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를 굽고 글을 씁니다
일상도 여행처럼
긴 여행은 여행을 일상으로 바꾼다. 짧은 여행에서는 명소를 찾아다니고 하루하루 확실한 추억을 새기려 애쓰지만 장기 여행에서는 하루하루 익숙함을 만드는 것에 마음을 쏟게 된다. 숙소 안에 우리의 물건이 놓이면서 내 집처럼 편안해졌고 단골 빵집과 카페가 생기고 매일 같은 길을 오가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사이 여행이라는 두 글자는 설렘보다 편안함을 입었다. 그런데도 매일의 발걸음 속에서 잠깐의 좋은 시간을 발견하곤 했다. 여행의 막바지에 다다르자 서울의 일상이 그리워졌다.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걸 마음은 알고 있었다. 돌아가서도 여행하듯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서울은 여름의 한복판에 있었다. 수박과 복숭아를 먹고 삶은 감자와 토마토에 바질 페스토를 버무려 냉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옥수수를 쪄 먹고 짙은 녹색의 부추 속에 구운 차돌박이를 숨겨 먹기도 했다. 코를 자극하는 바질의 싱그러운 향기, 새빨갛게 익은 토마토, 톡톡 터지는 옥수수 알갱이, 아삭하게 씹히는 부추에는 여름의 에너지가 담겨있었다. 계절을 닮은 음식을 먹으며 열심히 여름을 먹었다. 해가 뜨고 지는 하루에도 잠깐씩 멈춰 하늘을 보고 바람의 방향을 느꼈다. 그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걸 챙겨 먹고 풍경을 눈에 담는 사이 지나가는 계절에도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되었다.
틈틈이 마카롱과 쿠키를 굽고 빵을 만들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침대 머리맡에 쌓아 두고 마음에 드는 노래를 발견하면 하루 종일 반복해서 들었다. 꽃을 사서 작은 병에 나누어 담아 집안 곳곳에 놓았고 잡지책에서 눈을 끄는 사진을 찾으면 오려내어 벽에 붙여두고 보았다. 오래된 동네의 고즈넉한 골목길을 천천히 걸었고 집 앞 산책길로 자주 나갔다. 매일의 생활 속에 좋아하는 것들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여행에서처럼 잠깐의 좋은 시간이 찾아왔다.
아기가 찾아왔다
여행 막바지는 기록적인 더위로 느슨하게 풀어져 시간을 보냈다. 그때 우리 손에는 납작한 복숭아가 자주 들려 있었다. 작고 납작하고 딱딱하지만 무척 달콤했던 복숭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복숭아를 많이 먹었다. 그런 여름을 보내고 하루를 마감하는 바람결에 가을의 냄새가 묻어날 즈음 반가운 소식을 마주했다. 임신이었다.
결혼 후에도 하고 싶은 게 많고 여행도 다니고 싶어 임신을 미루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임신이 더 어려워졌다. 병원을 다니며 노력해 보아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상심도 컸다. 퇴사를 하고 제2의 인생을 꿈꿨지만 여행을 통해 조급함을 버렸다.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보다 어떻게 가는지가 중요했다. 도착의 성취보다 과정에서의 우연한 만남이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는 걸 배웠다. 원하는 걸 이루려 절절맬수록 우리는 그것과 멀어지는지도 모른다. 임신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았을 때 거짓말처럼 아기가 찾아왔다. 그러니 디저트 샵에 대한 꿈도 잠시 미뤄둘 수 있었다.
콩알만 한 아이를 뱃속에 품고 나도 모르게 복숭아야,라고 속삭였다. 보드랍고 하얀 속살을 가진 복숭아, 발그레한 소녀의 볼처럼 고운 얼굴의 복숭아. 지난여름 내내 열심히 먹었던 복숭아가 떠올랐다. 그중 하나의 복숭아가 내 안에서 싹을 틔운 것 같았다. 나의 아가가 복숭아처럼 곱고 보드랍고 어여쁘길 바랐다.
뱃속에 생명을 품자 보이지 않던 게 보였다. 세상의 작고 연약한 것들로 마음이 쏠렸다. 한 번은 버스를 타고 가는데 혼자 있는 작은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몇 정거장 지나자 아이가 벨을 누르고 뒷 문 앞에 섰다. 연분홍 바지에 진분홍 외투, 진분홍 가방을 멘 아이는 유치원생이거나 고작 해봐야 초등학교 1~2학년정도 되어 보였다. 그런데 기사 아저씨는 차를 세우지 않고 정거장을 지나쳐버렸다.
