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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나뭐하나 Jan 26. 2023

천천히 가르치고 깊이 배우는 교육

거의 미국에 오자마자 학기가 시작하는 8월에 아이를 유치원에 보냈다.

하루빨리 등원하는 편이 아이의 적응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다.


등원은 8시. 빠르다.

하원은 2시 45분. 역시 빠르다.

그리고 직접 데리러 가야 한다.  

한국에서 1분 거리 코 앞에 있는 유치원에 다니거나, 집 앞에 3시 반에 내려주던 셔틀에 익숙해졌던 터라 당황스럽다. 출근하는 대신 학교생활을 하면서 육아를 하게 되어 시간적으로 여유로워졌어도 마냥 여유롭기만 한 스케줄은 아니다.


그렇지만 워킹맘 워킹대디를 위한 연장 보육이 정말 잘 되어있다.

유치원 또는 근처의 수많은 daycare가 아침 6시 30분에 문을 열어 일찍 출근하는 가정의 아이들을 맡아주고 저녁 6시 30분까지 운영한다. 물론 사립 스쿨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만 한국보다 선택지가 다양한 느낌이다. 한국에서 주말부부로 살았기 때문에 주중 독박 육아를 하면서 아침에 8시 출근을 위해 등원 도우미나 양가 부모님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불가능했던걸 생각하면 참 부러운 부분이다. 저녁 또한 마찬가지다.


영어환경에 많이 노출되어 영어가 는다는 것 외에 학습적인 측면에서 배워오는 내용을 보면 한국에 비해서는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틈없이 짜인 한국의 학습 커리큘럼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이런 헐렁 느슨한 커리큘럼에 처음엔 헛웃음이 나왔다. 아이도 느끼는지 어느 날 나와 비슷한 헛웃음을 웃으며 이야기한다.


"아니...ㅋ 스토리 타임 하고 손 씻고 간식 먹고 또 손 씻고, 바깥놀이 한 시간 나가 놀고 또 손 씻고, 점심 먹고 자고 놀고. 놀고 손 씻다가 집에 오는 것 같다니까ㅋㅋ"  


매주 학습 테마가 있지만 한국에서처럼 책상에 앉아서 읽고 쓰는 활동보다는 몸으로 놀고, 그리고, 만들고, 말하는 시간이 많다. 그런 생활을 하면서 아이는 유치원에 재미있게 다녔다. 맨날 노니까 재미있겠지...ㅋ

한국에서 아침마다 치렀던 등원 전쟁은 더 이상 없다.


방과 후에는 즐겁게 배울 수 있는 체육, 미술활동 등을 하는 곳들에 부지런히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식으로 따지자면 '학원'인데, 이게 좀 많이 다르다.

사실 아이는 배우고 엄마는 그 시간에 좀 쉬면 좋겠지만 불가능한 구조다. 우선 학원에 가려면 '라이딩'을 직접 해야 하고, 수업하는 한 시간 남짓 시간 동안 부모가 지켜보며 대기한다. 

한국 엄마 패치가 안 떨어진 초반에는 이 무슨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방식이냐며 속으로 투덜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가 즐겁게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 방식의 큰 장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은 불편하고 배우는 속도는 느리다.

아이들이 적당히 따라오기만 하면 코치나 선생님들은 교정하고 바로잡기보다는 그냥 지켜본다. 아이가 다시 하고 싶어 하면 다시 할 수 있게 도와주지만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는 터치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이벤트는 참 많다. 핼러윈, 땡스기빙,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시즌에는 이벤트를 만들어 가족들이 참여하는 행사를 한다. 한국으로 따지면 '학예회' 같은 행사다.

그런데 준비 과정이 놀랍다.

이걸 언제 준비를 시켜서 공연을 하나 속으로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은 나만의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수업 시간 중에 일부를 할애하는 정도였다. 실제로 공연을 하는 날은 선생님이나 시범 조교가 앞에 서서 동작을 동시 시연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무언가를 외울 일은 전혀 없었다.

그 순간 내가 무대에 섰고, 우리 가족이 나를 지켜본다는 사실을 즐긴다.

그 과정에서 누가누가 잘했나 하는 '비교'가 아니라 '해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미술학원에서 하는 showcase도 마찬가지였다.

특별한 준비는 없었고 수업 중에 만들었던 작품 중 하나를 골라 전시했다.

한국에서 미술학원에 잠시 다닐 때는 수업시간이 끝날 때마다, 또는 중간중간 선생님이 아이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며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지 짧은 브리핑을 해주셨다. 가령 사람을 그린다 치면 처음에는 머리에서 몸이 바로 연결되었다면 이제 목을 그려 사람의 형상을 완전하게 그린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한국에서는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이곳에서는 과정을 좀 더 중요시하는 느낌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과정이 거의 전부인 느낌.ㅋ


그런 유치원과 그런 학원을 아이는 단 한 번도 가기 싫다는 말 없이 즐겁게 다닌다.

너무나 당연한데 그간 잘 생각을 안 해 본 것 같다.

무언가를 배우는 데 있어서 '재미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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