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콘을 구워줄게요

케이크를 굽고 글을 씁니다

by 춤추는바람


스콘은 느린산책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클래스 중 하나다. 오픈 초반 디저트를 판매할 때 가장 잘 팔렸던 메뉴이기도 하고. 좋아하는 디저트 중 하나라 가장 많이 굽기도 했다. 스콘을 구울 때면 늘 소설 속 장면이 떠올랐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의 3악장이 흐르고 갓 구운 스콘과 크림, 잼이 놓인 낮은 테이블이. 그리고 실내엔 달콤한 향기가 떠돌았다.


“갓 구운 스콘은 밝고 마른 햇볕 냄새가 났다. 차가운 클로티드 크림과 딸기잼을 스콘 위에 얹어 입으로 가져간다. 온도도 감촉도 각각 다른 단맛이 입안에서 섞인다.
어디에도 군살이라고는 없는 매끈한 피부가 마리코의 윤곽을 만들고 있다. 가는 F 연필로 그린 것 같은 윤곽선 제일 끝에 있는 손가락이 스콘을 잡는다. 마리코는 웃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내 얼굴을 봤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94쪽, 마쓰이에 마사시, 김춘미 옮김, 비채, 2016)


스콘 수업이 있을 때 잊지 않고 챙기는 게 있다. 바로 클로티드 크림이다. 갓 구워 온기를 머금고 있는 스콘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차가운 클로티드 크림을 발라 홍차와 함께 먹는 것이다. 스콘이 맛있게 구워졌는데 클로티드 크림이 없다면? 오늘은 제대로 스콘을 먹을 수 없겠군, 싶어 김이 빠진다. 앙꼬 없는 찐빵을 먹는 기분이랄까. 특히 베이킹 수업의 시식 시간에 클로티드 크림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아무도 기대하지 않고, 심지어 클로티드 크림이 뭔지 모르는다 해도 내 마음은 미안해진다. 수업의 중요한 일부를 빠뜨린 것 같다.


사실 클로티드 크림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고 나서니 2016년 여름이거나 2017년 여름일 것이다. 갓 구운 스콘에 차가운 클로티드 크림과 딸기잼을 얹어 먹는 이야기가 소설에 등장한다. 한 번이 아니라 몇 번 언급된다. 처음엔 그런 게 있나 보다 했는데 다음번부터는 도대체 클로티드 크림이 뭐 길래 스콘을 먹을 때면 항상 등장하는 걸까 궁금했다.


보통의 단어와 일상적인 문장 구조로도 명징하고도 감각적인 글을 지어내기로 유명한 마쓰이에 마사시의 글이다. 군더더기는 없이 가장 정갈하게 다듬어 놓은 장인의 가구 같다. 그런 소설이라면 소재 하나도 허투루 넣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몇 번이나 등장하는 스콘과 클로티드 크림이라니, 궁금한 마음이 스콘을 굽고 클로티드 크림을 주문하게 했다. 스콘을 즐겨 굽고 그 맛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 것도 그즈음일 것이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건축학과를 갓 졸업한 주인공이 흠모하는 건축가의 사무실에서 보냈던 한 시절을 담고 있다. 주인공이 존경했던 건축가는 화려하고 압도적인 건축물이 아닌, 소박하고 단아하면서 주변에 녹아드는 공간을 추구했다. 그리고 쓰는 사람을 배려하는 사소한 장치들이 곳곳에 있는 편안한 집을 지었다. 주인공이 건축에 품었던 지향점이 소설의 문체와 내용 속에도 자연스럽게 배어 있어 두드러지게 눈길을 끄는 부분이 없으면서도 읽고 나면 오래도록 잔상이 남는 소설이다.


그런 소설의 소재로 등장했던 스콘도 같은 맥락 속에서 읽혔다. 특별히 맛과 멋을 내지 않아 소박하지만 맛있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디저트. 스콘을 제대로 구울 줄 알게 되자 책에 쓰인 문장의 진가가 다시 보였다. 잘 구워진 플레인 스콘은 ‘어디에도 군살이라고는 없는 매끈한 피부’와 ‘가는 F 연필로 그린 것 같은 윤곽선’을 가진 마리코와도 잘 어울린다. 그만큼 심플하지만 모자랄 것 없이 충분하다.


테이블에 놓인 희 보얀 크림 덩어리를 가리키며 “클로티드 크림이에요. 스콘과 함께 드시면 맛있어요”라고 이야기해 주면 사람들은 되물었다. “클로티드 크림이 뭐예요?”라고. 그럴 때마다 답이 곤궁했다. “우유를 끓이면 만들어지는 크림이에요. 음, 약간 고소하면서 달콤한 맛이 나는데 스콘과 함께 드시면 맛있어요” 정도의 궁색한 말로 얼버무렸다. 그런데도 크림을 얹어 스콘을 한 입 베어 문 사람들은 모두 맛있다며 감탄을 자아냈다.


