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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Jan 06. 2024

다정한 관심으로 세상을 만나길

우리가 좋아하는 동네 아주머니들



눈이 왔으면 하는 마음과 달리 겨울비가 총총 내린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 아이와 우산을 챙겨 나왔다. 오늘 중에 바지 수선을 맡겨야 하는데 수선집이 문 닫을지 몰라 걸음을 재촉했다.   


편의점과 떡볶이 집 사이로 난 좁은 골목에 수선집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직접 가보는 건 처음이다. 골목처럼 가게 내부도 협소했다. 주인아주머니와 친구인 듯 보이는 또 한 명의 아주머니가 난로 곁에 안아 계셨다. 아이를 먼저 들여보냈는데 물이 떨어지는 우산을 밖에 세워 두는 걸 깜빡했다. 아이가 우산을 들고 안으로 들어간 상태라 발판이 깔린 문 앞에 서 있으라 일러 주고 주인아주머니에게 다가가 바지를 건넸다. 그때 내 뒤로 다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 이거 하나 먹어.”

볼 일을 마치고 돌아서는 내게도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애기 엄마도 하나 줘야지. 이거 하나 잡숴 봐.”


난로 위에 놓인 투명한 플라스틱 박스에 감말랭이가 줄지어 들었다. 아이에게 그걸 하나 주신 것 같은데 내게도 권하셨다. 연한 주홍빛 감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난로 위에 두신 건 살짝 데워 먹기 위해서인가. 따끈한 감말랭이는 어떤 맛일까. 잠깐 사이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말랭이 한 개를 집어 들었다. 예전 같으면 모르는 타인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이, 특히 손으로 음식을 만지는 일이 불가능했을 텐데. 음식을 나누는 것만큼 친근한 일이 또 있을까 싶어 그럴 수 있게 된 지금이 새삼스럽게 기뻤다.


“고맙습니다.”

인사와 동시에 제법 통통한 말랭이를 한 입에 넣고 가게 문을 나섰다. 입 안에서 말랑하게 씹히던 감 조각이 녹아내렸다. 기분 좋은 달콤함을 남겼다.


“진짜 맛있다!”

나의 감탄사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여자 주인들이 좋더라.”

“응? 응… 아주머니들이 친절해서 좋아?”

“응!”

“맞아, 아주머니들은 어린이를 좋아하거든!”

말하지 않아도 아이는 단번에 알아챈다. 어디서 누가 자신을 환대하는지, 어떤 곳이 다시 가고 싶은 곳인지를.


대체로 가게 아주머니들은 아이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고 관심을 보인다. 몇 살이냐고 묻고 오늘 뭐 했는지, 네가 기분이 어떨 거라는 둥 말을 붙인다. 모든 아주머니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주로 다니는 동네의 작은 가게 아주머니 사장님들은 친절하고 때로는 과분한 애정을 보여준다.


김치 가게 아주머니는 우리가 가게에 들어서면 “우리 딸, 왔어?!”하며 반기고는 가게를 나설 때마다 아이 손에 음료수든 과일이든 무언가를 꼭 들려주신다. 도넛 가게 아주머니는 언제나 환한 웃음으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그림책방 사장님은 모아 둔 메모지, 지우개, 스티커를 내밀며 마음에 드는 건 다 가져가라고 성화시다. 조금 거리가 있어 이벤트가 있는 날에만 들르는 디저트 샵 이모는 아이의 입학식에 선물을 따로 챙겨주었고 꽃집 이모는 주문한 꽃다발 외에 아이의 손에 한 두 송이를 더 들려주곤 한다.


그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예뻐하고 선물을 쥐어 줄까. 눈앞의 아이가 어린아이를 키우던 과거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할까. 그러면 아이를 키우던 시절의 수고와 함께 그 시절 맛보았던 여린 생명체가 건네는 기쁨과 사랑스러움이 그들 안에서 되살아나는 걸까. 그도 아니라면 어떤 사람들은 누구를 만나든 조건 없이 환대하고 애정 어린 관심을 보이는 성정을 타고난 걸까. 답을 구하기 어렵고 굳이 답을 꼽아낼 필요도 없는 문제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문득 내게 오는 친절과 호의에 경이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우리 동네에는 그런 아주머니들이 몇몇 계시고 나는 종종 아이가 있어 환대받는 엄마가 된다. 그분들 덕분에 내가 살아가는 사회를 긍정할 수 있다.


