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 Zhinvali호수변에 산악마을 카즈베기까지 가야 한다. 텔라비를 떠나 지나는 길에 꼭 봐야 할 아나누리성에 도착했다.
아나누리 성채는 13세기에 세운 아그라비공국의 성채이다. 1739년 아그라비성은 라이벌이었던 카사니 Kasni의 Shanshe공에게 아나누리를 빼앗긴다. 4년 후 산스세Shanshe공은 농민반란으로 쫓겨나고, 농민들의 추대로 아그라비백작의 딸과 결혼했던 카헤티의 왕 테무라즈 2세 Teimuraz II세(1680–1762)가 성채의 주인이 된다. 하지만 이후 1756년 농민반란이 또 일어나 성채는 에레클2세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Teimuraz II 세는 에레클II세의 아버지다.
네 귀퉁이에 망루가 서 있고 안으로 들어가서 성벽을 거닐다 보면 매우 공을 들여 쌓은 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벽은 물론 교회 안에 있는 이콘까지 수많은 시간들이 더한 색채로 가치를 더한다.
점심을 때우기 위해 진발리호숫가에 있는 돌 식탁에 앉으니 방목하는 돼지들이 우리 주위로 몰려든다. 연신 풀을 뜯으며 작은 눈으로 힐끗거리는 자세가 경계하면서도 우리에게 다가온다. 돼지가 이렇게 귀엽다니, 우리가 음식을 다 먹은 것을 눈치챘는지 진흙탕에서 몸을 닦는다. 열을 식힌다고 하는 말이 맞겠다. 돼지도 미칠 듯이 더울 것이다.
진발리Zhinvali호수변의 아나누리 성채와 교회
조지아에서는 돼지도 소나 양처럼 방목을 한다.
Georgian Military Highway
조지안 밀리터리 하이웨이는 트빌리시에서 카프카스 산맥을 뚫고 러시아의 블라지카프카즈 Vladikavkaz까지 이어지는 208Km의 도로를 말하며, 조지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이다. 예전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중요한 실크로드였던 좁은 도로는 1783년 착공하여 러시아와 병합 당시였던 1817년 완공되었다.
터키와의 전쟁에서 군대의 이동에 빠른 길이 필요했던 러시아는 이 길을 통해서 흑해와 카스피해로의 접근이 용이해졌다. 현재 조지아는 러시아와 이 길을 통해서 교역을 하며, 이 길은 조지아의 대표적인 관광도로가 되었다.
아나누리에서 카즈베기까지 가는 동안은 실제로 눈을 뗄 수가 없는 절경들의 연속이다. 게다가 208Km의 도로 주변에는 아름다운 조지아의 유산들이 널려있다.
아나누리에서 1시간쯤 가니 눈 녹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버스는 거친 숨을 쉴 만도 한데 산맥을 타고 두 시간여를 구불구불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검은 녹색의 카프카스에서 가끔 만나는 도로 위의 소나 양떼들은 지나가는 차를 잠시 쉬어가도록 만든다.
계곡의 풍경은 어느새 깊은 골짜기의 고산의 풍경이다. 산등성이의 초원에는 하늘의 별보다 많고 아름다운 야생화와 양떼들이 점점이 수도 없이 박혀있다. “그냥 이대로 좋아”라고 외치고 싶은 숨 막히는 광경이다.
겨울철 스키리조트로 유명한 Gudauri지역을 지나면 즈바리 고개(Jvari, 2,379m)에 다다른다.
즈바리고개는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다닐 수 없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 독일의 포로들을 동원하여 6개의 터널을 뚫었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터널 옆길로 다니지만 눈이 쌓이면 터널로 통행을 한다.
조지안 밀리터리 하이웨이
즈바리 고개, 1983년 설치된 조지아-러시아 우호 기념탑
아름다운 즈바리 고개의 뷰 포인트에 1983년 설치된 조지아-러시아 우호 기념탑이 보인다. 자칫 흉물스러운 설치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시큰둥했지만 그냥 올라가 보기로 했다. 설치물 벽화에는 러시아 예카테리나 여제를 중심으로 군사도로가 착공된 해인 1783년과 200주년이 되는 1983년 숫자 표시가 되어있다. Georgian Military Highway 착공 200주년을 기념하면서 우호를 다짐하자는 뜻의 설치물이다.
2008년 8월 7일, 조지아와 러시아의 전쟁은 친러성향의 남오세티야가 분리독립하려고 하자 이를 저지하려던 조지아군에게 이 길을 따라 진군한 러시아가 개입해서 조지아의 항복을 받아낸 전쟁이다. 결과적으로 남오세티야는 조지아로부터 독립한다.
2015년 8월 8일 조지아와의 전쟁 7주년을 맞아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조지아와의 전쟁을 "국내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국민과 국가를 지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남오세티야를 자신의 국가라고 언급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사건과 비슷한 수순이다.
카즈베기(스테판쯔민다)
스테판쯔민다Stepantsminda마을에 들어와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왔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신청을 한 사륜구동 차량으로 게르게티 Gergeti교회에 올라가기로 했다.
조지아사람들이 ‘쯔민다 사메바’로 부르는 게르게티 Gergeti Trinity Church교회에 오르는 길은 야생화로 가득하니 덩달아 행복하다. 해발 2,170m의 산 정상의 14세기에 지어진 담백한 교회 모습은 달리 뭐라 표현해야 할까, 그저 참하고 아름답다. 조지아사람들이 신성시한다는 이 교회는 전쟁이나 나라의 위기가 있을 때 교회의 중요한 보물들을 이 곳에 보관했다고 한다. 교회를 지나서 산악초원지대를 올라가면 2950m에 게르게티 빙하가 있다.
교회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내 안의 번뇌를 아랫마을에 다 내려놓고 올라와 있는 것 같은, 내가 생각했던 천국의 모습처럼, 이만큼 아름다운 곳이 더 이상 없을 것 같았다.
개르게티 사메바 교회
교회에서 내려다 본 스테판쯔민다 마을
이곳에 다시 온다면, 아니 꼭 다시 와서 “걸어서 올라가 보리라” 생각했다. 마을로 내려오니 Alexander Kazbegi(1843~1893)의 동상이 서 있다. 이 마을 출신인 Alexander Kazbegi는 조지아와 러시아에서 명성을 얻었던 작가로 1882년 조지아의 로빈후드라고 할 수 있는 Patricide를 발표, 산적 Koba의 의로운 삶을 표현했는데 스탈린은 지하활동 시절 주인공 Koba의 이름을 사용해서 활동했었다고 한다.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5,047m 카즈벡의 최고봉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를 않는다. 마치 신들도 저녁 만찬을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