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안에서 작아지기

어쩌다 캠핑

by 춤추는바람



아무것도 없는 숲 속에서도 아침 먹고 놀다, 점심 먹고 쉬면, 다시 저녁 시간이 돌아온다. 꼬박꼬박 찾아오는 끼니를 해결하며 하루를 산다. 해가 뜰 때 눈을 떠 해가 지면 눈을 감는 단순한 리듬. 다치지 않고 잘 놀다 세끼 밥 챙겨 먹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는 것이 전부. 삶의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떼어내니 그것만 남더라. 먹고 자는 게 인생의 전부구나 싶다. 매일 반복되어 귀찮고 하찮은 일로 여겼던 생활이 사실은 삶의 본질이라고.


삶이란 매일 반복되는 일을 도 닦듯 해나가는 거라던 한 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공부나 일처럼 거창한 것으로 치장하려 애쓰지만 삶의 기본은 먹고 씻고 자는 생활이다. 인생은 그걸로 충분한지 모르겠다.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대단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이 순식간에 뒤로 물러나 버렸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고 무언가를 하면서 하루를 꽉 채우려 했던 것, 책에서 얻는 지식에 몰두했던 것마저도. 삶을 대하던 시선과 태도에서 묶은 각질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


한 달을 이렇게 보내면 무엇이 달라질까. 어떤 걸 얻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다 가도 쓱쓱 지워버린다. 무얼 바라는 것 자체가 평화로운 시간을 훼손할 것 같다. 자기 안의 순리대로 고요히 존재하는 자연처럼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기로 한다. 떠나기 전에는 한 달이 길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별거 아니라는 생각마저 든다. 긴 인생을 생각하면 참 짧은 시간이구나 싶고. 끝없는 바다, 울창한 숲에서는 삶 전체를 관조하게 되는데 백 년이라는 시간도 어찌 보면 보잘것없구나 싶다. 그중에서도 한 달이라면 정말 미미한 정도다. 그건 작은 쉼표라도 될 수 있을까.


최소한의 것으로 충분해지는 연습을 한다. 특별한 활동이나 볼거리가 없어도 그런 걸 찾지 않는다면 주어진 환경 안에서 즐거울 수 있다. 그러다 문득, 서울로 돌아갈 생각이 떠오르면 이후의 삶도 지금처럼 단순하게 만들어야지 싶다. 한 끼 식사에 챙긴 반찬과 그릇, 매일 갈아입은 옷, 집안에 가득 찬 물건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과대하게 삶을 포장한 채로 살고 있었다. 그랬던 포장을 벗기고 가지 수를 줄여야지. 물건이 많아 정리할 게 많고 그래서 번거롭고 귀찮았는데, 물건이 줄면 번거로운 일도 줄어들 것이다. 일상의 일을 간소화하는 대신 본질에 충실하면서 즐겁고 건강하게 행하고 싶다.





세 번째 캠핑장인 이곳은 시드니와 멜버른 사이 에이든(Eden) 근처 뵈와(Beowa) 국립공원이다. 그동안 머물렀던 캠핑장 중 가장 오지라 인터넷이 전혀 터지지 않는다. 샤워 시설이 없고 빗물을 받아 재활용하는 수도 정도가 있고 화장실도 재래식이다. 우리끼리는 샤워하러 바다로 나가는 곳이라고 우스개 소리를 주고받는다. 흔히 보이던 주방 편의 시설이 없는 대신 텐트 사이트마다 캠프 파이어 용 화로가 놓여 있다. 저녁마다 불을 피워 모기를 쫓고 아이들과 앉아 불멍을 한다. 여기 머무는 동안은 세수와 양치만 간신히 할 뿐 그 이상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텐트 사이트 주변으로 높다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몇 분 걸어가면 바다가 펼쳐진다. 몇 갈래 오솔길로 제각기 다른 해변에 닿는다. 아이들이 놀기 좋은 모래 해변과 해양 생물을 관찰하고 낚시를 할 수 있는 바위 해변으로. 파도가 잔잔한 낮은 물에서는 물놀이를 하고 바위가 있는 해변에서는 게와 소라, 조개를 찾으며 시간을 보낸다. 오랜 세월 파도에 깎여 나갔을 바위 절벽에서는 아찔한 감탄이 새어 나온다. 육지가 끝나 바다와 만나는 곳에는 바다를 향해 한껏 몸을 기울인 나무들이 물 위로 가지를 뻗는다. 어떤 나무들은 바다가 그리워 바다를 향해 몸을 구부려 자란다던 최승자 시인의 문장이 떠오른다.


언뜻 황량해 보이지만 빼곡하게 울창한 숲에서는 주머니 쥐와 이구아나가 출몰하고, 온갖 곤충들이 오간다. 밀려오고 밀려가며 무수한 생명을 품고 기르는 바다는 어떤가. 썰물이 남기고 간 물웅덩이 속에는 또 하나의 작은 바다가 산다. 해조류와 소라, 고둥, 바다 달팽이가 바위를 뒤덮고 정체 모를 해양 생물과 작은 물고기 떼가 이리저리 헤엄친다. 깊은 물로 헤엄쳐갔던 제부는 엄청나게 커다란 가오리를 보았다고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는 얼마나 많은 생물을 품고 있을까. 날마다 이런 모습을 마주하니 인간의 이기심과 환경오염으로 ‘위기에 처한 자연’이라는 시선도 차츰 변해간다. 자연이 사라질 거라는 걱정은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비롯된 오만이라는 린 마굴리스의 말처럼. 자연은 이토록 거대하고 막막하여 인간이 헤아릴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는 힘을 지닐 거라고. 우리가 무분별하게 버리는 폐기물로 위태로워지는 건 인간 자신의 운명이지 자연 전체에 해당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인간은 자연을 끝장낼 수 없다. (...)

인간이 사라지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다양한 생물들은) 불협화음과 화음을 섞어가며 계속 노래 부를 것이다. “

린 마굴리스 <공생자 행성>








삼일 동안 샤워를 못했다. 밤낮의 기온 차로 가져간 옷을 차곡차곡 껴 입었다 하나씩 벗고, 다시 껴 입으며 지낸다. 먹을 것도 한정적이라 식사는 간소해졌고 모기에 물린 자국이 늘었다. 많은 것이 불편하지만 이상하게 편하다. 속도에 쫓기지 않고 예민하게 날을 세울 일이 없으니까. 단순해질수록 가벼워지고 가벼워질수록 경쾌해진다. 도시에서는 의식 속 내가 쾌 덩치가 컸는데 이곳에서 나는 아주 작아 콩알만 하다. 더 작아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