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감기에 한 번 걸리면 일주일은 고생한다 생각하고 병원가고 약 먹이고 했었기 때문에 미국에 올 때 나름대로 준비를 단단히 했다.
워킹맘으로 주말 부부를 하면서 아이가 아프면 모든 루틴이 무너지는 경험을 종종 해봤기 때문에 감기 기운만 있다 싶어도 바로 병원을 찾았다. 아이가 조금씩 커가고 경험이 쌓이면서 '초장에 잡는다!'는 각오로 감기든, 기관지염이든, 폐렴이든 그렇게 대처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병원에 가기가 쉽지가 않다. 오기 전부터 익히 들어왔던 터라 상비약을 준비하면서 단순히 감기약 뿐만 아니라 예방과 관리를 병행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들도 몇 가지씩 챙겼다. 약을 두둑히 챙기니 뭔가 마음이 좀 놓이는 기분이었다. 미국에 와서 온갖 마트에 대규모로 입접해 있는 pharmacy들을 보고 이렇게까지 챙길 필요가 없었나 싶기도 했지만 만약 누가 물어보면 한 가지 씩은 챙겨오라고 말해주고 싶다. 도착 하기 전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고 그리고 초반에는 지역 물정에 어두워 헤맬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는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서 바로 필요했다...
원래 출발 전부터 감기를 살짝 앓았기 때문에 잔기침이 남아있었다. 엄마들이 상비약으로 많이들 구비하는 챔프 기침 감기 약을 기내에도 가지고 탔다. 장장 14시간 50분 장거리 비행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자다가 영상 보다가 놀다가 생각보다 너무 잘 버텨주었는데 2시간 가량 남기고 잠에서 깬 아이가 갑자기 발작성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기침을 하다가 급기야 토하기까지 했다. 기침의 양상이 감기라고 보기에는 너무 이상했다. 그때는 이 증상이 비염일 것이라고는 생각치도 못했었다.
매우 건조한 기내 공기, 먼지가 심한 담요 등... 아마 환경적인 요인이 촉발했을 것이라 짐작하지만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다. 기침 증상은 간헐적으로 지속되다가 괜찮아졌다가 또 심해졌다가를 반복했다.
도착해서 한 두달은 감기를 동반한 고만고만한 증상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감기가 나으면 다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한국에서 처방받아 온 세포심건조시럽 항생제를 일주일 먹이고 조금 호전되었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했다. 기침이 아주 심할때는 아이가 너무 괴로워했고 외출을 할 때는 시국이 시국인지라 너무 눈치가 보였다...ㅠ
이 시점부터 나는 점점 면허 없는 약사가 되기 시작했다.....
증상에 관해 구글링, 네이버 폭풍검색 후 알게된 사실은, 도은이는 '비염'이었다.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생각되었는데 기침이 지속되고콧물이 점점 많이 생겨 목뒤로 넘어가는 '후비루' 증상도 있었다. 증상이 심한 날은 눈이 충혈되고 가렵다고 괴로워했다.
집에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시작했다.
우선 실내 공기가 건조하지 않도록 가습기를 사용하고 자기 전에 최대한 코속이 건조하지 않도록 코에 뿌리는 일반의약품을 사용했다.
레몬청 담아서 레몬차 마시기, 보리차 끓여서 수시로 마시기, 그리고 한국에서 먹이던 배도라지와 비슷한 아이용 배도라지 주스도 주문했다. (아마존에는 없는 게 없더라)
미국에는 병원가기 쉽지 않은 대신 '약' 천국이라 봐도 무방하리만큼 약을 정말 많이 판다.
초반에 기침가래 약을 사러 근처에 publix, walmart, sam's club, target 등을 갔을 때 약 종류가 많아서 놀랐다. 조금씩 약들이 눈에 익기 시작하면 유명한 약들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나도 한 두가지 생약 성분으로 된 children's 기침감기약을 사기는 했는데 원인이 '비염'이었기 때문에 크게 효과는 없었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의 모든 신경은 그것에 집중된다. 아이의 상태가 호전되어야 비로소 내 일상도 돌아오는 것이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소리가 괜히 나온게 아니란 말이다.....
미국에는 알러지 약이 정말정말 많은데 비염에 사용하는 '나잘 스프레이'가 유명하다. 비염 증상이 심해질 때 아이 아빠가 walmart가 문을 여는 새벽 6시에 기다렸다가 바로 사왔더랬다...
나잘 스프레이는 유치원 등원 전에 코에 뿌리고 가거나, 증상이 있을 때 주로 사용했는데 스테로이드 성분이 포함되어 있기때문에 장기 사용은 의사의 상담이 필요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잘 스프레이 효과를 보려면 정말 매일매일 같은 시간에 꾸준히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도은이의 경우 사용 방법이 맞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즉각적인 효과는 없었고 아무래도 스테로이드제라서 꾸준히 사용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노력에도 증상이 심해져서 급기야 기침에 샛노란 가래가 섞여서 나오기 시작했는데, 감기 증상이 함께 왔을때 적기에 치료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고 이유가 어쨌건 속에 염증이 있다는 신호였다. (이제 약사가 아니라 의사 등극)
이 즈음 비강세척을 하기 시작했고 기침 가래 증상이 심할 때는 지르텍을 먹였다. 원래 알러지 증상에 클라리틴을 먹였는데 잘 듣지 않았다. 지르텍이 즉각적인 효과는 더 있는 것 같다. 두 가지 다 2~3세대 비염약으로 약한 편이라 졸음은 별로 오지 않는다. 1세대 약은 먹자마자 바로 뻗는다고 한다.
다행히 한국에서 받아온 약 중에 크래신 항생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약이 부비동염, 기관지염, 폐렴 등 증상에 잘 듣는 항생제여서 노란 가래 치료를 위해 일주일 꾸준히 먹여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항생제 + 지르텍 효과로 증상은 거의 호전되었고, 알러지 증상이 있을 때만 간혹 지르텍을 먹이고 있다. 얼마전 소아과 검진에서 내가 그간의 증상들과 상황들을 이야기 했는데 의사는 청진을 해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그렇게 하시면 된다"고 했다.......... 병원에 가기도 힘들지만 가더라도 감기나 비염은 이런 취급이라 여기 사람들은 병원에 잘 안가나보다.
아직도 완전히 괜찮아 진 건 아니지만 이정도만으로도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모르겠다.
내 새끼, 아프지마라.
너 아프면 아무 일도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