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후 복직을 한 후에 양가 어머니들이 번갈아가며 육아를 도와주셨고 여의치 않을 때는 등원도우미 선생님 도움을 받았다. 모든 '계획'이라는 놈은 정말 생각처럼 되어주지 않아서 얼마간은 나로서는 꽤나 큰 손해를 감수하고 시간선택제 근무를 했었다. 사실 시간선택제 근무를 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말 부부하는 워킹맘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금요일 밤, 수서발 SRT가 동대구역에 한시라도 빨리 닿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남편을 애타게 기다렸다기보다(^^;) 남편이 육아를 전담하는 그 시간을 애타게 기다렸던 것 같다.
육아휴직 기간에 서울에서 살 때, 돌이 채 되지 않아 걸음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아기를 아기띠에 둘러매고 나가 키즈카페에 다니기 시작했었다.
서울에서 우리가 살던 집은 20평 남짓 되는 작은 아파트였는데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 하루종일 아이와 둘이 집에서 보내기엔 너무 답답했다. 서울에 있는 키즈카페 중에 영유아들이 많이 가는 장소를 말 그대로 폭풍 검색해서 부지런히 다녔다.
당시 우리 가족은 성북구에 살았는데 강남에 있는 키즈카페에서 눌러앉아 있다가 남편이 퇴근하는 시간 맞춰 만나 저녁을 먹고 함께 귀가하기도 했다. 가는 길에 카시트에 탄 아이가 너무 울어서 멘탈이 탈탈 털리고, 퇴근길 지옥 교통체증을 미처 생각지 못해 정말 고생했던 기억도 있다. 체력은 저질이어도 우울한 건 못 참는 초보 엄마였다.
아이와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을 듬뿍 보내야지 생각하고 미국에 왔지만 막상 주말 또는 평일에 어쩌다 짬이 나면 키즈카페만 섭렵하고 다니던 한국엄마라 미국에 와서 하던 가닥대로 그런 것들을 찾으니 아무리 폭풍 검색을 해도 나오질 않는다.
'여기 애들은 어디 가서 노는 거야..'
초반에는 여기저기 지리도 익힐 겸 다니면서 좀 떨어진 애틀랜타로 나가 children's museum 같은 곳에 다녔다. 실내 시설 (정확히는 아이를 좀 놀리면서 엄마도 궁둥이 좀 붙일 수 있는...)이 잘 없는 이곳에서 그나마 키즈카페와 가장 유사한 곳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이고 이곳 생활에 좀 적응하자 동네 아이들이, 그 아이들의 엄마들이 하원 후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가 눈에 들어왔다.
"Park"
한적한 마을이라 널린 게 공원인데 공원에는 크게든 작게든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있었다. 가끔 네다섯 살 정도 아이 하나 둘을 데리고, 누가 봐도 정말 얼마 전에 태어난 것 같은(삼칠일이 지나지 않았음에 분명하다고 한국 엄마스러운 생각을 했더랬다) 아기를 한쪽 팔로 안고(들고...?) 정말 평화로운 모습으로 공원에 앉아있는 여인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동네 엄마들이 우스개로 놀이터에서 아이 꽁무니 따라다니는 엄마는 무조건 '한국엄마'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품 안의 아이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이 벅차서, 만일의 만일의 만일까지 대비한 육아템으로 기저귀 가방 안을 채워 넣고서 수유실이 완비된 백화점이나 유아 키즈카페 같은 곳으로 외출하는데도 숨을 헐떡거렸던 그 시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만약 그 시기의 내가 이곳에서 아이를 키웠다면 내 모습도 저렇게 잠시나마 평화로웠을까.
여러 곳에 있는 공원 놀이터를 다니며 아이는 정말 새까맣게 그을렸다.
더워서 너무 힘든 날은 그냥 힘들게 놀고, 좀 시원해지는 날은 시원하게 놀았다.
모래사장이 있는 놀이터에 갈 때면 정말 흙을 씹어 먹지 않는 이상 그냥 놔두는 엄마들 사이에 끼어서 노니 우리 아이가 흙투성이가 되어도 잔소리가 덜 나왔고, 편리하지 않고 쾌적하지 않다고 불평하던 나도 조금씩 아이와 자연에서 노는 것에 적응해 갔다.
사실 아이는 바로 적응했는데, 엄마가 더 적응이 더뎠다.
이것저것 내려놓는 것에 조금씩 적응해 가는 것이 내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미국생활'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