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된 무력감과 떼쓰기

성장 환경과 계층의 차이일까

by 김정균 미국변호사

일반화는 경계해야겠지만,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 경험적으로 느낀 점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필자는 형사 사건을 주로 담당하지만, 아주 가끔 일반 민사 사건을 다루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미국의 다양한 계층을 두루두루 대리하게 된다.


일단 형사 사건의 의뢰인들은 압도적으로 소수계 빈민 계층이다. 특히 국선 사건인 경우에는 흑인 남성의 비율이 거의 대부분이다. 지금은 괜찮지만, 나도 처음에는 타인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어려움 가지고 있었다. 아마 미국에 사는 한국인 혹은 백인들이라도 학업이나 혹은 업무상 타인종을 지속적으로 만나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자신들이 자주 접하는 인종 외의 사람들을 만나면 막연한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낯선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기 때문이다.


잠깐 여기에서 경계할 것이 있다. 바로 "형사 사건에 휘말리는 사람들 중에 흑인이 많다"는 사실일 수도 있어도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즉, "흑인이면 잠재적인 범죄자다"는 명백한 거짓이다. 왜냐면 실제 인구 중에서 범죄자 비율은 1%~2%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길거리나 업무상에서 흑인을 만난다면 십중팔구(거의 98% 이상) 선량한 시민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나처럼 직업적으로 형사 의뢰인을 만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인종을 떠나서 소외·빈민 계층을 자주 대리하다 보면 느낄 수 있는 점이 있다. 바로 "학습된 무력감"이다. 조금 더 자세히 풀어쓰자면, 본인이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사건의 결과는 바뀌지 않기 때문에 되는대로 그냥 흘러간다는 식의 태도이다. 어떻게 보면 참 슬픈 일인데, 그 사람이 자라오면서 경험한 내용을 바탁으로 학습된 무력감일 가능성이 크다. 이 사람들은 정말 순응적이고 고분고분한 사람들이라서, 가끔은 안타까움이 느껴질 정도이다. 변호사로서는 대리하기가 쉬우면서도 어려운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도 나는 하나의 Authority Figure 즉 권위를 가진 자로 보여서 그런지, 내가 조언하거나 당부하는 말들을 참 잘 지키는 편이지만, 한편으로는 시스템 상에서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가슴이 아픈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 역시 인종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부유하고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온 특권층이 있다. 이 사람들 중에서는 합리적인 사람들이 대다수지만, 종종 "떼쓰기"가 일상인 사람들도 가끔 보인다. 일단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무조건 얻어 내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만약 일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말 그대로 떼쓰는 아이처럼 군다.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행동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어 왔고, 성인이 되어서도 그러면 된다는 것을 체득한 것 같다. 사실 일상생활에도 떼쓰기는 어느 정도 먹힌다. 진상 손님이 계속 진상 짓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먹히기 때문이다. 업주가 진상 손님의 떼쓰기를 들어주는 이유는 진상 손님이 옳아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그 상황을 빨리 해결하고 피하기 위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정에서는 떼쓰기가 통할 리가 없다. (안 돼, 안 바꿔 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그러다 보면 변호사한테 떼쓰기를 시전 하게 되는데, 참으로 난감한 경우가 많다. 사실 단호하게 대응하는 게 맞긴 하는데, 수임료 받은 변호사의 입장이라 이를 들어줄 수도 없고, 안 들어줄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가끔 적당히 타협(?)을 해서 의뢰인의 요구와 실제 법률상의 근거를 잘 버무린 중간점을 찾아서, 판사에게 요청을 할 때가 있는데 대개는 이를 꿰뚫어 본 판사님이 왜 이런 요청을 했냐고 변호사를 혼낼 때가 있다. 그러면 의뢰인도 간접적으로 혼나는 효과가 있어서, 가끔은 떼쓰기를 멈추는 경우도 있다. (역시 떼쓰기에는 혼나는 게 약?)


나는 로스쿨에 처음 들어갔을 때 법이라는 것이 마치 수학 공식처럼 사회를 움직이는 무슨 비밀의 코드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무를 하다 보니 그런 비밀의 코드를 파헤치는 탐정(?)의 역할보다는 의뢰인의 학습된 무력감을 보며 가슴 아파하는 상담사 혹은 사회운동가의 역할과, 의뢰인의 떼쓰기를 들어주다가 가끔은 나도 어느새 법정에서 (조금은 정제된 언어와 태도로 엄숙하게) 떼쓰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 것을 보면 결국은 변호사 업무의 상당 부분은 사람을 이해하고 대하는 일이 핵심인 것 같다.



keyword
이전 03화미국의 개업 변호사 3년 차: 느낀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