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는 연습

호주에서 캠핑 여행 중입니다

by 춤추는바람




캠핑 4일 차, 두 번째 캠핑장이다. 넓고 푸른 초원 위로 비가 쏟아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뜨거운 커피를 홀짝인다. 비가 온다는 소식에 걱정스럽던 마음은 포기를 지나 의연함으로 바뀌었다. 텐트가 물에 잠기는 최악의 상황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 외의 모든 불편함은 다 받아들일 수 있다.


첫날, 떠남의 설렘도 잠시 장거리 차량 이동으로 운전자(동생의 남편)와 아이들이 힘들어해 곁에서 지켜보는 게 고역이었다. 거기다 낮에는 덥다가도 해가 지면 거침없이 떨어지는 기온(지구 반대편인 호주는 서울이 겨울인 지금 여름인데도 저녁이면 초겨울 정도의 날씨가 되어버린다) 탓에 가져온 옷을 모두 껴입어야 했다. 에어 매트를 준비했지만 텐트에서의 잠자리는 불편하기 짝이 없고 추위가 가세해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쑤신다. 몸이 힘드니 마음까지 움츠러든다. 사흘에 한 번 꼴로 5-6시간의 차량 이동을 해야 하는데 이런 상태로 한 달을 보낼 수 있을까. 계획하면서 부풀어 올랐던 기대는 풍선의 바람처럼 단숨에 빠져 버렸다. 그 자리에 걱정과 자신에 대한 원망이 들어찼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면 자유가 찾아올 거라고 기대하다니 그랬던 나의 단순함이 부끄럽고 한탄스럽다.


한국에서도 캠핑을 해 본 적이 없어 텐트에서 자는 걸 내 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캠핑장 시설은 얼마나 단출한지 알 수 없었다. 열심히 자료를 찾고 데이터를 모아 확인하는 대신 힘들더라도 경험 자체로 의미 있을 거라고 지레 짐작했다. 귀찮음이 무모함을 키웠다. 고생스러울 게 뻔히 보였는데 마음 한 편에서 그걸 외면했던 것 같다. 좋은 집을 두고 밖에 나와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다니. 이런 시간 낭비도, 에너지 낭비가 따로 없다. 하루 이틀은 내가 나를 원망하는 목소리와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실체 없는 억울함이 자라 마음이 복잡했다.


함께 떠난 동생과 제부도 계획과 다른 상황과 여건에 낯설고 힘들기는 마찬가지일 테니 불평불만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실질적으로 어려운 일-텐트 설치와 요리-을 제부가 도맡아 하고 있어 뭐라 의견을 제기할 처지도 아니다. 내 안에서 혼자만의 다툼이 벌어졌다. 더 멀리 가기 전에 캠핑을 그만두는 게 낫다고, 아니라고, 그래도 시도했는데 끝까지 가보자고, 옥신각신 다투는 두 개의 목소리가 팽팽하게 맞섰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서울 집으로 돌아가는 시나리오를 쓰고 지우길 반복했다.


사람은 적응하기 나름이라던가.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더디게 단순한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불편하던 게, 아무것도 없어 무엇도 할 수 없어 편하다는 생각으로 기울어진다. 불가능한 일에 애를 쓰는 대신 건너뛰거나 적당히 눈 감아버리면서. 씻고 먹기가 불편하니 안 씻고 대충 먹으면서. 나를 예민하게 만드는 것-더러운 화장실, 불편한 잠자리, 사방에서 출몰하는 벌레와 모기들, 털어도 털어도 딸려오는 흙과 모래 등-에도 신경을 덜 쓰려고 노력하면서. 가져온 옷을 차곡차곡 껴입고 자니 밤 추위는 견딜 만해졌고 낮 시간의 무기력(노트북을 쓸 수 없고 집중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없는데서 오는)과 무료함은 평온함으로 바뀌어간다.






끝없이 솟아나는 걱정과 효용, 실용적 가치를 따지려는 생각을 잠재운다. 완전히 지워내긴 어렵지만 덜 생각하려고 한다. 온갖 불편함과 어려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은 즐거운 일을 탐색하며 웃고 떠는다. 눈앞으로는 처음 마주하는 광활한 자연이 펼쳐진다. 걱정에 잠겼다가도 아이들 웃음소리에 걱정은 먼지처럼 날아가고 무기력하다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산자락과 낯선 숲의 형상에 눈길이 닿으면 경이라는 불이 가슴에 켜진다. 그 덕에 부정적인 생각이 자랐다가도 어느새 풀이 죽는다. 공기가 어찌나 맑고 햇빛은 어찌나 강렬한지 눈을 물에 담가 씻어내기라도 한 듯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선명하게 보인다. 숲과 바다는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규모로 나를 압도한다. 그 앞에서는 어떤 걱정도 금세 하찮아진다.


매 순간 자연 앞에서 인간이란 참으로 작고 미천한 존재임을 느낄 수 있다. 내가 하는 고민도 하찮고 하찮은 것일 뿐.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 선 숲과 멈춤 없이 달려오는 파도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겸허해진다. 오랜 세월 견디고 버티는 것들, 그저 내어 주기만 하는 존재들, 그럼에도 묵묵히 자신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자연. 머지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질 운명을 지닌 인간인 나만이 자신의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아등바등하고 있다. 가장 작은 나라는 인간이 가장 요란하게 떠들어 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과 친밀해지는 기회를 바라 시작된 여행이다. 전기나 인터넷 사용은 원활하지 않고 쾌적하게 앉아 있을 곳도 없는 환경이다. 그러니 일을 하려 해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어른의 기준으로 쓸모 있는 무언가는 도통 쓸모가 없어졌다. 이런 처지에서는 마음을 비우고 아이들과 노는 게 최선일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 리듬에 맞춰 놀고먹고 쉬었더니 서서히 불안과 걱정이 잦아들었다. 자고 먹고, 놀다 쉬고, 그러다 어두워지면 잠을 자고. 단순하게 보내는 하루하루가 쌓이면서 생각도 줄어들었다. 게을러지고 있는데 그만큼 건강해진 것 같다.


