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진짜 엘사 같아? 솔직히 말해봐!
미국에서 아이들의 디즈니 사랑은 실로 대단하다.
자본주의의 종주국답게 소비문화를 부추기는 무슨무슨 day가 그렇게 많은데 그런 특별한 날들에 보통 아이들이 코스튬을 자주 입는다. 유치원에서도 코스튬 입혀 보내세요. 공지가 뜬다.
보통 여자아이들은 디즈니 공주 코스튬을 많이 입는데 엘사가 압도적으로 많고, 안나, 미녀와 야수의 벨, 스노우 화이트, 머메이드 등등이 뒤를 잇는다. 그리고 하나같이 머리를 치렁치렁 길게 기르는데 그것도 디즈니 공주의 영향인 듯 보인다. 한국에서 단발 스타일이나 좀 더 다양한 헤어 스타일에 거부감이 없었던 우리 아이도 머리카락을 절대 자르지 않고 공주처럼 기르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에 와서 초반에 할로윈, 크리스마스, 밸런타인 등등 여러 행사 때 코스튬을 입고 신나게 동네를 활보하며 이런저런 크고 작은 동네 파티에 다녔다. 아이들에게는 정말 천국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 문화가 아니라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영어유치원에서 하루 반나절 행사, 아니 사진 한 컷 찍는 행사로 이게 무슨 날인지 모르고 아이들이 사진을 찍혔었던 행사를 몇 날, 며칠에 걸쳐 즐기는 게 이방인 입장에서도 즐거워 보였다. 아이의 적응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듯했고.
어느 날, 우리가 사는 곳에 Disney On Ice 공연이 열려 아이 반 친구네 가족과 함께 가게 되었다. 디즈니 아이스 스케이팅 공연인데 디즈니의 대표 캐릭터들이 나와 열연을 펼쳤다. 그중 피날레는 단연 Frozen.
커다란 아레나에 수 천명의 공주 코스튬을 입은 아이들이 모여 한 목소리로 Let it go를 열창하는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다. 말 그대로 조지아 수 천 엘사가 let it go로 대통합되는 광경이었다.
아이들은 공연 내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질 못했다. 흥에 겨워 춤을 추고 턴을 하고 목청껏 노래를 따라 불렀다. 공연은 생각보다 완성도가 높았고 어른이 봐도 감동적인 부분들이 있었다.
친구와 공연을 담뿍 즐기고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뒷좌석에서 왜인지 아이가 조용하다.
창 밖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이가 말한다.
"엄마, 근데 나, 엘사 같아?"
이 날을 위해 엘사 드레스와 구두를 야심 차게 준비했던 터다. 아이는 너무나 기뻐했고 기다리던 공연도 너무나 흡족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소리...? 엘사 같냐니..?
"너 오늘 엘사잖아~! 왜?"
"나는 얼굴이 아시안이잖아. 그래서 내가 엘사 옷을 입고 엘사처럼 머리를 해도 엘사 같이 안 보이는 것 같아."
그러고 보니 공연장에는 백인 여자아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 같다.
우리 동네도 인종 다양성이 좀 떨어지는 곳이라 아이 눈에 그런 것이 들어왔으리라.
미국에는 다양한 인종이 함께 모여 살지 않냐. 디즈니 공주들도 피부색이 다른 공주들이 있지 않냐. 그리고 그 다른 모든 것들이 각자 아름답고 특히 엄마의 눈에는 나의 엘사가 가장 아름다웠노라고. 엄마라면 해야 하는 말들을 최대한 진심을 담은 목소리로 열심히 해 주었다.
아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금세 다른 이야기를 종알종알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단기로 살러 온 것이지만 만약 이곳에 계속 살게 되었다면 겪게 되었을 큰 숙제를 잠깐 맛본 기분이었다.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의 생각보다 많은 것을 깊게 생각하고 고민한다.
그날, 나는 아이의 고민을 알아챌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또 아이가 말을 해주어서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