친구가 기회를 만들어 준 덕분이다.
수업을 시작하고도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고, 앞으로의 운영에 대한 부담과 고민이 남아있었지만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클래스를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값지다는 걸 깨달았다. 힘들다는 생각이 마음의 부담을 키우는 사이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지난해 나는 커다란 꿈 하나를 이루었다는 것. 내 생에 멋진 한 해로 기록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손바닥보다 작은 카드에 짧은 몇 문장을 적으며 알게 되었다. ‘꿈을 이루었다’는 문장을 카드에 적어 넣자 가슴이 다시 두근거렸다.
당장 계획이 없던 때에도 집 근처에 ‘임대’라고 붙어 있는 가게가 있으면 눈여겨보곤 했다. 가끔 부동산에 들러 가게 자리가 없는지 물어보고 연락처를 남기기도 했고. 그러다 우연히 매물로 나온 카페 자리를 발견했다. 내가 살던 동네는 큰길을 따라 새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안쪽에는 오래된 집과 낮은 상가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골목이 있다. 초등학교로 향하는 언덕길 조용한 모퉁이에 있는 카페 자리였다. 덥석 가계약을 했다. 막상 수업을 해보니 알게 된 어려움과 고민이 있었지만 더 가보고 싶었다. 시작한 모험을 그만 둘 이유는 없었다.
두렵지만 시작했으니 어딘가 닿을 때까지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든 앞으로 가게 될 거라고 믿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시작에는 힘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