오랜만에 동네 야채 가게에 들른 날이 떠오른다. 여름에는 비가 많았고 이후로도 날씨가 오락가락하는 사이 과일과 야채 가격은 가랑비에 옷 젖듯 올랐다. 그런데도 동네 가게의 야채들은 여전히 친근한 가격으로 날 좀 데려가라며 손짓했다. 호박 한 개 1500원, 양파 한 봉지 3000원, 고구마 한 봉지 5000원, 귤 한 봉지 5000원, 주먹 만한 사과 여러 알이 담긴 봉지는 10000원! 착한 가격에 이것저것 담고 싶었지만 들고 가는 게 일이라 꼭 필요한 것만 골랐다. 계산하려 카운터로 갔을 때 한 할머니가 가게 구석에서 주인아주머니에게 무가 있냐고 묻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에 주인아주머니가 답했다.


"어머니, 지난번에 사 가지 않으셨어? 오늘은 무 가져가지 마셔. 들고 가려면 추운데 힘들어요. 다음 주에 영상으로 풀린데. 그때 사셔요.”


할머니가 얼마 전 무를 사 가신 걸 기억해 주고, 영하로 추운 날씨에 무를 든 손이 차게 얼어버릴 걸 걱정하는 아주머니의 한 마디가 따뜻했다. 몸이 약한 어르신이 엄동설한에 무거운 걸 들고 가는 일의 고충을 단숨에 헤아리는 말. 그 속에는 오늘 내 주머니를 채우지 못해도 당신이 안녕한 게 중요하다는 마음이 숨어 있으니.


“다음 주에 오셔. 영상으로 풀린데요.”

아주머니의 말은 내게도 한 줌의 햇볕처럼 스며들어 움추러든 어깨를 살짝 펴주었다. 다음 주엔 따뜻해진다는 기별을 이렇게 전해받았다. 계산을 마친 아주머니가 무거운 것부터 차곡차곡 장바구니에 넣어 주었다. “고맙습니다” 큰 소리로 인사하는 내게 “잘 가요.”하고 다정한 인사가 돌아왔다. 잘 가요, 조심히 가요, 그 단순한 말이 돌아가는 나의 길을 밝혀 주었다.


우리는 서로를 잘 몰라도 서로를 보살피는 말을 수시로 주고받는다. 세상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만으로 서로의 안녕을 살피고 다정한 마음을 건넨다. 나를 따라 동네의 몇몇 가게를 들르는 사이, 오가는 말과 태도, 분위기를 통해 아이 또한 타인과 더불어 사는 방식을 배우고 있을 것이다. 친절과 환대, 다정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이자 바탕이라고 아이와 길을 걸으며 익힌다.


얼마 전 직장인 자살 이유 1위가 사내 괴롭힘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갈 정도로 환대하지 않는 공동체 또한 이 사회에는 존재한다.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동네 너머 그토록 냉담한 세계가 공존한다니 마음이 아프다. 그 세계는 언젠가 아이가 홀로 걸어 나가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으로 환대해 주는 게 기본값인 사회로 아이를 보낼 수 있을까. 그런 미래를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내 아이가 자라서 살아갈 사회가 그런 곳이면 좋겠다. 능력, 학벌, 재력, 외모 같은 조건과 상관없이 모든 생명이 고유한 존재로 존중과 환영을 받는 사회. 마주치는 모두에게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네는 세상. 우리가 누리고 싶은 사회는 친절과 예의가 기본인 곳,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오가는 곳이다. 우선 나부터 나와 아이가 받은 다정한 인사를 어딘가로 돌려보내야겠다. 친절과 호의와 다정은 서로를 거치며 몸집을 키운다고 믿기 때문이다.


환대의 기억은 환대를 실천하게 한다. 내게 온 선물 같은 호의는 내게도 세상에 무언가를 돌려주고 싶게 만든다. 길을 묻는 누군가에게 조금 더 친절하자고, 가능하면 작은 가게에서 물건을 사자고 생각한다. 귀찮더라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시도해보려 한다. 내게 쓸모가 크지 않은 물건은 가능한 나누고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날 때엔 작더라도 선물을 챙긴다. 모르는 사이 내게 온 세상의 선물을 나도 돌려주고 싶어서. 내가 받아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었듯 내 선물을 받은 그 사람도 다른 이에게 건네고 싶어 질지 모른다. 환대와 다정의 선물은 돌고 돌아 더욱 풍성해진다.


아이는 자신이 받은 환대를 기억할 것이다. 그 기억이 아이의 다정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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