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지난겨울, 한 달간 호주로 캠핑 여행을 다녀왔다. 때로는 벅차게 즐겁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삶의 속도를 늦추는 방법을 배웠다.
최소한의 짐을 가지고 떠났고 주변은 숲과 바다, 너른 잔디밭이거나 호수였다. 해야 할 일은 없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어 처음엔 시간을 보내는 게 고역이었다. 답답하고 무기력한 기분이 들었다. 서울의 분주한 생활에 익숙한 정신과 습관 때문에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생활이 낭비처럼 느껴졌다.
캠핑을 하는 한 달 동안 특별한 계획 없이 시간을 보내는 연습을 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알려주는 자연과 현지 사람들 곁에서 빈둥거린다는 자책과 불안을 지울 수 있었다. 느림에 익숙해지는데 거의 한 달이 걸렸다. 삶에서 불필요한 일을 잘라내고 습관화된 생각을 어느 정도 지워내니 시간이 많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시간이 많은 사람이라니, 근사했다.
여행은 끝났고, 서울에 돌아왔다. 일상이 시작되고 생계를 위해 해야 하는 일도 다시 들어왔다. 이전의 속도로 돌아가야 하는데 여행의 감각을 떨쳐내지 못해 어영부영 시간을 보낸다. 이럴 때가 아닌데 싶어 자신을 재촉해 보는데 영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오래 타지 않아 스파크가 튀지 않는 자동차 엔진처럼 부릉부릉 소리만 낼뿐 앞으로 시원하게 나가지는 못하고 있다. 예전이라면 이런 상황에 속이 타들어갔을 텐데 신기하게도 지금은 마음이 여유롭다.
시간에 쫓기는 대신 게으르게 움직이는 게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취의 기쁨은 자신을 닦달해야 간신히 드물게 찾아오지만 느림의 기쁨은 물결의 미세한 움직임처럼 잔잔하게 지속시킬 수 있다.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으며 생활의 여유를 만들면 가능하다. 하고 싶은 일을 챙기는 것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명확히 하면 된다. 무언가를 하고 가지고 성취하기 위해 종종 거리는 것보다 하지 않고 갖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안분지족의 삶. 한 달간의 캠핑에서 느림과 게으름을 따르는 생활이 어떤 기쁨을 건네는지 맛보았다.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게 멋지다는 걸 목격했다.
부지런히 성취를 향해갈 때 내 몫을 해내느라 분주했지만 채울 수 없는 허기가 남았고 쉽게 예민해졌다. 게으름과 여유가 주는 기쁨 안에서는 더 편안하고 부드러웠다. 언제든 너그러울 수 있고 조금 더 온화해졌다. 단순한 일과 장면 앞에서도 생각에 깊이 잠길 수 있었다. 일상에 매몰되지 않으니 신선한 생각이 솟고 삶의 방향을 바라보는 시선도 명료해졌다. 무엇보다 사소한 데서 충만함을 느꼈다. 파란 하늘과 저녁놀 바라보기,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새의 노래 듣기, 잘 익은 체리와 블랙베리 먹기, 파도타기와 조개 줍기, 왈라비 찾기, 오리너구리 기다리기... 바쁘고 예민하던 나보다 작고 사소한 일을 소중히 여기며 거기서 기쁨을 찾아내는 내가 훨씬 더 좋았다.
서울에 돌아왔고 나를 둘러싼 풍경과 사람이 변했다. 시계를 볼 필요 없던 생활에서 수시로 시계를 흘끔거리는 생활로 바뀌었다. 이곳의 시간과 속도에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라난다. 서울의 평균 속도에 맞추진 않더라도 이전의 내 생활로는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가능해지는 일과 생활이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마음은 청개구리처럼 계속 다른 방향으로 가보자고 한다. 귀하게 얻은 교훈을 쉽게 버리지 말자고 내게 속삭인다.