아이가 작아 눈에 띄지 않았는지 내리는 손님이 없다고 생각했나 보다. 순간 버스 안에 있던 몇몇 아주머니들이 다급하게 아이가 내려야 한다며 큰소리로 외쳤다. 고요하던 버스 안이 술렁였다. 그제야 아저씨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정류장을 조금 지나친 곳에 버스를 세웠다. 뒷문이 열리자 작은 아이가 씩씩하게 버스를 내려 걸어갔다. 아이가 내리고 버스가 다시 출발한 후에도 몇몇 어르신들이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내다보았다. 버스 뒷좌석에 앉아 그 모든 걸을 지켜보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불안과 두려움도
출산이 다가올수록 걱정이 늘었다.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육아를 잘 해낼 수 있을까, 내 꿈은 지켜낼 수 있을까. 누구도 육아가 쉽다고, 애를 낳고도 충분히 너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먼저 엄마가 된 지인들은 늘 힘들다는 말만 입에 달고 살았다. 일상에서 사소한 기쁨을 만들며 나만의 속도를 찾아가는 삶이 순식간에 무너질까 봐 두려웠다.
하루는 고등학교 때 친구를 만나 밥을 먹었다. 일곱 살 딸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고 있는 친구였다. 슬슬 걱정도 되고 우울해진다는 내게 친구는 말했다.
"금방이야, 벌써 훨씬 수월해졌어. 그리고 말이야, 아기가 태어나면 한동안은 정말 행복해.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 행복은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그런 거거든. 그 감정이 점점 일상이 되면서 무뎌지긴 하지만, 그래도 행복하단다. 아이가 생기면 비로소 가족이 완전해졌다는 그런 느낌도 들고, 참 좋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아이가 있는 지인들을 만나면 너도 나도 "한동안은 힘들 거야", "얼마 동안은 눈 딱 감고 살아" 같은 말만 했다. 이미 곁에서 많이 봐 왔고, 많이 들어서 힘들 거라는 걸 짐작하고 있지만, 그 일을 감행하는 건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텐데 누구도 그 비밀에 대해서는 언급해주지 않았다. "아기가 잘 때 제일 행복해요."와 같은 씁쓸한 이야기만 들렸다. 그런 내게 친구가 해준 이야기는 귀를 번쩍 뜨이게 해 주었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친구의 말을 온 마음으로 끌어안았다.
마침표를 향하여
어둠이 내리는 거실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뒷 방 창 밖과 거실 창 밖에서 주거니 받거니 울어대며 집에 가자고 보채는 새소리가 들렸다. 새들이 떠나면 귀뚜라미가 작은 목소리로 귀뚤귀뚤 속삭이기 시작했다. 밤은 소리였다. 어린 시절 어둠이 내려도 외출한 엄마가 돌아오지 않으면 집은 괴괴한 침묵에 잠겼다. 가벼운 바람에도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닫힌 문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런 밤엔 괜히 언니랑 싸우고 서럽게 울었다. 엄마가 없어서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여자는 곧 집이다."라고 앨리스 먼로는 소설에 썼다. 집은 ‘엄마’였다. 어린 시절 엄마가 없는 어두운 집은 쓸쓸하고 슬펐다. 지금은 어둠 속에 혼자 집에 있어도 무섭지 않다. 곳곳에 내 손길이 닿은 공간이기에 어둠에 잠겨도 안온했다. 어느새 내가 집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곧, 엄마가 된다.
나에게 다가올 변화를 기다리며 많이 행복했고 크게 흔들리기도 했다. 알을 낳기 위해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는 어미새의 마음이 그럴까. 그 시간 속에서 내 품은 보드라워졌고 한편으론 단단하게 여물어갔다.
누군가 가족은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라고 썼다. 하나하나 흩어져 있던 개별의 단어가 모여 마침표가 찍히면 새로운 의미를 가진 문장이 탄생한다. 한 명 한 명 개인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가는 게 가족이다. 아이는 그 문장에 찍는 마침표를 닮았다. 아기가 오면 우리 셋은 비로소 문장이 될 테지. 마침표를 향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