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아나뭐하나 Jan 08. 2023

영어유치원이 대체 뭐길래...

영어유치원 입학 수난기

분명히 10월쯤일 거라고 했었다.

3월 신학기 영어유치원 설명회가 그때쯤 있을 거라고.

주말에 동네를 오가며, 또 퇴근길에 마주친 아이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이 대단한 비밀 정보를 나누는 첩보원들처럼 미리 귀띔을 해주었다.


내가 염두에 둔 유치원은 우리 집에서 바로 보이는 정문 앞 영어유치원.

우리 집에서 이보다 가까울 수 없는 거리라 등 하원에 매우 유리했고,

놀이식 교육에 소수 정원이고 위치도 좋아 엄마들 사이에서 평이 좋은 곳이다.

등록 경쟁이 치열해서 미리 연락을 해 봐야 할 거라고들 했다.

등록 기간이 정확이 언제쯤인지 궁금해서 어느 날 전화를 걸었다.


- 안녕하세요? 신학기 등록이 언제쯤인지 궁금해서 미리 전화드렸어요.

- 네 어머니~ 저희 원에 관심 가져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런데 너무 아쉽게도 이미 사전 등록이 마감되어 자리가 없습니다 어머니~  



왜요???????????

어째서요?????????????


왜 그런고 하니, 일단 5세 반은 딱 1개 반인데 그마저도 재원생의 동생에게 우선순위가 있고 (저출산이라면서요...) 이미 수개월 전에 우선 운위 TO가 다 찼단다.


차선책을 생각해두지 않은 상황이라 당황스러웠다.

급히 유치원을 찾아가 보기도 하고 여기저기 사정을 알아봤지만 TO가 나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고

우리 아이는 대기 19번이 되었다. 한 반의 정원이 10명남짓인데 19번이면 가망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차선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왜 영어유치원에 보내야 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보육과 교육에 있어 부모마다 기준이 다르고, 국외연수를 계획하고 있던 나로서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기왕이면 아이가 즐겁고 활발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놀이식 교육을 하는 곳을 원했다.


집 주변에 세 군데 정도가 규모가 크고 평이 좋은 곳인데, 한 곳은 대기 19번을 받은 곳이고

나머지 둘도 전화상담 결과 그와 비슷한 10번대 대기번호를 받았다.

'미치지 않고서야... 지금이 몇 월인데...'

새벽 출근길에 속으로 욕을 해댔지만 누구를 탓하겠나. 물정 모르고 설명회 따위나 기다린 내 잘못이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일반 유치원 추첨을 넣거나, 영어유치원 대기 순번이 가까워져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어린이집도 그랬지만, 기관을 선택할 때 대부분의 부모들은(대부분 엄마들은) 수많은 검색과 귀동냥을 한다.

집에서의 거리, 먹는 것, 놀이환경, 선생님들 분위기 등등 고려할게 많은데 유치원은 어린이집과는 또 달랐다.

얼마간이든 학습의 요소가 더해지니 그것 또한 고민거리가 되었다.

대단히 많은 것을 검색하지 않아도 대부분 맘 카페에서 검색어 몇 번만 넣어봐도 일반적인 내용 파악은 되었다.


일반 유치원은 어떤 요소를 중점적으로 내세우느냐에 따라 음악, 미술, 체육 특성화 유치원으로 구분되는 듯 보였고, 영어 유치원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학습 요소가 더해지느냐에 따라 종류가 나뉘는 듯했다.

다만, 많은 일반 유치원들이 시설적인 면에서나 인성교육, 다양한 활동 측면에서 좀 더 풍부한 교육과정을 자랑하는 것 같았고, 영어유치원의 장점은 심플하고 분명하다.

언어 뇌가 활발하게 발달하기 시작하는 시점에 영어환경에 노출시켜 준다는 것.

단점을 생각하자면 또 머리가 아파왔지만, 우리의 경우 당시에는 목표가 나름대로 분명한 상황이어서 계획대로 실행하기로 했다.



일반 유치원과 영어유치원 사이에서 갈등하는 엄마들도 많고 또 그 안에서 어디를 보낼지의 고민들도 많다. 아이 키운다는 게 매 순간이 선택이고, 그 선택들이 모여서 아이의 미래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면 엄마들은 정말 신중해진다. 


영어 유치원 보내야 하겠냐고, 또는 영어 유치원 어떠냐고 물어오는 엄마들이 있다.

그런데 각자의 필요와 상황, 그리고 가치나 모두 너무나 다른데 어떤 하나의 정답이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영어 유치원을 보낼지도 마찬가지다. 

고기 하나를 먹어도 각자 선호하는 단골집이 다를진대 어떻게 맞는 대답이 있겠나. 


나는 아이가 미국생활에 쉽게 적응하기 바랐기에 영어유치원을 보내기로 했고, 등하원이 부담인 워킹맘이라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보내고 싶었다. '엄마표 영어'로 유명한 어느 유튜버의 영상에서 영어유치원의 문제가 아이들의 '서열화'에 있다고 하는 내용을 보았는데, 물론 그런 곳도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다. 내가 경험한 영어 유치원은 그저 일반 유치원에서 하는 여러 활동들을 영어로 하는 정도였다. 아마 학습식으로 유명한 영어 유치원들은 그런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다. 


어떤 방향이든 각자의 필요와 가치에 맞게 충분하게 고민하고 빨리 결정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귀도 활짝 열어놓고 발도 빨라야 했는데 난 그러지 못했다.



내가 노나.


살림을 했어도 그 소리는 나왔겠지만, 내 나름대로는 한계에 봉착했던 때였다.

집에서는 집에서대로 할 일이 천지고, 회사일은 어느 때보다 바빴다.

남편이 오는 주말만을 기다렸고, 월요일이 금요일로 어서 바뀌기만을 바라며 버티던 때였다.


결국 아이는 집 앞에 있는 영어유치원에 등록하지 못했고,

셔틀버스로 10분 정도 거리의 다른 영어유치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학습식도 아니고 완전히 놀이식도 아닌 그 중간 지점의 어딘가를 표방하는 영어유치원이었다.

신입생 오티도 함께 가고, 선생님들도 만나보면서 아이가 익숙해 지기를 기대했다.

붙임성도 좋고 친구들도 좋아하는, 사회성 좋기로 주변에서 인정하는 내 아이가 빨리 적응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면서.


하지만 인생은 항상 안도하는 순간에 뒤통수를 치는 법.


영어유치원 적응기, 그야말로 수난시대가 시작되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