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사블레
오랜만에 홀로 밤을 보냈다. 고독한 밤을 원한다고 생각했는데 외로웠고 고독과 외로움이 한 몸이라는 걸 깨달았다. 고독이 내 피부와 맞닿는 스웨터의 안쪽이라면 외로움은 겉면일 것이다. 옷을 뒤집어 입었을 때의 당혹스러움과 불편함, 무엇보다 그 거친 감촉이 외로움을 닮았다. 고독과 외로움이 안과 밖처럼 한 몸이듯 나를 돌보는 일과 타인을 돌보는 일도 한 몸이다.
남편과 딸아이가 시댁에서 자고 오기로 한 날이었다. 아이 잠자리를 위한 준비로 분주한 저녁이 아닌 맘껏 책을 읽고 늦게까지 영화를 보는 느긋한 밤을 기대했건만, 아뿔싸, 나의 리듬은 이미 아이와의 생활에 최적화된 상태였다. 냉동 피자와 화이트 와인으로 저녁을 때우고 손에 들었던 소설책 한 권을 방해 없이 읽고 나자 창밖이 어둑했다. 방금 읽기를 마친 소설의 여운으로 머릿속은 충만했고 더 이상 영화나 드라마 같은 걸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잠잘 시간 따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지만, 오히려 신경 쓰고 싶었다. 괜히 늦게 자서 다음 날 피곤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밤이 깊어질수록 적적해졌다. 집 안은 괴괴했고 어제와 같은 실내 온도에도 찬기가 느껴져 얇은 패딩을 꺼내 입었다.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아이는 사촌 언니와 노는데 흠뻑 빠진 게 분명한데 그걸 짐작하면서도 핸드폰을 들고 만지작거렸다. 먼저 전화를 걸어볼까 망설이다 그만두었다. 아이가 있는 생활에 길들어 완벽한 고독이 어색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아이가 집을 비워도 낮에는 외로운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밤이 되자 고독이 서서히 젖어들었다. 축축한 고독은 영혼을 움츠러들게 했으니 외로움이었다. 고독이라면 언제나 부족한 상태 아니었나? 당혹스러웠다. 그 당혹스러움 앞에서 깨달았다. 인간이란 자신의 한 치 앞도 제대로 모르는 존재구나. 나이가 든다는 건 몸이 약해지는 만큼 마음도 약해지는 일이구나.
아이 없이 하룻밤을 방만하게 보내겠다는 야심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어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아는 법. 잠잘 시간이 지나도록 괜한 장난을 치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성가시게 굴던 남편과 아이가 그날따라 사무치게 그리웠다. 돌아오면 사소한 것으로 잔소리하지 말아야지, 함께 있는 동안은(아이는 사춘기가 되면 방문을 닫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갈 테고, 조금 더 뒤에는 부모라는 둥지를 떠날 테니까) 함께 있고 싶은 사람, 곁에 있어 편안하고 즐거운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다짐이 떠올랐다.
그러니 다음 날 잠에서 깬 뒤에도 침대에 늘어져 있는 대신 몸을 움직였다. 아이와 남편을 반갑게 맞을 선물을 준비하고 싶어 오렌지 사블레를 만들었다. 사블레는 흔히 아는 쿠키의 일종으로 밀가루와 버터, 설탕과 달걀노른자만 있으면 되어 별다른 준비가 필요하지 않은 메뉴다. 마침 냉동실에 두었던 오렌지 필이 떠올랐다. 심심한 사블레 반죽에 넣으면 맛과 색으로 포인트가 되어 줄 것이다. 하룻밤 적적했던 내게 오렌지 필 같은 존재들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듯이.
분량의 재료를 푸드프로세서로 갈아 한 덩어리로 만든 후 모양을 잡아 냉동실에 굳혔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 오븐에 구웠을 뿐인데도 금세 진한 버터 향이 집안을 채웠다. 연한 갈색으로 잘 구워진 사블레를 오븐에서 꺼내 식탁 위에 올렸을 때 아이와 남편이 돌아왔다.
“우와! 맛있는 냄새가 나!”
반가운 아이의 목소리로 집안에 고였던 고요는 흩어지고 활기가 흘러들었다.
한때 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내 삶의 방해꾼처럼 바라보았다. 그때는 머지않아 그랬던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 아이와 더 좋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걸 후회하는 미래가 올지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물론 내일이라도 아이가 방해꾼처럼 보이는 찰나를 마주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것만은 잘 알고 있다. 그런 순간도 잠시일 뿐, 지나갈 것이다. 밤이 되면 또다시 아쉬워하며 나날이 자라는 아이를 애틋하게 바라볼 것이다.
지금 당장 우리가 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작고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잘 안다고 장담했던 내가 달라졌음을, 홀로 고요히 머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절절히 외치던 내 안의 목소리가 잦아들었음을 확인했다.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며 사람은 계속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이가 들면 조금 겸손해지기도 한다던 엄마의 말씀이 떠올랐다. 나는 조금 겸손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위해 시간을 내는 게 불가능해 보였던 시절에는 가족을 챙기는 일이 도넛 같았다. 그 돌봄은 ‘나’라는 중심을 제외하고 주변만 채웠다. 그럴수록 나라는 구멍이 넓어졌다. 그랬는데 주변을 채우다 보니 어느새 중심까지 조금씩 조금씩 살이 차올랐다. 아이가 자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늘고 일정 시간은 나를 위해 떼어두는 게 가능해지면서 구멍의 크기는 줄었다. 간절함으로 읽기와 쓰기에 매달렸던 시간이 그걸 채웠을까. 이제는 헌신적으로 돌본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도리어 돌봄을 받는 기분이다. 주변을 돌보는 시간이 쌓이자 건강한 주변이 나를 보듬어 준다. 그렇게 어떤 빈자리는 채워진다. 가운데가 텅 비었던 도넛이 어느새 베이글이 되었다.
언제까지나 안아달라고 칭얼거릴 것 같던 아이였건만 요즘은 처지가 바뀌어 내가 안아달라고 조를 때가 많다. 십 년쯤 지나면 우리 관계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팥 도넛처럼 진한 앙금으로 꽉 찬 무엇이 될까, 찹쌀 도넛처럼 속이 비어도 쫀득쫀득한 무엇이 될까. 십 년이 흘러도 오렌지 필이 보석처럼 박힌 사블레에 대한 나의 취향은 변하지 않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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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를 닫고 쓰는 인생 레시피>는 격주 연재됩니다.
다음 글은 3월 10일에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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