휴가를 캠핑으로 보내는 호주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이 더 느슨해진 것 같다. 캠핑장에는 느슨한 분위기가 흘러넘친다. 간이 의자에 앉아 책을 보며,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의자에 기대어 낮잠을 자며 생산성과는 무관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맨발로 풀밭 위를 걸어 다니고, 날이 흐려도 바다로 서핑을 나가는 사람들... 멋진 시간을 보내려는 욕심이나 특별한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기색 없이 모두가 자연 안에서 편안해 보인다.






첫 번째 캠핑장은 바로 앞에 바다가 펼쳐지는 곳이었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백발의 할아버지부터 대 여섯 살 꼬맹이까지, 남자든 여자든, 아무렇지 않게 서핑을 즐겼다. 추위와 파도의 크기는 그들에게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익숙한 옷을 걸치듯 자연스럽게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파도 위로 보드를 던지고 그 위에 엎드려 느릿느릿 팔을 저으며 바다로 나아갔다. 주저 없는 그들의 모습이 멋져 보여 그들처럼 태연해지고 싶었다. 놀면서 시간을 죽인다는 자책 없이, 자연을 만끽한다는 순수한 즐거움에 빠져들고 싶다. 흙에 발바닥이 더러워지고 벌레에 물리고 옷이 젖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경계심 없이 자연 속으로 녹아들고 싶다.


호주는 사계절 내내 큰 추위가 없다. 겨울에도 해가 뜨는 낮에는 반팔을 입을 만큼 기온이 올라간다. 그러면서 여름에는 햇빛이 강렬한 낮에만 덥고 해가 지면 금세 선선해진다. 사계절 내내 대체로 빛이 많고 온화한 기후. 땅이 넓어 목초지, 과수원 등이 많아 농축산물이 풍부하다. 인건비 때문에 외식 비용은 높지만 마트에서 사는 식품의 비용은 저렴한 편이다. 날씨와 환경, 자원의 풍족함이 삶에 기본적인 여유를 부여하는 것 같다.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삶의 질이 보장되는 나라. 그러니 경쟁이나 근면을 강조하는 분위기도 덜하지 않을까. 남들이 알아주는 직업에 탄탄한 수입이 보장되지 않아도, 자기만의 리듬으로 즐기면서 사는 게 가능할 것 같다.


장소가 바뀌자 마음이 달라졌다. 넓고 평화로운 장소, 사람보다 자연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경, 모든 게 넉넉해 보이는 곳. 열심보다 즐거움, 경쟁보다 배려, 성취보다 자기만족을 중시하는 장소. 한국 사회에서 옳다고 믿었던 것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자란다. 꼭 부지런해야 할까, 노력만이 최고의 태도일까. 게으름을 비난하는 사이 눈앞의 아름답고 즐거운 것을 보고도 즐기지 못하게 된 건 아닐까. 성취만이 인생의 성공을 가늠하는 척도일까. 인생에서 순간에 고요히 머물며 기쁨을 느끼는 법을 잃어가면서 성취해야 하는 건 무얼까. 근면과 노력만이 옳은 건 아니다. 느림의 미덕, 과한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 사회의 다양성과 자율성, 경쟁하지 않는 사람들의 관대함, 가볍고 즐거운 삶, 그런 가치도 소중하다. 눈앞의 세상이 넓어지면서 가시 영역이 확장된 만큼 마음의 시야도 열렸다.


서울에서는 세상이 넓다는 걸 실감하기 어려웠다. 어디를 가도 사람이 많고, 거리마다 집과 건물로 가득 차 있고, 한 두 사람을 건너면 알게 되는 좁은 인간관계. 세상은 손바닥처럼 작고 납작했다. 호주에 와서 느끼는 세상의 규모는 확연히 다르다. 몇 시간을 달려도 계속 이어지는 목초지, 드넓은 바다와 숲. 광활하다는 건 이런 거구나 몸으로 실감한다. 서울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던 생활에서는 그만큼 나의 정신세계도 한정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물리적으로 넓어지자 정신도 그만큼 팽창하고 있는 기분이다. 경계를 두지 않는다면 나를 둘러싼 세계는 커지고 그만큼 가능성이 늘어난다.


적당히 더운 날씨, 넘실거리는 바람, 투명한 대기로 쏟아지는 햇살. 장소가 바뀌니 사람도 변하는 기분이다. 자잘한 걱정거리를 일상에 남겨두고 떠나 왔기 때문일 테지만, 거대한 자연 곁에서 보잘것없는 존재로서의 담대함이 자란다. 겸허해질수록 여유와 너그러움이 찾아온다. 덜 먹고 덜 씻는 대신 더 자고 더 쉬면서 건강해진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편견과 제약 없이 맑아지는 기분. 긴 여정 후에는 저 나무나 바다 같은 표정이 내 얼굴에 스며들어 있을까.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덜고 짐을 줄이듯 마음의 욕심을 빼고 싶어 떠나온 여행. 아직 완전히 비우지 못해 당황스럽고 어리둥절한 순간들이 벌어지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하루하루 지나치게 애쓰지 않으면서 무엇을 얻고자 지나치게 노력하지 않으면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바라는 마음을 잠재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평화를 찾는 방향으로 나침반을 놓는다.


밤까지 이어지던 비가 그쳤다. 다시 맑고 투명한 하늘이 드러나자 구름이 잔뜩 끼었던 내 마음도 단숨에 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