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함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윤식 Aug 25. 2020

상대의 두려움도 배려하자

스마트폰을 줍고 찾아준 이야기

어제의 일이다. 망가진 몸을 이끌고 산에 올랐다. 지난 폭우로 무너진 도로는 임시 포장됐다. 가로등은 아직 복구되지 않아 길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보이는 건 전조등이 비추는 바로 앞뿐이다. 들리는 건 부스럭거리는 나무소리와 음산한 소쩍새의 울음소리뿐이었다.


정상을 1.5km 남긴 지점이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검정 직사각형 물체가 불빛에 비쳤다. 그냥 지나치다 돌아가서 확인했다. 최신 기종인 갤럭시 S20 스마트폰이다. 지문 잠금으로 채워져 있었다. 스카이라인 GTR이라는 차량 사진이 설정된 배경 화면만 볼 수 있었다.


마침 하얀색 중형 세단 한 대가 건너편에 시동이 꺼진 채 세워져 있었기에 찾아갔다. 내 불빛에 시야가 가릴까 봐 라이트는 끄고 다가갔다. 그러니 서로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놓였다. 차 안의 탑승자 인원과 성별은 가늠할 수 없었다.


차량에 가까워지자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서둘러 창문을 올린다. 난 창문을 두들기면서 묻는다.


“혹시 이 핸드폰 본인 거 아니세요?”


안경을 쓴 40대로 추정되는 여성이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먹던 빵을 내려놓는다. 동승자는 없어 보였다. 그녀는 후들거리는 목소리를 힘겹게 냈다.


“무... 무슨 일이세요?”


“아, 네. 저쪽에 핸드폰이 떨어져 있어서요. 잠깐 창문 좀 내려보실래요?”


그녀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듯 무슨 일이냐는 질문을 반복한다. 그러다 뒷좌석의 창문을 삼 분의 일만큼 열었다. 다시 대화가 이어졌다.


“혹시 이 핸드폰 본인 거 아니세요?”


기어봉 근처에 손을 뻗어 더듬는다. 스마트폰이 있는지 확인한다.


“제 것 아니에요...”


“네. 알겠습니다.”


자전거를 돌려 다시 정상으로 나섰다. 그녀만큼 나도 당황스러웠다. 선의가 상대방에게 두려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며칠 전에도 한 여성에게 핸드백에서 물건이 떨어졌다고 알려주는데 상대방이 화들짝 질겁하여 오히려 내가 놀랐다.


선의의 언행도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깨우침을 얻는다.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잘못은 없지 않은가. 세상이 섬뜩해서 그런 것이다.


핸드폰은 산 밑의 파출소에 맡기기로 했다. 그러나 좀 전의 경험으로 정상에 도착하고 다시 내려가는 시간 동안에 절도범으로 오해받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떨어진 물건을 가져가면 점유이탈물 횡령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정상에 도착해서 주변 파출소에 전화를 걸었다.


“수고하십니다. 여기 00을 오르는 길에 핸드폰을 주웠는데, 이따 내려가는 길에 맡길게요.”


평소보다 짧게 휴식하고 산에서 내려갔다. 원래 도중에 한 번 쉬는 지점이 있는데 그냥 지나쳤다. 그저 빨리 이 핸드폰을 수중에서 떠나보내고 싶었다.


파출소에 도착했다. 나이 많은 경찰관이 마당에 물을 뿌리면서 도로의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사무실에는 다섯 명의 경찰관이 근무하고 있었다. 코로나19 감염이 유행하는 탓에 체온을 재고 방문자 명부에 내용을 기입하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핸드폰을 건넸다. 접수 서류에 소유권을 포기한다는 표시를 하고 그 밖의 신상을 적었다. 남의 물건에 손대는 것은 범죄이고 주운 물건도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상식이기에 특별할 것 없는 일이었다. 경찰관이 감사하다며 나를 배웅했다.


시간이 지체됐다.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와 잠시 자전거를 세웠다. 방금 다녀간 파출소인데 핸드폰 주인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단다. 민망했다. 대단한 일도 아닌데 굳이 통화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그래도 통화 한 번 해보세요. 감사하다고 말씀하고 싶다네요.”


“아... 아뇨, 괜찮습니다.”


“한 번 받아보세요.”


스마트폰이 주인이 수화기를 건네받았다. 목소리가 앳된 남성이다.


“핸드폰을 이렇게 맡겨주셔서 감사해요.”


“아뇨, 별말씀을... 지나가는 차량이 핸드폰을 밟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핸드폰을 찾으려고 몇 번이나 다시 산을 올랐거든요.”


“제가 자전거 타고 내려왔거든요. 혹시 보셨을 수도...”


“아~ 그 하얀 불빛. 봤어요. 기억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네. 그럼 핸드폰 잘 쓰시고요. 이만 끊겠습니다.”


내가 핸드폰을 사준 것도 아닌데 잘 쓰라는 맺음말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이번 일을 계기로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에 대한 호의가 커졌으면 하는 바람 정도만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산중에서 핸드폰을 주웠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떤 친구는 "호구냐? 왜 그걸 돌려줘?"라고 핀잔을 줄 것이다. 어떤 친구는 "그냥 지나가지. 오지라퍼야."라고 비아냥거릴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의 생각 따윈 내 알 바 아니라고 되뇌며 집에 도착했다.


짧지만 모두가 어색했다. 여성 운전자가 나를 두려워해야만 했던 만큼 우리 사회는 안전하지 않은 것이다.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은 주인이 찾지 못했을 거로 생각한 만큼 우리 사회는 올바르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현실은 상식에서 뒤틀려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소함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