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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나뭐하나 Jan 08. 2023

나 영어 하는 유치원 싫어!

"나 유치원 안 가."


예상은 했었다. 어린이집 다닐 때도 하루 걸러 하루 안 간다고 했었으니까.

별 일 아니었다.

아니, 별 일이 아니어야 했다.


여러 사람들이 여러 방식으로 여러 번의 설득해봤지만 아이는 완강하게 버텼고,

상상도 못 했던 강도의 등원 거부가 시작되었다.


우선 등원 버스에 태우는 일부터가 극강의 난이도였고, 그때 아이를 봐주시던 어머님은 번번이 첫 문턱 앞에서 실패했다는 결과를 난처한 목소리로 알려왔다. 어찌어찌 등원하더라도 유치원 문 앞에서 울면서 버티다가 선생님에게 억지로 떠넘겨져 못 볼 꼴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가는 아이도 보내는 어른도 힘든 일이었다.


담임 선생님과 원장 선생님은 원래 학기 초에 흔한 일이라고 하면서도, 우리 아이처럼 '특히' 거부가 심한 아이도 종종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원에 가서 오전에는 울거나 우울한 상태로 있고 잘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그야말로 온몸으로 하는 '거부'였다.


우리 아이가 왜 '특히' 거부가 심한지 나는 알고 있었다.

타고나길 조심스럽고 예민한 성격이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때 스스로 극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었다. 혹시 넘어질까 겁이 나 걸음마도 늦었다. (콩콩팥팥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이 일찍 트여 주변으로부터 '말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던 터다.


'여긴 완전히 낯선 곳이라 무서운데, 선생님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고, 나는 원래 말을 잘하는 아이인데 말도 한마디 못 하겠고. 정말 싫어!'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부터 아이는 합리적인 이유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나도 말을 못 하겠으니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놀이터에 가면 내 친구들이 없어. 내 어린이집 친구들은 다 00 유치원에 갔잖아. 나도 거기에 다니고 싶어."


그리고 마지막 쐐기를 박는다.

"나한테 영어로 말하지 마! 나 영어 하는 유치원 싫어!"

영어를 배우라고 보내는 유치원인데 배우기도 전에 영어가 싫어진 것이다.


등원 첫 주에 온 가족이 지쳤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왜 저렇게까지 해서 영어유치원에 보내야 해? 엄마가 좀 이상한 것 아니야?'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 아이라 어쩔 수 없이 내가 가장 잘 아는 것도 사실이다.

어린이집 등원도 수월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2년 남짓 겨우 적응하니 이제 새로운 곳에 다시 적응해야 하는 것이다. 영어 유치원이라는 요소가 핑계의 대표주자로 전면에 내세워졌을 뿐,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중에 미국에 가서 현지 유치원에 적응하면서 너와 나 단 둘이서 이 모든 것을 겪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나를 좀 더 완강해지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이대로는 안된다. 

결정을 해야 할 순간이었다.

근무 시간을 조정하고 휴가를 내 오전 등원을 내가 맡았다. 기간을 일주일로 했다.

일주일 동안 엄마인 내가 직접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유치원을 옮기리라 다짐했다.


첫날, 예상대로다. 

아무리 울어도 셔틀에 태웠다. 

아이는 울어재끼는 데 엄마는 계속 밝은 표정으로 같은 말을 한다.

"잘 다녀와! 우리 딸 잘 다녀올 수 있어! 하원하고 엄마랑 재미있게 놀자! ^^" (싸이코패...ㅆ...?) 

둘째 날, 눈물은 나지만 울어재끼는 수준은 아니고 발버둥 치는 것도 덜하다. 

"잘 다녀와! 오늘도 하원하고 엄마랑 재미있게 놀자!" 

셋째 날, 넷째 날은 우는 시늉은 하지만 실제로 눈물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다섯째 날, 가기 싫지만 그래도 오늘만 가면 주말이라는 기대로 순순히 셔틀에 올라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이에게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고 단호하게 했다.

1.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안 갈 수는 없다.

2. 너는 잘할 수 있다. 엄마가 알고 있다.

3. 하원하고 엄마랑 재미있게 놀자.


딱히 대단한 공식도 아니지만 그렇게 하는 것 말고 달리 떠오르는 방법도 없었다.


완전한 적응은 아니었다. 그 뒤로도 종종 가기 싫다고 버틸 때가 있었지만 '일상적인 투정'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1년.

아이는 원에 적응해 즐겁게 노래하고, 단짝이 생기고, 필드 트립을 떠나고, 친구들의 생일파티나 여러 가지 이벤트를 즐기면서 이것저것 배워와서 가족들에게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한국 나이로 6세가 된 신학기에는 작년에 대기를 걸었던 집 앞의 영어유치원에 자리가 나서 옮겼다. 가까워서 훨씬 수월했다. 다니던 곳 보다 조금 더 놀이식이라 그런지, 한 살 더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영어가 좀 익숙해져서 그런지 별다른 적응기간 없이 잘 다녔다. 



아이는 결국 적응한다. 

등원 거부가 심했던 시기에 내 아이의 기질이나 일반적인 변화의 상황 이외에 특별한 다른 사유가 있었다면 지체 없이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반 유치원으로 옮겼어도 비슷한 적응기간을 거쳐서 아이는 적응했을 것이고, 지금처럼 즐겁게 유치원에 다녔을 것이다. 


다 알고 있어도 엄마는 속으로 수 천 번 흔들린다.

'이게 맞는 걸까. 내가 아이를 상하게 하는 게 아닐까. 내 욕심이 아닐까.'

엄마 마음의 중심을 바로 잡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게 아닐까.

그리고 모든 엄마의 마음, 그 중심에는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아이가 있다.

오늘도 엄마라는 이름으로 중심 단단히 잡고 버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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