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은 미국 속의 한국 엄마
토요일은 아이 아트 스튜디오 수업이 있는 날이다.
한국에서도 미술학원에 보냈었는데 한 달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친한 친구와 같이 보냈는데도 미술이 지겹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지금 6개월째 재미있다고 잘 다니고 있다.
아이가 그때보다 한 살 더 먹은 것도 이유겠지만 수업의 내용도 꽤나 다르다.
한국 미술 학원에서는 주제에 따라 한 시간 동안 '그리는' 것 위주였다면, 미국에서는 먼저 Story time을 하고 그 책에 관련해 자유롭게 '만들거나, 그리거나, 뿌리거나, 쌓거나' 하는데, 딱히 정해진 루틴은 없다.
무엇보다 큰 특징은 아이 작품에 대해서 다소 오버스러울 정도로 큰 리액션을 해준다는 것인데 뭐랄까, 그리기도 전에 칭찬하는 느낌이다.
한국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선생님께서 아이의 달라진 '성취'를 설명해 주셨다. 처음에는 사람을 그릴 때 머리에서 몸이 바로 나오게 그렸다면 이제는 목을 그려 넣게 되었고, 손가락을 뭉터기로 그렸다면 이제는 하나하나 떨어뜨려서 그린다는 것 등.
솔직히 한국에서 미술학원에 다니는 아이의 친구들이 그렸다는 작품을 엄마들 카톡 프로필에서 보면 놀라워 입을 다물 수 없다. 같이 미술학원에 다녔던 친구가 그린 호랑이 그림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곧 살아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반면 우리 아이 그림은 내 눈에는 아주 러프하게 보인다.
그런데 아트 스튜디오 선생님도 유치원 선생님도, 그리고 오가다 만난 아이 반 친구 엄마 아빠들도 우리 아이가 미술에 재능이 있다고 한다. 유치원 상담에서도 선생님이 Art is her thing 이라고 하셨다. 그런 분위기에 힘입어 요즘 아이의 장래희망은 'Artist'가 되었다. 생각하면 나는 한숨과 웃음이 함께 나온다. 그저 지금을 충분히 즐기고 한국에 가서 아이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토요일 아트 수업은 50분 남짓인데 딱히 엄마들이 대기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
한국이었으면 코 앞에 카페들이 즐비했을 것인데, 여기선 보통 차 안이나 야외 벤치에서 기다린다.
내 소개로 다니게 된 아이 친구들이 여럿 되어서 엄마들이 함께 기다리며 친해지게 되었는데, 하루는 기다리는 동안 커피라도 한 잔 하기로 해서 미리 스타벅스에 들러 테이크아웃을 했다. 인종 구성이 다양하지 않은 이 동네에서는 드물게 아트 스튜디오에 다니는 아이들의 피부색, 국적은 다양한데 그래서 더 재미있다. 이 날은 유럽 엄마, 한국 엄마와 티타임을 하게 되었다.
아트 수업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아이 학교 이야기로 연결되며 나라마다 다른 교육 방식이나 분위까지 대화가 이어지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한국의 조기교육, 선행학습의 과열 양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유럽 엄마도 놀라는 눈치였는데 어떤 면에선 유럽과 한국의 교육열이 비슷한 부분도 있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모두 미국에서 아이가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뛰어놀며 크고 있는 것에 만족감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 와서 깨달은 것이 많다고, 아이는 아이답게 키우자며 훈훈하게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어느덧 수업이 끝날 시간이 되어 아이를 픽업해 돌아가려는데, 함께 이야기 나누었던 한국 엄마가 나를 불러 세워 묻는다.
"그런데, 한국에서 Bella가 다녔다는 영어유치원이 어디예요? 거기는 어떤가요?"
이 한국엄마는 5살, 1살 아이 둘을 데리고 단기연수로 미국에 왔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대답을 해주며 물었다.
"아이가 한국에 돌아가면 어차피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지 않나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 엄마가 대답한다.
"아니요. 우리 둘째 때문에요. 그렇지 않아도 애가 말이 느린 편이라 걱정이에요. 한국에 돌아가서 영어유치원을 보낼까 하고요."
순간 웃음이 터진다.
"1살이라고 하지 않았어요?ㅋㅋㅋㅋ"
그 엄마도 겸연쩍게 웃는다.
웃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기분이 이상하다.
다시 한번 생각하니 마냥 웃기지는 않는 거다.
나도 여기 눌러살게 아니고 돌아가야 하는 한국엄마인데...
선행을 그렇게 많이 하면 아이가 학교에서 재미가 없지 않냐는 한 엄마의 말에 어느 학원선생님이 그랬다고 한다.
"어머니, 잘하면 재미있어요. 잘 못하니까 재미없는 거예요."
선행이 미덕인 한국의 교육 환경에서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