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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나뭐하나 Jan 20. 2023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라는 그 아픈 말

내가 아이를 데리고 미국에 온 이유

일 년 중 겨울은 회사일이 가장 바쁜 시기다.

프로젝트 성격의 일이 추가되는 시즌이라 내가 써내야 할 보고서의 분량이 정해져 있고 3~4개월간 뼈대를 잡고 수정하며 완성도를 높여간다. 제출 전까지 피드백이 반복되는 일이라 아침에 출근시간보다 일찍 가기도 하고 밤 10시 ~11시까지 야근을 하는 일이 잦았다. 


그날도 야근 중이었다. 

그 시기만 되면 만성 두통에 시달렸고 그날도 이미 이른 저녁 타이레놀을 털어 넣고 보고서와 씨름하고 있었다. 당시 본부장님이 가끔 우리 팀에 찾아와 야근하는 직원들을 격려하시기도 하고 농담도 하곤 했는데, 그날은 정말 아무도 나를 안 건드렸으면 싶은 날이었다. 아이가 아팠고,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묻어나는 그녀의 진한 피곤함에 나는 한껏 죄인이 되어 있었다. 서울에 있는 남편은 걱정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는 척을 한다.

"아니, 지금까지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애는 누가 보나~?"

"집에 어머님이 계십니다."

"아~ 시어머니랑 산다고 했나? 대단혀~~ 근데 말이여, 내가 보니까 애는 엄마가 키워야 되더라고. 커보면 애들이 확실히 달러~"


장난하나.



한 직장에서 10년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 보아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과 습관, 말투, 말에 담긴 의미를 잘 안다. 보고서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고 책임자로서 이것저것 걱정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밤늦게까지 집에 가지 못하고 남아있는 직원들을 보니 기특하기도 안쓰럽기도 해서 걸음 해서 가벼운 농담 몇 마디로 분위기를 좀 띄워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본인의 인생 경험을 덧붙여 '애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라는 말에 신빙성을 더해 주신다.

'아... 오늘 진짜 날 잡어....?'

눈앞의 모니터를 뽑아서 창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나는 직장인.

대꾸 없이 머그잔을 들고일어났다. 더블샷으로 내린 커피로 쓰린 속을 더 쓰리게 지졌다. 


그날이었던 것 같다.

나도 내 아이를 내가 오롯이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

수능날이라든지 가끔 어떤 이벤트로 늦을 출근을 할 때 동네에 등원시키는 엄마들의 유모차 행렬을 볼 때가 있다. 삼삼오오 모여서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모닝커피를 한 잔 하러 카페로 들어가는 엄마들 무리를 보면 뭔가 여유로워 보이면서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끔씩 이른 퇴근을 할 때,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놀이터에 있는 아이를 데리러 가 내 구두 뒷굽이 우레탄 바닥을 꼭꼭 찍어 눌러 어색해진 걸음걸이로 아이를 찾을 때, 이 놀이터의 외계인이 된 느낌. 

오피스룩 차림을 한 외계인을 바라보는 엄마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모두들 자기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있는 법이다. 모든것에 장단점이 있다.' 생각하며 평소에 그냥 그러려니 하던 것들이 갑자기 짜증스러워졌다. 


그럭저럭 버텨가고 있던 차에 결정타를 맞았다. 

출퇴근 시간 왕복 2시간, 아침 8시까지 출근이라 6시 반 조금 넘어 집을 나서야 했다. 시어머니와 1년 정도 같이 살았는데 그 이후에는 등원 도우미를 구해 도움을 받았다. 도우미 선생님은 참 좋은 분이셨다. 그런데 아이는 계속 엄마를 찾으며 아침 내내 울었다. 울어서 퉁퉁 부운 눈으로 제대로 먹지도 않고 제대로 씻지도 못한 모습으로 헐레벌떡 셔틀에 오르기 일쑤였다. 

선생님은 아침 6시 30분, 겨울엔 아직 캄캄한 새벽에 우리 집에 오셔서 나와 바통터치를 했다. 아이가 눈을 뜨면 집에 선생님 혼자 계시니 아이 입장에서는 낯선 선생님이 불편하고 엄마가 보고 싶었을 것이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곧 적응할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날 아이를 재우는데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한다.


"엄마, 난 내일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 그런 말을 해~ 선생님도 정말 잘해주시고, 그리고 어차피 유치원 가면 친구들 모두 엄마랑 바이바이 하고 즐겁게 놀잖아~ 하원하면 엄마 만나는 건 똑같고."


"그래도... 아침에 눈 뜨자마자 엄마가 없어진 아이는 나뿐이야. 아침이 오는 게 싫어."


내가 어떻게 대답을 했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현명한 엄마들은 저 물음에 어떻게 대답을 할까, 저 순간을 어떻게 극복할까.

둘째 계획이 없는 나에겐 아이의 모든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다고 믿는 그 '최선'이 정말 최선일까. 아이가 사력을 다해 엄마를 찾을 때 곁에 있어주지도 못하는 게 무슨 최선일까. 그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크면 점점 이렇게 엄마를 찾을 일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니 지금만 좀 참으면 좀 편해진다고들 했다. 

그러나 좀 편해질 때까지, 그때까지, 깜깜한 새벽에 눈물로 하루를 시작하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물론 또 다른 방법도 해보자면 해 볼 수 있었겠지만, 차선책들에 불과했다. 

정말 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강한 나의 '이성'이 내 뒷덜미를 잡아 세웠다. 

결론적으로 나는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파견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국외 연수를 나가는 기회는 극 소수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에 원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던가. 딥빡에 현타까지 제대로 온 엄마 사람의 의지는 생각보다 훨씬 강했는지 지금 나는 아이와 미국에 와있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

나는 그 말이 왜 그토록 화가 났을까. 

내가 키우고 있지 못해서? 

엄마가 된 게 죄도 아니고 왜 엄마만 책임이 있냐는 생각 때문에?

그게 뭐였던 간에. 

누가 뭐라 하든간에.

그게 단 얼마간이더라도.

나도 내 새끼 내 손으로 키워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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