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투와 꽁야

바간에서

by 그루

바간에 간 첫 날

뽀빠산에 다녀온 후

저녁을 먹을 겸 에야와디 강 산책도 하러 호텔에서 나오는 길

까맣게 그을은, 눈이 생글생글 웃어주는 아이를 만났다.


아직 어린 나이인 것 같은데

마차에 앉아서 게임을 하고 있는지 폰을 두드리고 있었다.

바간에서는 horse택시의 번호가 있어 정해진 사람만 드라이버를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던 터였다.



"안녕! 너 마차드라이버야?"

끄덕끄덕

"내일 마차 하루 빌릴 수 있어?"

끄덕끄덕

"그럼 내일 새벽 선라이스 sunrise도 해 줄래?"

끄덕끄덕

"얼마에 해 줄 수 있니?"

"3만 2000짯"

"에이, 비싸다, 3만짯에 해줘"

웃으며 끄덕끄덕


"니 이름은?"

"투투"

"아~ 투투, 귀엽구나 이름, 그럼 내일 호텔 앞으로 몇 시에 올래?"

"내일 새벽 5시에 올게"

"그래 그럼 내일 보자"


내일은 일요일인데다 미얀마의 중요한 세리머니가 있는 날이라고 들었었다.

마차를 빌리기가 어려울 거라는 소리에

살짝 걱정이 되었는데, 급 기분이 좋아졌다.


어둠이 내린 바간의 마을길

타닥타닥 말발굽 소리, 투투였다.

강가에 있는 로카난다사원에 간다고 했더니 타라고 한다.

"얼마?"

무조건 그냥 타란다.


어두운 길, 로카난다까지 간다고 하니 어린 마음에 걱정이 되었다보다.

어두워서인지 로카난다까지는 생각보다 거리가 꽤 멀었다.

로카난다앞에서 내일 보자, 헤어지고 나니

행복한 얼굴로 말을 몰고 돌아선다.


로카난다사원은 에야와디 강변에 위치한

바간에서 가장 오래된 양식 부파야를 닮은, 에와야디강의 등대 같은 쀼양식의 아름다운 파야이다.

데이트하기 좋은 강변이어서 나이 든 사람들보다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많이 출입한다.


로카난다를 둘러보고 랜턴을 들고 호텔로 찾아오던 길

까만 길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가까이 다가온 마차 드라이버의 얼굴

투투였다.


딴에는 적당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달려온 것이다.

"너 일부러 온 거야?"

"음~음~" 하면서 고개를 젓는다.

일부러 온 것이 민망한 듯

다른 곳에 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고맙다 투투~"

투투덕에 낯 설고 어두운 길 산책은 망했다.


그렇게 시작된 투투와의 인연

늦은 밤, 촛불 밝힌 호텔의 라운지에 있는데 투투가 찾는다.

아니, 투투와 같이 온 투투의 형이었다.

형이 마차의 주인이란다.

"그러면 그렇지!" 어쩐지 너무 어려 보이더라.

내일 아침 5시는 너무 이르니 5시 30분에 오겠단다.

"오케이~"


다음날 새벽 5시 30분

호텔 앞에 마차 한 대, 혹시나 형이 아닐까 했는데 투투다.

말의 이름을 물었더니 '아자니'라고 한다.

가지고 있는 말채찍은 '아자니'와의 대화처럼 '아자니'의 몸을 살짝 가볍게 간지럽힌다.

말을 배려하는 아이의 순수한 마음에 형이 오길 바랬던 내 마음이 가벼워졌다.


사원에 내려주고, 다시 이동하는 사이

투투는 마을 친구, 형, 아저씨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즐긴다.

수다를 즐기는, 투투를 바라보니 오물오물 뭔가를 씹고 있다. 투투의 입 언저리가 짙은 자주색이다.

'꽁야'다.

처음엔 눈치를 보는 것 같았는데, 다른 장소에서는 아예 대 놓고 씹는다. 계속 먹어야만 하는 것이다.

"투투~ 너 지금 먹는 것 좋아?"

끄덕끄덕

"그거 빨갛게 땅바닥에 뱉는 거잖아"

끄덕끄덕

"조금만 먹어 응~" 그래 놓고 미안했다.


2015년 1월 4일 바간, 우리를 사원에 내려 놓고 '아자니'의 눈을 가리고 꽁야를 씹으며 뭔가에 열중하는 '투투'


오래 전 처음 인도를 갔을 때의 일이다.

릭샤왈라라고 부르는 릭샤기사가 뭔가를 한 참 씹고 나서, 한 컵은 족히 되어 보이는 자줏빛 액체를 입에서 길바닥에 쏟아낸다.

그리고는 곡예를 하듯 질주하고 질주한다.

배도 고프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용감해진단다.

의미 없는 웃음을 날리는 그들의 눈에서는 아무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인도인들이 씹는 것은 '빤', 식물 잎사귀에 마취성이 있는 청향제를 올려 말아서 씹는 것이다.

요즘은 수월하게도 인스턴트로 된 '빤'은 언제든지 구할 수 있어 거리는 온통 붉은 빛 액체로 심각하다.

이런저런 오물과 함께 길바닥에 각인된 뻐얼건 액체는 그야말로 내겐 혐오감이 섞인 안 좋은 추억이었다.


투투가 씹는 '꽁야'와 투투의 눈빛은 내게 인도의 그 날들을 떠 올리게 했다.

호텔 앞에서도, 주스집 옆에서도, 거리 좌판에서, 사원의 입구에서도

둥근 식물 이파리 뒤에 석회를 바르고 여러 가지 씨앗을 올려 말아서 씹는 '꽁야'는 투투를 만난 이후로 어디에서든 눈에 띄기 시작했다.

맨발로 다니는 사원에서도 꽁야를 씹고 쏟아낸 붉은 액체 자국은 나타났다.


미얀마는 깨끗하다.

아니 미얀마 사람들이 깨끗하고 부지런하다.

사원이야 두말 나위 없고 집 안팎으로 깨끗하며 거리나 화장실도 청결한 편이다.

옷도 말끔하게 입고 다니고 피부도 깨끗하다.

그런 미얀마의 인상에서 남자들의 뻐얼건 입에서 쏟아내는 붉은 액체는(심지어는 승려가 꽁야 파는 곳에 서있는 것을 보았다.)

거슬러 올라가면 내려오는 전통일 수도 있는 한 나라의 문화이며, 현실이다.




점심 때가 될 무렵, 기다리기로 했던 장소에 나타나지 않은 투투, 한참이나 힘들게 찾았던 일 때문에

가까워졌던 사이가 서로의 노여움으로 서먹서먹해졌었다.

난 이 일이 '꽁야'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저녁, 담마야지카사원에서 일몰을 보고 돌아오는 시간

헤어져야 하는데, 안아주고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더 따뜻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내 잣대가 너를 가늠했었다고


어린 투투 옆에서 바간평야를 달리던 그 시간

꾸밈없이 투박한 밍글라제디사원의 속살을 보며 행복했던 시간

사랑스럽게도 채찍의 끝 부분으로 살살 건드리며 아자디를 배려했던 투투

짐짓 우연인척, 어두운 밤길에 두 번씩이나 우리를 위해 달려온 투투


'꽁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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