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캠핑 여행 중입니다
책에 실린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다만 빛과 그림자가 그곳에 있었고>라는 책에는 정멜멜 작가가 여행하며 찍은 사진과 글이 담겨 있다. 그중 호주의 섬, 태즈메이니아를 찍은 사진을 보고 단번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한동안 여행을 하지 않았는데 딱히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태즈메이니아의 파란 하늘이 선명하게 담신 사진 한 장에 마음이 흔들렸다. 태즈메이니아라는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살고 있는 여동생과 통화 하던 중 불쑥 이런 말이 튀어 나왔다.
"태즈메이니아 어때? 태즈메이니아에 가보고 싶어."
희미했던 생각을 말로 꺼내고 나니 무언가가 명확해지는 기분이었다. 가보고 싶다고? 그럼 가면 되지, 한번 가보지 뭐. 불가능해 보였던 일이 가능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을 먹는 게 어렵지 일단 마음을 먹으면 실행은 쉬울 수 있다. 마침 여동생네 부부도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 캠핑을 시작해볼까 계획하던 차였다. 그랬던 계획에 우리 가족이 합류하고, 여정에 태즈메이니아가 포함되었다. 캠핑 용품을 준비하고 캠핑장을 예약하는 실질적인 준비는 동생네가 도맡아 해주었으니 정말 운이 좋았다. 내게 주어진 임무란 최소한으로 짐을 꾸리고 여기서 구입하는 게 나았던 몇몇 캠핑 장비를 챙겨 일곱 살 딸 아이를 데리고 무사히 브리즈번까지 날아가는 정도였다.
지금은 호주 브리즈번에서 출발해 시드니를 지나 멜버른을 향하고 있다. 최종 목적지인 태즈메이니아까지 가서 다시 브리즈번으로 돌아오는 왕복 30일의 여정. 10곳의 캠핑 사이트를 거칠 예정이다.
서울에서는 호주에 가기 싫다고 아이가 울상을 지었다. 그랬는데 캠핑을 시작하고는 매 캠핑장마다 좋은 점을 꼽으며 즐거워한다. 튜브를 끼고서야 간신히 바다에 들어가던 아이가 보드에 엎드려 발장구를 치고 파도를 타려고 스스로 바다에 뛰어 든다. 그런 용기는 어디서 어떻게 자라는 걸까. 장소가 바뀌면 생각이 달라지고 태도가 변한다. 말랑한 몸처럼 아이들의 정신은 부드럽고 유연하고 어떤 상황에든 빠르게 적응해서 즐거운 구석을 찾아낸다. 아이는 틈만 나면 해변으로 나가 조개껍질을 모으고 모래를 쌓아 성과 터널, 길고 긴 도로를 만들며 논다. 바위틈에서 소라를 줍고 게를 잡으며 환호하는 모습엔 안도하다 못해 안 왔으면 어쩔 번 했나 싶어 웃음이 난다.
한달의 캠핑이라니, 서울에서도 캠핑 경험이 없던 내겐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결정이었다. 편한 집을 두고 밖에 나가 고생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섰고.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아이가 크게 작용했다. 이제 곧 초등학생이 되는 아이에게 자연과 친밀함을 쌓는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더 크기 전에 자연에서 뒹구는 경험을 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옷에 흙이 묻고 벌레가 출몰하는 환경이 더럽거나 불편하게만 느껴질지 모른다. 장난감이 없으면 놀지도 못하고 호기심을 키우는 일에 흥미를 키우는 법도 익히지 못할지 모른다.
세상이 얼마나 드넓은지, 그 안에서 인간은 얼마나 작은지, 우리를 넘어서는 곳에 얼마나 무궁하고 경이로운 세계가 있는지 아이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길 바랐다. 겁이 많고 잠자리가 바뀌면 잠도 제대로 못자는 나지만 아이를 위해 용기를 내었다. 그건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어느새 편리와 편안함, 안정과 쾌적함에 젖어버린 나의 생활 탓에 잃어버린 가치와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생각은 편협해지고 내게 익숙한 것만 찾고 있었다.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익숙한 허물을 벗고 새살이 돋아나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딸 아이는 다섯 살, 일곱 살인 사촌과 금세 친해졌다. 영어에 익숙한 사촌과 아이는 영어와 한국어를 뒤섞어 대화하면서 수시로 배꼽이 빠지도록 깔깔거린다. 아이들은 날마다 모래와 파도, 소라와 게, 햇빛과 바람과 뒤엉켜 지낸다. 자연 안에서 다른 생명체와 가까워지고 있는 아이들. 저희들끼리 놀이에 빠져든 아이들 곁에 잠자코 앉아 나는 오래도록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이들은 숲 속에서, 해변에서 자기들만의 탐색에 몰두하느라 즐거움으로 빛난다. 아이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기쁨에 잠긴다. 내게 특별하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자잘한 놀이로 즐거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즐겁다. 직접 누리지 않아도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기분에 젖는다. 내 기쁨의 주머니는 그토록 소박하다. 무언가를 바라지 않아 더 자주, 잔잔하게 기쁘다. 소박하다는 건 얼마나 가볍고 산뜻한 일인지.
여행을 통해 아이가 한 줌의 용기와 호기심을 키우고 즐거움을 얻길, 그리고 자연과의 우정을 맺어가길 바랐는데, 바람은 이미 이루어진 것 같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한달이나 되는 캠핑 여행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텐데. 며칠 사이 내 마음은 바다의 소리와 숲의 색에 물들어간다. 아이처럼 신이 나 파도에 뛰어들다 발등을 접질리고 말았다. 물놀이가 무척 하고 싶지만 퍼렇게 멍든 발부터 낫게 하자며 참고 있다. 씻은 듯 발이 나으면 기쁘게 파도에 몸을 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