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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이스와 줄리 Nov 08. 2020

아빠의 출산휴가, 의미 있는 이유

50일이 되어가는 아이 인생의 5분의1을 함께 해보니

아빠로서 처음으로 출산휴가를 써봤다. 총 9일(주말+5일+주말)을 아내와 아이와 온전히 부대끼며 시간을 보냈다. 내일모레면 아이가 50일이 되니, 지금까지 아이 인생의 5분의1을 일하러 가지 않고 함께 한 셈이다.


아이 인생에 있어서는 엄청난 시간이지만, 부부 입장에선 짧디 짧은 9일이다. 내일이면 아내에게 '독박육아'라는 숙제를 안기고 회사로 향해야 한다. 마음이 무겁지만, 한편으로는 일을 더 열심히 하겠다는 환기 효과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고작 9일이었지만 육아, 정말 행복했지만 쉽지 않았다. 어떤 분은 '아름다운 지옥'이라고 말해줬는데, 이 표현에 공감한다.


아이의 상황을 조금 소개하면서 얻었던 깨달음을 나누고 싶다. 사실 50일이 되어가는 우리 아들(막상 이렇게 쓰니 되게 생소하다)을 우리는 순한 편에 속한다고 보고 있다. 우선 오후 9시~오전 7시 사이라고 할 수 있는 밤잠 타임에 수유를 2번 정도로 해낸다. 즉, 밥 먹는 텀이 3~4시간 정도다. 이 말을 하는 즉시 육아를 경험한 분들은 "효자"라고 평가한다. 물론 나는 이 말을 출산휴가 전만 해도 공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24시간 붙어 있어보니 그 사이클이 내 생활과 직결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는 아이는 천사라는 말도 이제 확실히 이해한다

신생아 수준의 어린 아기는 밤낮 구분 없이 적당한 텀을 두고 밥을 먹는다. 그 텀은 아이마다 다르다. 2시간인 아기도 있다고 하고, 4시간을 넘게 밥 시간을 기다려주는 아기도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상황을 토대로 볼 때, 우리 아기는 그 중에서 후자에 가깝다.


젖병 수유에 참여하기 전에는 2시간이면, 아이가 어른처럼 10분 정도 젖병을 신나게 빨고, 트림을 하게 하는 소화 과정을 10분 정도 해서 자면 할 만한 것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이 생각은 정말 못된 생각이었다. 실제로 아이는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분명 예상한 수유 텀이 아닌데 어디서 배워왔는지 모르는 발길질을 허공에 하면서 젖병을 찾다가, 물리면 걸신 들린 사람처럼 젖병을 미친듯이 빨다가, 또 갑자기 온몸을 비틀며 젖병을 뱉어낸다. 이 과정을 마구 반복하다보면 10분은커녕 20분, 30분, 40분..까지 시간이 속절없이 흐른다. 트림 역시 조금 상황은 다르지만, 경과하는 시간은 비슷하다.


그러니 2시간 텀이라고 하면, 아이를 겨우 재우고 돌아서면 다시 밥을 먹여야 한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 1시간이라도 여유시간을 주는 3~4시간 아기는 효자라는 말이 나올수밖에.


이렇게 설명하다보면 말이 길어지는 상황이 한 둘이 아니다. 아바아(아기 by 아기) 마다 상황이 다르기에 또 너무 많은 걸 듣다보면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9일 본격 육아에 참여한 하나의 일례로 놔두고- 출산휴가 기간 얻은 작은 깨달음들을 정리하고 싶다. 내일 출근을 앞둔 만큼 시간이 많지 않기에, 생각나는대로 쓰고 있다.


1. 혼자 아이를 보는 상황은 외롭다

나는 동이 트는 시점의 새벽 수유를 혼자서 맡았었다. 혼자 수유를 하는 건 좀 떨리는 일이었다. 낮에 수유를 할 때는 내가 주더라도 아내가 옆에서 같이 러닝메이트처럼 붙어 있는데, 새벽 수유는 오롯이 내가 혼자 이 아이를 감당한다. 내가 계획한대로 아이가 움직여주면 정말 럭키한 날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자지러지게 울거나, 젖병을 예상한대로 물지 않거나, 잠에 빨리 들어주지 않으면 상당히 괴롭다.


