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의 발리 - 길리 트라왕안
길리 트라왕안으로 들어가는 날
길리 트라왕안Gili Trawangan에 들어가기 위해 체크아웃을 하면서, 큰 짐은 리조트에 맡기고 블루버드 택시를 요청하였다. 인도네시아에 와서 푸른 반팔 셔츠 유니폼을 입은 블루버드 기사님을 보면 택시 요금 흥정을 안 해도 되니 부담이 없고 안심이 된다.
방살 페리 터미널로 가는 길은 다시 봐도 멋진 드라이브 코스이다. 왕복으로 이 길을 다녀왔으나 자꾸 봐도 해안 풍경은 처음 본 것처럼 신선하다.
풍경에 취해 가는 길, 학생들이 인도네시아 국기로 치장을 하고 경적소리로 서로 화답하며 기쁨에 겨워 자축하는 라이딩 행진을 한다. 창문을 열어 그들의 기쁨을 몸으로 느끼며 맘껏 축하해 주고 싶었다. 1945년 8월 17일은 인도네시아가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날로 72주년 독립 기념일이다. 우리나라의 광복절과 이틀 차이다.
태평양 전쟁의 발발과 함께 1941년 일본은 동남아 침공을 시작했다. 약 350년간 인도네시아를 지배하던 네덜란드는 1942년 동부 자바 깔리쟈티에서 일본에 무조건 항복하면서 기나긴 식민지배의 끈을 놓는다. 나라만 다르지 인도네시아는 일본의 지배를 그대로 이어받는다.
네덜란드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일본의 야욕을 간과해 나라를 고스란히 다른 나라에 넘겨준 꼴이 된 것이다.
기나긴 네덜란드 식민지배와 3년간의 짧지만 혹독했던 일본에 의한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그들의 독립절 풍경은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한 달 동안 온 나라가 축제로 들썩이는 이들과는 달리 대한민국 국민인 나는 8월 15일 광복절 하루조차도 축제처럼 지내본 적이 없었다. 내가 격은 광복절 행사는 여름방학이 끝나가면서 더위가 식어갈 무렵 거리에 펄럭이던 태극기와, 광복절 기념식을 티브이에서 봤던 것이 전부였다. 부끄럽지만 우리의 광복절이 72주년인 것도 인도네시아 전국 방방곡곡에 펄럭이는 이들의 깃발을 보고 처음 알았다.
족자카르타를 여행하던 8월의 어느 날, 돌아다니다가 더워서 쉬려고 일찍 호텔에 들어왔더니 전통 떡과 다과를 차려놓고 독립을 축하하는 에프터눈 티를 권한다. 덕분에 그날 저녁을 건너뛰었다. 시간을 뛰어넘어 독립의 기쁨을, 마치 그날처럼 만끽하는 그들이 부러웠으며 독립일 당일 날, 이들이 내뿜는 기쁨의 열기를 보고 싶었다.
독립 기념일과 국기, 메라 푸티mérah putih
7월 30일 두마이Dumai항을 통해 인도네시아에 입국을 한 후 부키팅기와 파당, 자카르타와 족자카르타, 발리와 롬복 등 어디를 가도 인도네시아 독립 기념일을 경축하는 분위기로 거리와 마을마다 집집마다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었다.
빨간색과 흰색으로만 만들어진 인도네시아 국기는 사뭇 인상적이었으며 국기에 있는 두가지 색만으로도 무한히 많은 세련된 디자인으로 경축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국기를 태극기라고 하듯이 인도네시아인들은 그들의 국기를 메라 푸티mérah(빨간색) putih(흰색) 라고 한다. 1945년부터 사용된 국기는 결백(흰색) 위에 선, 용기(빨간색)를 뜻한다고 하는데 국기의 원형은 향신료 무역으로 번영을 누렸던 마자파힛Majapahit 왕조(1293~1520)의 상징이었던 아홉 개의 빨간색 띠와 하얀색의 띠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채도가 제일 높은 빨강은 사람들의 눈에 가장 띄는 색이며 빨강과 흰색의 대비는 멀리서도 가장 잘 보이는 색의 대비 중의 하나이다. 게다가 따뜻한 색의 대명사인 빨강과 중성 색인 흰색, 두 색의 혼합은 분홍으로 가장 긍정적인 색깔이다. 누가 국기를 만들었는지 세계의 어떤 국기보다도 멋지고 상징적이었다.
부족이나 집단을 상징하는 깃발이 국가를 상징하는 깃발이 된 것은 프랑스혁명(1787~99년) 때 사용한 삼색기가 처음이다. 같은 민족이나 역사, 종교 등을 공유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상징적인 의미의 비슷한 징표나 색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각 나라의 국기를 보면 비슷해 보이는 국기들이 많다. 인도네시아의 국기도(전문적으로 들어가면 빨간색이 조금씩 다르지만) 모나코나 폴란드의 국기와 비슷하다. 다른 나라의 국기와 혼동이 될 리 없는 태극기(중국의 도교 사원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가 내 나라의 국기라는 것이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었지만)는 그런 면에서 독보적이다. 우리나라는 1882년 수신사로 일본에 갈 때 사용한 태극기가 시초이며 이것을 고종은 1883년 조선의 정식 국기로 공포했다.