예전과 다른 속도감을 터득한 나를 잘 지켜주고 싶다. 시간에 쫓겨 빠르게 나아가던 나, 누군가의 감정을 세심히 더듬어 보거나, 주변의 그늘진 구석을 눈여겨보거나, 생활에서 작고 귀여운 아름다움을 짓는 여유를 만들지 못하던 나를 스스로도 별로라고 생가했으니까. 잊고 있었는데 언젠가 나는 이런 꿈을 꾸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건 바로,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되는 것이다.
캠핑 다닐 때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그때의 마음을 기억하며 삶에 불필요한 요소들을 천천히 줄여가고 싶다. 24시간이라는 틀은 바꿀 수 없으니 그걸 무얼로 채울지 더 꼼꼼하게 선택할 것이다. 더하기보다 빼기에 집중하면서.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최대한 제거하면서. 소비와 소유, 과식과 과욕, 지나친 만남과 활동. 그것들을 제하고 남는 시간을 내 것으로 넉넉하게 누려야지. 내게 없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 내 안과 주변에 있는 소소하지만 귀한 것들과 깊이 눈을 맞출 것이다.
캠핑을 하면서 끝없는 숲과 바다를 담느라 시야는 넓어졌고 시선의 초첨은 멀어졌다. 그랬던 시야를 좁히고 초점을 가까이로 가져와야 하는데 그냥 이대로 넓고 먼 시선으로 살고 싶어졌다. 시간이 많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나를 기쁘게 하는 건 멀리 있는 커다란 것이 아니라 고개를 숙이면 발아래 있는 작고 흔한 돌멩이 같은 거라는 걸 캠핑은 내게 일깨워주었다. 그건 시간이 많고 게으른 어른에게 잘 보인다.
+
이제와 고백하지만 짐을 싸서 서울로 되돌아가는 계획을 몇 번이나 쓰고 지웠는지 모른다. 이 캠핑은 '텐트 밖은 유럽'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부러워하며 보았던 낭만보다는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경악했던 야생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시드니에서 인천으로? 멜버른에서 시드니로, 그리고 인천으로? 태즈메이니아에선 호바트로 가서 멜버른 찍고 시드니 들러 인천으로?... 바람이 거친 어느 날, 혼자 어딘가에 숨어 있고 싶어 아슬아슬했던 날엔 이리저리 루트를 짜며 집에 갈 궁리를 했다. 그러다가도 밤이 되어 잠이 들면 새 날이 찾아왔다. 눈을 뜨면 어제의 괴로움은 지워지고 없었고 어느샌가 거짓말처럼 아이들과 웃고 있었다.
어떤 날은 하늘이 너무 파래서 다른 날은 바다가 너무 명랑해서, 바람이 간지럽고, 새들의 노래가 경쾌해서, 커다란 나무들이 안아줘 기뻤다. 또 다른 날엔 우리가 무탈하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끝이 없는 일은 없었다. 하루가 지나듯 괴로운 상황도, 즐거운 사건도 끝이 났다. 모든 순간은 한 번 우리 앞에 생생하게 존재했다 사라졌다. 영원할 것 같던 고통도 시간이 흐르자 옅어졌다. (실제로 파도를 타다 발을 삐끗하는 바람에 발등이 퉁퉁 붓는 일이 있었다. 처음엔 발을 딛지 못할 만큼 통증이 심했는데 열흘 정도 붕대를 감고 다녔더니 말끔히 나았다.)
한 달이 처음엔 길게만 느껴졌는데, 지나고 나니 한없이 짧아 아쉬웠다. 서툴러서 즐기지 못했던 초반의 며칠이 안타깝지만, 그 시간을 지나 평온하게 기쁜 마음도 찾아왔다는 걸 안다. 사진 속 나와 딸아이의 얼굴이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러워 보인다. 아마 그 모든 시간과 경험이 거치며 우리가 서서히 배우고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호주의 선명한 빛에 새까매진 발이 도드라져 보인다. 우리가 얼마나 용감하고 건강했는지 두 발이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