클로티드 크림은 저온살균 처리하지 않은 우유를 끓여서 만든 스프레드 타입의 크림을 말한다. 진한 우유의 맛과 향이 나고 버터처럼 고형이지만 크림치즈와 같이 부드러운 질감을 가지고 있다. 연한 겨자색 혹은 진한 아이보리색을 띠고 있으며 영어로 ‘클로티드(Clotted)’가 ‘엉긴’, ‘응고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듯, 가열한 우유가 식으면서 뻑뻑하게 엉겨 붙어 덩어리로 굳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구하기 힘든 크림 중 하나이지만 영국에서는 집집마다 각자의 클로티드 크림 제조법이 있을 정도로 흔하고 대중적인 크림이라고도 들었다.


‘온도도 감촉도 각각 다른 단맛이 입안에서 섞인다’라는 소설 속 문장에 모든 비밀이 있다. 밀가루와 베이킹파우더, 생크림, 버터로 간단하게 만든 스콘에는 또렷하게 튀는 맛은 없다. 오븐에서 갓 구웠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온기와 은은하게 번지는 버터의 향, 겉은 바삭하면서 속은 포슬포슬한 식감만이 애매모호한 ‘맛’을 형성한다. 그 속에는 밀가루와 설탕의 희미한 단맛이 옅게 깔려 있다. 담백한 스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다고들 하지만 맛이 밋밋한 플레인 스콘의 매력은 잼과 클로티드 크림을 만났을 때 더 커진다. 무언가가 조금 더해질 때 은은하던 맛은 다양한 폭으로 진동한다. 온도와 감촉, 단맛의 스팩트럼이 변한다. 그런데 절대 질리지도 않는다.


바삭하면서 포슬포슬하지만 조금 거칠게 느껴질 수 있는 스콘의 식감은 크림치즈처럼 부드러운 클로티드 크림이라는 극명한 짝을 만나 균형을 잡는다. 오븐에서 갓 꺼낸 스콘의 온기와 냉장고에서 꺼낸 클로티드 크림의 차가움의 대비는 또 어떤가. 스콘이 남기는 뻑뻑함을 클로티드 크림이 감싸준다. 씹을수록 입안에 스며드는 밀가루와 설탕의 옅은 단맛에 우유가 응축된 고소 하면서 은은한 단맛이 섞인다. 담백한 스콘과 클로티드 크림이 만나 형성되는 맛은 간의 세기로 따지자면 ‘약’의 단계에 머무르지만 그 안에서 폭이 넓다. 풍성하게 변주되는 맛은 잘 짜인 실내악 곡 같다.


하지만 클로티드 크림이 아무리 맛있다 한들, 잘 구워진 스콘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시작은 ‘갓 구운 스콘’에서 부터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표현처럼 ‘밝고 마른 햇볕 냄새’가 나는 스콘이 있어야 비로소 클로티드 크림이 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오븐에서 막 꺼내 노랗게 반짝이는 스콘 조각에서는 그야말로 ‘밝고 마른 햇볕 냄새’가 난다. 투명하게 밝으면서 바싹 마른 햇볕 말이다. 이보다 더 정확하고 멋진 표현을 생각해 낼 수가 없다. 마른 햇볕 냄새가 좋아 다른 어떤 스콘보다 밋밋한 플레인 스콘을 듬뿍 구워 두곤 한다. 한판 가득 구워 냉동실에 넣어 놓을 때면 괜스레 뿌듯하다.


“섞어서 굽기만 하면 되는데 뭐”라는 마리코의 말처럼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디저트에 속하지만 스콘에서도 밸런스가 중요하다. 입맛에 맞는 최상의 맛을 찾기 위해서는 버터와 생크림의 적절한 비율을 알아야 한다. 어떤 식감을 원하느냐에 따라 반죽의 방식도 달라진다. 기본 중에 기본이지만 계량하고 버터를 쪼개고 반죽을 섞고 휴지하고 굽는 일련의 과정에서 저마다의 충실함을 갖춰야만 최상의 스콘이 구워진다.


화려한 문장과 기교로 멋을 내지 않은 담백한 소설처럼, 기본에 충실해야 진가를 발휘하는 스콘을 나는 아낀다. 스콘이 지닌 친근하면서 모두를 배려하는 넉넉함도 좋다. 한 번 반죽하면 여럿이 나눠 먹을 수 있게 많은 조각이 나오니 스콘 수업을 마치면 수강생들 모두 두 손 가득 스콘을 들고 흐뭇하게 집으로 간다. 그런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내가 바랐던 ‘따뜻한 온기’를 읽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꼭 스콘을 구워 줘야지. 스콘은 늘 나를 더 다정하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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