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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나뭐하나 Jan 27. 2023

시어머니와 1년 살기-1

어머님과 함께, 남편 없는 집에서 살기

서울에 조그맣게 신혼집을 마련하고 살다가 아이를 가졌다.

임신 초기, 극심한 입덧으로 출근길 지하철 1호선에 오르는 게 정말이지 고역이었다.


지방에 떨어져 있는 친정 엄마는 내게 왜 안 닮아도 될 것까지 닮냐고, 출퇴근할 때 주머니에 꼭 검은 봉지랑 물티슈 같은 걸 잊지 말고 챙겨서 다니라고 했다. 입덧이 정점을 찍던 시기에는 몸을 일으키기만 해도 분수토가 나오는 지경이 되어 회사를 못 가는 날도 있었다. 걱정이 돼도 자주 와보지 못하는 일하는 친정 엄마 대신 어머님이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오셔서 나를 챙겨주셨다. 


내 기준에서 나는 어머님과 사이가 좋은 편이다. 우리 집과 시댁이 집안 분위기는 달라도 부모님 두 분 다 자식만 보고 한평생 열심히 살아오신 결이 비슷하다. 특히 우리 엄마와 어머니는 두 분 다 사교적이고 공감대가 있어 서로 이해가 깊은 편이다. 


'그래도 시집은 시집이야'라고 하면 엄마는 내게 '그런 시어머니 또 없습니다~'로 응수한다.



아이가 17개월이 되었을 때, 나는 복직과 동시에 회사 본부가 이전한 대구로 내려가야 했다.

남편과 주말부부를 해야 할 일이 걱정이었지만 친정 근처에서 도움을 받아 아이를 키울 수 있으니 그 부분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역시 아이가 생기니 모든 것이 아이 위주로 돌아간다.


17개월이면 돌이 훌쩍 지났으니 많이 컸다고 생각했는데 반에서 우리 아이가 가장 어렸다.

여름 가을 시즌에는 부모님 가게일이 많이 바쁘지는 않을 때라 엄마 아빠가 아이 등하원을 시켜주셨다. 그런데 부모님 일이 바빠지는 겨울에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마땅히 방법이 없었다. 사정을 이야기하자 어머님은 자신이 대구로 와서 아이를 봐주마 하셨다.


그렇게 나는 어머님과 남편 없는 집에서 살게 되었다. (주말부부니까 정확히는 남편이 주말에 '방문'하는 집에...) 


회사 동료들은 어떻게 어머님이랑 사냐고 차라리 좀 힘들어도 사람을 쓰라고 했다. 괜찮은 도우미 선생님 구하기만 하면 내가 퇴근하기 전에 애 싹 씻겨놓고 밥도 먹여 놓으니까 훨씬 수월하다고. 


구인 활동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엄마 퇴근 전까지 낯선 사람과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맘카페에서 이런저런 후기를 읽다 보니 겁도 났다. 나야 어차피 이래도 저래도 힘들 거 각오했지만, 그냥 내 아이만 안 힘들었으면. 덜 힘들었으면. 그 마음이었다. 엄마 아빠 제외하고 할머니만큼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아이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주중에 내가 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매일 퇴근 후 약 3시간 정도.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할머니와 놀이터도 가고 할머니가 해 주는 맛있는 밥 먹고 지낸다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내가 직접 보지 못해 생기는 자잘한 걱정들은 어차피 별 수 없는 일이다.




"엄마아아아아~~~!!!"

퇴근하면 아이가 현관으로 달려 나와 나를 반긴다. 하루의 피로가 가시는 순간이다.

손을 씻고 품에 폭 안아 오늘 하루 보고 싶었다고 할머니 말씀 잘 들었냐고 하고 아이를 보니, 

하원한 상태 그대로다. 

어머님은 저녁 준비 중이신 듯 주방에서 음식 냄새가 난다. 


'아직 안 씻었어?'

'아직 저녁 안 먹었어?'

'배 안 고파?'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내기가 어쩐지 껄끄러워 고르고 고른 말. 

"그냥 먼저 드시지 그러셨어요~"


"김치 냉장고 말이다. 하나 사야 되지 않겠니? 김치가 금방 시어져서 탈이다."

김치를 식탁에 내놓으며 말씀하신다. 

김치냉장고 이야기는 이번이 세 번째다.


아이랑 나 둘이 사는 살림이고 아침은 간단히, 저녁은 아이 식단 위주로 요리하다 보니 별로 김치 먹을 일이 없었다. 남편이 오는 주말에는 한 두 끼 정도 집밥으로 해 먹고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었었다. 그래서 따로 김치냉장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안 해봤다. 


저녁을 먹고 잠투정하는 아이를 겨우 달래 목욕을 시킨다. 머리 말리고 옷 입히고 눕히면 나는 땀범벅에 아직 씻지도 못한 상태. 그래도 힘든 한숨 같은 건 내쉬기가 눈치 보인다. 아이가 울지 않고 등원하는 것만으로도 할머니가 계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금요일 저녁이 오기를 기다린다. 


친정 엄마가 아이를 봐줄 때, 엄마는 내게 퇴근하면 아파트 커뮤니티센터에서 하는 요가를 다녀오라고 했다. 출산 후에 고질병처럼 어깨가 아팠는데 엄마는 꾸준히 운동을 해야 풀린다고 했다. 


누가 뭐란 것도 아닌데 눈치가 보였다. 

어머님이 무릎이 아파서 아이고 하고 일어서실 때도, 손목이 시큰하다고 아대를 찾으실 때도. 엄마가 그랬다면 '빨리 병원에를 가봐, 왜 그러고 있어'하고 바로 한마디 했을 것이다.


그런 것이다. 어머님은 엄마가 아니니까. 

어머님은 내 남편의 엄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님 딸이 아니라 며느리다. 

사실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인데 예전엔 이런 것들도 비교했었다. 

지금에 와서는 그때의 나도 어리게 생각된다.



"아빠 왔다~!!"

집 안의 여자 셋은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너무나 반갑다. 한 명은 아빠가 와서, 한 명은 아들이 와서, 한 명은 남편이 오면서 함께 따라올 나의 휴식, 그 '자유'가 반가워서.


그런데 너무나 기다렸던 나의 주말 나의 자유는 토요일 아침을 넷이 함께 마주하며 무너졌다.

싹싹싹...

이른 아침, 주방에서 쌀 씻는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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