나는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간결한 국기가 좋다. 태어날 때부터 내 나라의 상징이었으니 어쩌면 태극기는 운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극기는 아름답지만 단순함에서 너무 멀며, 가까이하기에는 거리감을 느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업으로 살았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어린 시절 기억 속에 한 번도 대한민국의 국기를 정확하게 제대로 그려 본 적이 없다.
스피드 보트와 퍼블릭 보트
방살Bangsal 페리 터미널은 숙소에서 북쪽으로 30여분 이상 가야 한다. 택시 기사에게 방살로 가자고 했더니 대뜸 스피드 보트를 안타냐고 묻는다. 기사님이 왜 묻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퍼블릭 보트를 탈거라고 강조해서 말했다. 이후에도 페리 터미널에 도착하기 전까지 기사는 퍼블릭 보트를 슬로우 보트라고 말하면서 “정말 스피드보트 안 탈래?” 하고 네 번은 물었던 것 같다. 블루버드 택시 기사까지도 줄기차게 권유하는? 스피드 보트는 롬복 승기기 해안선에 있는 각 선착장에서 탈 수 있어 자유롭게 손님을 Gilli로 운송할 수 있다. 하지만 퍼블릭 보트를 타려면 방살 페리 터미널로 가야 한다. 물론 방살에서도 스피드 보트는 탈 수 있다.
규모가 큰 리조트에서는 운영하는 운송수단을 이용하여 스피드 보트와 연계해서 운영하기도 한다. 가격은 몇 배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천차만별이다. 그렇게 대부분 외국인은 스피드 보트를 이용해서 길리로 들어간다.
기사는 방살 페리 터미널 근처 블루 버드 택시 주차장에서 내려준다. 매표소까지는 한참을 걷거나 마차를 타야 한다. 매표소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으나 고개를 젓는다. 10분쯤 걸어가면 나오는 매표소까지는 마차들이 오고 간다. 택시와 마차가 서로 같이 잘 살자고 하는 시스템인데 마차 요금은 사람에 따라서 바가지를 쓸 수도 있고 저렴하게 갈 수도 있다. 택시에서 내리는 우리를 보고 온 마차는 5만 루피아를 부른다. “에이, 아저씨, 너무하다. 우리는 짐이 없어요. 걸어갈게요.” 하고 약 10분쯤 걸어가니 매표소가 나온다. 짐이 많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마차를 타는 것이 좋지만, 그 길을 걸어보니 20,000루피아(우리 돈 2,000원)에서 10,000 루피아면 적당할 것 같다.
바다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몰려있는 오른쪽 건물로 들어가니 거의 백인들인 외국인들로 깜짝 놀랄 만큼 빽빽하다. 일단 퍼블릭 보트를 타려고 한다고 했더니 이곳은 스피드보트 티켓만 판다고 한다. 방살에서도 스피드보트가 운행이 되니 택시 기사는 끝까지 스피드보트 탑승을 권유한 것이다.
퍼블릭 보트 티켓 매표소(바다를 보며 왼쪽)에는 현지인들만 몇 사람 있을 뿐 한산하다. 외국인들은 대부분 스피드 보트를 이용하니 묻는 것이지만 표를 달라고 했더니 매표원도 묻는다. “너희 스피드 보트 안 타니?” “응, 퍼블릭 보트 표 두 장 줘”, 마지막까지 묻는 매표원까지도 호객꾼으로 보일 정도다. 퍼블릭 보트 요금은 항구 이용 요금 2500루피아 포함해서 1인당 17,500루피아(우리 돈 1,750원 정도)다. 스피드 보트 요금이 10배 이상이니 현지인들이 합심해서 외국인들에게 스피드보트를 태우려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게다가 현지인들보다 몇 배가 많은 외국인들이 주민들을 위한 값싼 퍼블릭 보트를 이용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현지인들에게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호객꾼 들은 퍼블릭 보트를 굳이 스피드 보트와 반대되는 단어인 slow 보트라고 부른다. 하지만 트라왕안까지 25분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퍼블릭 보트는 결코 느리지 않다. 다만 지나가는 배가 많기 때문에 가벼운 퍼블릭 보트는 놀이공원의 바이킹 수준으로 계속 흔들린다.
짐이 많다면 스피드 보트를 타는 것이 좋다. 스피드 보트는 타고 내릴 때(타보지는 않았지만) 짐이 젖지 않도록 해안에 안전하게 내려줄 것이다. 퍼블릭 보트는 타고 내릴 때 발이 바닷물에 젓는다. 순간 포착을 잘 해서 타고 내리면 신발이나 샌들이 물에 젖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실 이것도 가벼운 배낭을 멨을 때 이야기다. 짐까지 무겁다면 좀 난감하다.
배에서 내리니 오른쪽으로 퍼블릭 보트 매표소가 있다. 트라왕안에서 나갈 때도 이곳에서 표를 구입했다. 롬복 본 섬 방살 항구에서와 마찬가지로, 나갈 때도 시간에 관계없이 적정 인원이 차면 출발한다.
내린 선착장에서 한동안 멍하니 해안선을 바라보았다. 사람들로 넘쳐나도 해안선은 가슴이 뛸 만큼 아름답다. 들어오는 사람만큼 그들을 위한 먹고 마시는 짐들도 따라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