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은 용기가 되고

케이크를 굽고 글을 씁니다

by 춤추는바람


아기가 태어나자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아기를 먹이고 재우는 일로 하루가 갔다. 수시로 깨어 우는 아기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수유로 힘들었지만 매일 아기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감동과 기쁨에 사로잡혔다. 잠든 아기를 품에 안고 있으면 한없이 부드럽고 따스한 감촉 속에 행복의 근원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아기가 내뱉는 얕은 숨결에서 생명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느꼈다. 아기를 돌보며 온 마음을 다하는 사이 나를 키우기 위해 다했을 또 하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고 내 안에서 샘솟는 사랑을 통해 모든 생명의 귀함을 다시 배웠다.


물만 줘도 쑥쑥 자라는 콩나물처럼 아기도 하루가 다르게 컸다. 얼굴이 달라지고 움직임이 섬세해졌다. 누워서 팔다리만 흔들다가 어느 날엔 뒤집고 그러다 앉았다. 기어 다니며 집안의 모든 물건을 꺼내 입에 물었다. 뭐든 잡고 서더니 걷기 시작했다. 아이는 생각보다 빨리 자랐다. 아이가 자랄수록 사랑은 커졌다. 멈추지 않고 커지기만 하는 사랑은 엄마가 되고야 경험한 감정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그라드는 게 아니라 쌓이고 쌓여 거대한 산처럼 높아지는 사랑이었다.


아이에 매여 세상과의 만남은 줄었다. 그만큼 내가 경험하는 세상은 좁아졌지만 아이와의 절대적인 만남을 통해 넓어지고 다듬어지는 자리도 있었다. 아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온전히 포용하기 위해 어떤 나는 수없이 희생하고 양보하며 자신과의 격렬한 싸움을 했다. 그러느라 어떤 자리는 메말라 갔다. 아이에게 몰두할수록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심한 갈증을 느꼈다. 아이를 키우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조바심이 났고 ‘나’라는 존재를 잃어버리게 될 것 같아 절망했다.


아이는 몸집이 커지고 걷기 시작했지만 그럴수록 엄마한테 더 붙어있으려고 했다. 이대로 육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웠다. 아이가 웃을 때는 한없이 행복하다가도 울며 떼를 쓰고, 이유 없이 매달릴 때면 지옥이 따로 없었다. 피곤은 쌓여갔고 아이와 밀착된 생활에 숨이 막혔다.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짜증을 쏟아내는 날이 늘었다. 잠든 아이 곁에서 자책하고 우울해하는 밤이 지속되었다. 행복과 불행의 롤러코스터 타기 같은 일상이었다.


몰려드는 불안감과 조바심이 숨통을 조여왔다. 아이를 보살피는 ‘엄마’의 자리 만으로 온전히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알게 깨달았다. 아이와 붙어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말과 행동이 무성의해졌다. 함께 있는 시간의 양보다 질이 더 중요했다. 아이 곁에 ‘행복한 엄마’로 있고 싶었다. 그러려면 우선 엄마가 아닌 나를 보살피고 채우는 게 필요했다. 나만의 시간과 일이 절실했다. 모든 것이 상황을 바꾸라고 아우성쳤다.


때마침 카페를 하고 있던 친구가 공간을 써 볼 생각이 없냐고 제안했다. 영업에 지장을 주지 않게 주말 아침에 베이킹 수업을 해보기로 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절실하던 찰나였다. 아이와 붙어만 있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체감했다. 한동안은 상담을 받을 정도로 우울증의 바닥을 치기도 했다. 더 이상 머뭇거리고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뭐든 해야 했다. 절망이 용기로 바뀌었다. 상호를 만들고 사업자등록을 했고 베이킹을 다시 시작했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수업 공지를 했다. 예전 같았으면 고민하느라 실행도 못했을 일이다. 간절하게 원하면 온 세상이 도와준다고 했던가. 대기 중이던 어린이집에서도 자리가 났다는 반가운 소식이 왔다.


주말에 일하는 엄마가 되었다. 간신히 아이를 재우고 녹초가 된 금요일 밤, 다음날 있을 첫 수업이 버겁게 느껴져 왜 이러고 있나 싶은 마음이 되었다. 그럴수록 기운을 추스르며 원하는 게 무엇인지 질문했다. 내 손으로 반죽을 만들고 오븐에서 구워져 나온 완성된 과자와 케이크를 바라볼 때 은은하게 차오르는 성취감이 있다. 노력에 대한 정직한 결과가 주는 따스한 위로와 내 손으로 만든 과자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먹을 때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다. 베이킹이 처음인 사람들에게, 수업에서의 시간이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이 되고 위안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다. 그러니 무엇보다, 내가 즐거워야 했다. 생각을 되짚다 보니 기운이 되살아났다.


아직도 첫 수업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떨리면서도 신이 났다. 엄마가 아닌 ‘내 자리’를 만들었다는데 뿌듯했다. 장소가 낯설었고 첫 수업이라 미리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시간까지 계산하며 연습해 두었다. 재료와 준비물을 옮겨 두고 시식에 쓸 찻잔과 찻주전자, 포장에 필요한 재료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테이블 위에 꽃을 놓았고 개인 앞치마까지 말쑥하게 다려 마련해 두었다. 들뜬 기분으로 수업이 시작되었고 어떻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끝이 났다. 처음이라 미숙한 점도 있고 예기치 못한 문제도 발견했지만 큰 탈없이 수업을 마쳤다.


첫 클래스를 마치고 나니 앞으로도 그럭저럭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걱정과 두려움이 컸지만 첫 수업을 해내고 나니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성장할 수 있겠다는 믿음도 생겼다. 오랫동안 막연히 생각만 하던 일을 이제야 시작했다. 좋아하는 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작은 공간을 만들고 서로를 위로하는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 그 시작은 베이킹이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겠구나라는 절망이 가장 큰 용기로 뒤바뀌었다. 바닥에서라도 시작하겠다는 무모한 용기가 육아라는 절망 속에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혼자였다면 결코 할 수 없었던 일이다. 회사 업무로 힘든 한 주를 보내고도 주말에 아이를 맡아 주기로 흔쾌히 받아들인 남편과 아무런 대가 없이 공간을 내어준 친구가 아니었다면 시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경력도 없는 평범한 이의 수업에 기꺼이 찾아와 준 사람들, 소문을 듣고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은 지인들 덕분에 새로운 꿈을 향해 한 발 내딛을 수 있었다. 혼자 해냈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을 되돌아보니 많은 이들이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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