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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식 Jun 03. 2020

느림과 고요의 휴식처, 순천만

온전한 자연 속에서 맑음을 되찾는 여정

프롤로그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으로 답답한 차였다. 마침 순천에서 저녁 일정이 잡혀서 차라리 하루 시간을 빼기로 했다. 다녀오는 김에 순천만 국가정원과 습지를 구경할 요량이었다. 꼬박 한나절이 걸렸던 그 날의 여행을 이제야 기록해본다.

순천만국가정원의 서쪽 입구인 '빛의 서문'이다.

5월 25일 월요일, 오전 8시

기온은 최저 14.7도에서 최고 22.7도였다. 가만히 있으면 쌀쌀하고 움직이면 땀이 나는 전형적인 간절기 날씨였다. 구름양은 9.5할로 매우 흐렸고 상대습도가 75.9%이기에 후텁지근했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볕도 조금은 따가웠다.


66번 버스

첫 목적지는 국가정원이다. 오전 8시 순천 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큰 도롯가로 향했다.  OO병원을 가는 차편을 묻는 아주머님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정류장으로 걸었다. 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66번을 타고 국가정원(서문) 정류장에서 내렸다. 30분가량 걸렸다.


여행을 일찍 시작한 이유는 국가정원과 습지의 면적이 매우 넓기 때문이다. 국가정원을 관람하는데 약 4시간, 습지를 보는데 약 3시간, 거기에 휴식 및 이동시간을 더하면 하루가 빠듯하다. 오전 8시 순천에 도착한 이유도 국가정원의 입장 시간인 8시 30분에 맞추려는 계획이었다.

서문에 있는 물품대여소다. 휠체어, 유모차, 운동화 등을 빌려준다.

순천만 여행팁

의외로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순천만 국가정원과 순천만 습지는 다른 곳이다. 국가정원은 순천 시내와 가까운 남쪽에 있다. 습지는 국가정원에서 남쪽으로 6km 떨어진 장소다. 국가정원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공간이다. 반면 습지는 순천만에 맞닿은 자연 그대로의 보존지다.

 

어디를 먼저 갈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다만 기간마다 입장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현재의 기간인 5월부터 9월까지 국가정원 입장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7시까지다. 관람 시간은 오후 8시까지다. 습지의 입장은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관람은 일몰 시까지다.


넓은 지역을 효과적으로 보려면 미리 길을 정해야 한다. 누리집에서 안내하는 코스 중에 하나를 고르면 좋다. 길은 입장할 때 받는 팸플릿을 참고로 찾아가야 한다. 안내도에 코스 순서가 적혀 있지 않다. 스마트폰의 메모장에 코스를 옮겨놓거나 캡처해 참고하기를 추천한다.


국가정원의 입장권은 QR코드를 권한다. 따로 챙기지 않아도 돼 편하다. 요금은 8,000원이다. 입장권은 당일 기준으로 국가정원과 습지를 모두 들어갈 수 있는 통합권이다. 그러니 비용을 아끼려면 두 곳을 하루 안에 방문해야 한다.

입구를 지나면 곧장 풀 내음과 꽃향기가 반겨준다.

국가정원 구경기

순천만 국가정원의 입구는 동문과 서문이 있다. 여기서는 당시에 입장한 서문을 기준으로 설명을 이어간다. 어차피 동문으로 들어가면 서문으로, 서문으로 들어가면 동문으로 나오므로 입장문이 어디냐는 문제 될 게 없다. 중요한 건 그 밖의 준비물이다.


넓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한다. 많이 걸어야 한다는 뜻이며, 발이 편한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조언이기도 하다. 만약 구두를 신고 왔어도 방법은 있다. 서문에는 보증금 1만 원이면 운동화를 빌려주는 대여점이 있다. 신발을 동문에서 반납할 수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가벼운 보조 가방을 멜 것도 추천한다. 물과 간식을 챙겨야 한다. 선글라스도 좋다. 오랜 시간 걸어야 하므로 꼭 필요한 짐만 가볍게 챙겨야 한다. 정원 중간중간에 매점이 없으므로 간식은 필수다.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으로 식당은 영업하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컵라면 식사 정도만 가능하다.


걷기를 피하고 싶다면 관람차를 이용하면 된다. 중국정원과 꿈틀 정원 앞에서 탑승할 수 있다. 성인 요금은 3,000원이다. 만 3~12세 혹은 65세 이상은 2,000원이다. 웬만하면 걷기를 추천한다. 정원은 느리게 즐기고 쉬는 곳이다. 박물관에서 전시를 보듯 휘익휘익 관람은 어울리지 않는다.

공식 누리집에 안내된 '4시간 코스01'이다.

이날은 조금 바꾸어 걸었다.

서문 -> 물새놀이터 -> 야생동물원 -> 한국정원 -> 꿈의 다리 -> 중국정원 -> 프랑스정원 -> 봉화언덕 -> 독일정원 -> 네덜란드 정원 -> 미국정원 -> 메타세쿼이아 길 -> 스페인정원 -> 터키정원 -> 이탈리아정원 -> 영국정원 -> 일본 정원 -> 태국정원 -> 실내정원 -> 동문
홍학이다. 흔히 말하는 플라밍고다. 키가 크면 유럽 홍학, 작으면 꼬마 홍학, 발과 무릎만 붉으면 칠레 홍학이다.

입장하자마자 물새놀이터로 향했다. 국가정원을  이유다. 흔히 말하는 플라밍고, 우리말로 홍학을 직접 보기 위해서다. 연한 분홍빛의 깃털과 대나무처럼 곧은 다리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위를 걷고, 먹이를 찾는 모습을 아주 오랫동안 관찰했다.