잠깐 다른 이야기로 새어보자면, 정말 하루가 다르게 무거워지는 아기가 내 몸을 발로 차면서 울던 때 이전에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흘린 문장인 "가끔은 아이를 집어던지고 싶어요"라는 말을 이해했다. 감히 절대로 그럴 생각은 없지만, 그런 표현을 하는 분들의 절박함이 아주 조금, 이해된 것 같았다.


언젠가는 아이가 예상한대로 분유를 잘 먹어준 날이었다. 그런데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단어로 표현해보자니, 이건 '외로움'이었다. 아이는 하염없이 내 얼굴 아니면 하늘을 보며 밥을 먹고 있는데, 그 짧은 순간에 세상과 단절된 채 아기 얼굴만 지켜봐야 하는 내게서 외로움이 느껴졌다. 아이가 너무 귀엽고 귀여워서 더 표현할 방법이 없지만, 그럼에도 외로움은 별개였다. 다시 한 번 아이를 도맡아 키우는 분들의 외롭다는 표현이 깊게 와닿는 순간이었다.


2. 일을 계획하듯, 아이를 본다. 실마리가 조금 보인다.

우리 부부는 일을 계획하듯, 또 일을 실행하듯 아이를 보고 있다. 보통 나는 업무를 할 때 그날의 to-do 리스트를 간단히 써놓고 지워가며 일하는데, 그런 방식으로 아이와 해야할 것들을 생각하면 예상보다 할 일이 명쾌해질 때가 있다. 정말 단순하게는 매일 아침에는 기저귀갈이대의 기저귀를 채워놓고, 젖병 열탕 소독을 하는 것, 이틀에 한 번은 기저귀 쓰레기통을 비우는 것 이런 것들을 to-do 리스트 지우듯 하면 의외의 성취감까지 느껴진다.


3. 온전히 '아기'인 아이와 마주할 수 있는 출산휴가는 꼭 필요하다.

아내와 합의 하에 출산휴가를 사용하는 시기를 치밀하게 계산했었다. 그래도 그나마 출산과 육아에 대한 복지가 개선되고 있어서,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을 거친 뒤 집에 와서 산후도우미를 2주 정도 지자체에서 일정금액을 지원받아 모실 수 있다. 그리고 장모님이 또 일주일 오신 뒤에, 그 다음 내 차례가 돌아왔다.


탁월한 타이밍이었다. 아내도 아이도 집에 조금 적응해가는 상황이었다. 50일을 앞두고도 역시 아이는 아무것도 못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게 보였다. 특히 낮 시간의 아이를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최고의 경험이었다. 퇴근 후 급하게 저녁을 먹고, 급하게 씻긴 뒤 얼른 재우기 바쁜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아이와 온전히 마주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많다. 어느 날 새벽 노래부르는 줄만 알았던 옹알이를 들은 것, 낮에 옆에 누워 같이 낮잠을 자면서 혼자서 기지개를 무한정 켜는 모습을 보는 것, 열심히 안아주고 또 토닥이다보니 이 아이가 내 옷자락을 꼭 쥐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 특히 팔다리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던 애가 어느순간 나에게 매달려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옷자락을 꼭 쥔 모습을 봤을 때는, 뭐랄까 마음이 찡했다. 더 나아가 생각하면 나도 이 아이의 주양육자로 성장하고 있구나-라는 기분까지 느꼈다(이런 생각에 공감해준 아내에게도 감사하다)

나를 놓지마세요-라고 절실히 외치는 모습. 놓지 않겠다고 연신 약속하게 된다.

그저 바쁘게 흘러갔다면 놓쳤을 순간이었다. 평생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누릴 수 있다면, 온전히 육아에 올인하는 출산휴가는 꼭 필요하다. 더 설명하고 싶은 이야기는 속에서 터져나오는데, 표현이 되지 않을 정도다.


지금 아이를 바라보면서는 이런 생각이 든다. 커가는 것이 기쁘면서도, 너무 아쉽고, 매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물론 힘들어서 외면하는 순간도 생긴다ㅎㅎ). 그저 감사하고,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도 느낀다. 그리고 기도한다. 무럭무럭 건강히 자라 더 친하게 함께 하고, 더 멋진 사람이 되기를.


더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내일을 기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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