독특한 점이 몇 가지 발견됐다. 암컷과 수컷으로 보이는 한 쌍이 붙어 다닌다. 그러다 다른 짝이 자신의 거리를 침범하면 큰 소리와 날갯짓으로 쫓아낸다. 다른 하나는 고개를 돌려 몸속에 얼굴을 묻고 잠을 잔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리 하나로 서서 자는 녀석이 많았는데 신기했다.

순천만국제습지센터 내에서 만난 칠게다. 조간대 진흙질 바닥에 은신굴을 파고 산다.

야생동물원을 가면 홍학과 달리 사육장에 갇혀 있는 동물을 볼 수 있다. 사슴, 프레리도그, 사슴, 돼지. 온갖 종류의 조류 등등 좁은 공간에 꽤 많은 종이 산다. 그중 장난을 치려고 헤엄쳐오는 물범이 기억난다.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생명체를 가둬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동물원, 썩 편치 않은 느낌으로 둘러봤다.


그다음부터는 쭉 순서대로 걸으면 된다. 한국정원은 창덕궁의 비원을 축소한 공간이다. 경사가 있는 편이라 노약자나 임산부는 피하는 게 좋다. 언덕을 내려와서 꿈의 다리는 건너면 국가정원의 동편에 진입한다. 참고로 국가정원은 순천의 지형을 모델로 디자인됐다.

중국 정원의 입구다. 국가정원에는 총 13개국의 세계정원이 조성됐다.

정원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동선을 떠올려 보면 우리는 대문을 지나 정원을 통과해 집에 들어간다. 국가정원은 각국의 정원을 축소해서 만들어 놨는데 그 모습이 조금은 어설프다. 정원이기에 집이 생략됐고, 대문과 정원만 존재한다. 어색할 따름이다.


세계정원보다는 정원 사이사이를 걸으면 이동하는 공간이 좋았다. 걷다가 피곤하면 벤치에 누웠다. 하늘을 보며 쉬었다. 물이 부족하면 길가 음수대에서 채웠다. 바람에 풀과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그 위에 앉아서 울어대는 새소리가 국가정원의 매력으로 여겨졌다.

호수정원이다. 봉화언덕(왼쪽)에 올라서면 순천의 지형을 본떠 만든 국가정원이 한눈에 보인다.

순천만은 슬로우 공간이다. 웃고 떠드는, 그런 재미있는 장소가 아니다. 걷고 쉬고, 머리를 비우고 식히는 치료의 현장이다. 많은 사람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가 그것이라고 생각됐다. 거기다 사진을 찍기도 좋으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발길을 끊기지 않는다.


원래대로라면 동문의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으로 직원들만 이용하는 제한 영업 중이다. 어쩔 수 없이 출구에 있는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벤치에 앉아 라면을 뜨면서 습지로 가는 길을 알아봤다.

국가정원에서 습지까지의 이동시간은 자차 10분, 버스 30분이다.

습지로 가는 길

국가정원(동문) 정류장에서 66번을 타면 습지에 도착한다. 30분가량 걸린다. 차편이 하나뿐이고 배차 간격도 길다. 놓치면 긴 시간을 기다려야 탄다. 그래도 버스를 타고 움직여야 현지의 삶을 엿본다. 여러 사람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한 여성이 고양이가 담긴 이동장, 캐리어, 거기에 쇼핑백까지 들고서 좌석에 앉아 있었다. 고양이는 자꾸 울었다. 승객과 기사님의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누가 왜 동물을 데리고 타냐고 뭐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다. 분명 도시에서는 그랬을 것이다. 아니면 무시무시한 침묵으로 상대방을 짓눌렀을 것이다.


그는 우는 고양이를 꾸짖으며 어서 이 상황이 끝나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할머니들과 학생들은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다 짐을 챙겨 들고서 어렵사리 버스를 내리는데 소란스러워졌다. 그가 한 정거장 일찍 내린 것이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마침 뒷문에 서 있어서 캐리어를 대신 실어주었다. 그러면서 기사님이 화를 낼까 봐 두려웠다. 잠시 후 어디서 내리냐고 물으면서 천천히 하라고 괜찮다고 말해주신다. 할머니들도 말을 한 마디씩 보태면서 어디서 고양이 소리가 들린다면서 웃으며 분위기를 풀어준다. 그 따뜻함이 나에게는 좋은 귀감이 됐다.

170만 평의 갈대숲은 철새들의 보금자리다.

습지는 코스가 간단하다. 어디까지 갈 것인가를 정하면 된다. 갈대숲 탐방로는 1시간, 용산전망대까지는 2시간 코스다. 첫 방문이라면 용산전망대까지 다녀오기를 추천한다. 남해에서 순천만으로 들어오는 연안 습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장소다.


갈대숲 탐방로는 국가정원과 습지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웠다. 산책로 아래의 펄에서는 칠게와 망둑어를 비롯한 수많은 생명체가 움직인다. 갈대와 갈대 사이의 숨겨진 공간에서는 새들이 이리저리 울어댄다. 밀림의 깊숙한 곳에 있는 착각이 들었다.

순천만의 S자 갯골 수로를 볼 수 있는 용산전망대다.

에필로그

4시쯤이 돼서야 여행을 마쳤다. 다시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옆에 바닷일을 하다 오신 어머님들이 앉는다. 오늘 잡은 낙지를 보여주신다. 꾸물꾸물 움직이는 게 힘차다. 그리고선 나누자며 친구와 너스레 통화를 하신다. 느림과 나눔, 그렇게 두 단어로 하루의 순천 여행이 요약됐다.


그 밖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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