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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군무와 변호사의 직업병

by 김정균 미국변호사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은 글쓰기를 많이 강조하였는데,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은 물론, 아침마다 등교하면 글짓기 주제가 칠판에 써 있었는데, 당일 제출해야 하는 분량이 무려 A4용지 앞 뒤로 한 장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인 우리에게는 이게 엄청난 고역이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께서도 반 전체가 쓴 일기를 매일 모두 꼼꼼이 읽고, 답글이나 피드백을 주시는데 거의 하교할 때쯤이 되어서야 일기장을 돌려 받곤 했었다.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는가. 초기에는 텅빈 A4 용지를 노려보며 무엇을 써서 채워야 하나 고뇌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는데,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고민의 시간도 줄어들고 글쓰기도 익숙해졌다. 이렇게 쓴 글들은 투명한 포켓 파일폴더에 갈무리 하도록 하셨는데, 이게 신의 한수인게 아직까지 나는 이 폴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고, 나는 글쓰는 일로 먹고 사는 변호사가 되었다. 특히 요즘 같이 코로나 때문에 법원이 닫는 바람에 일감도 줄어서 더더욱 글쓰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 같다. 얼마 전에 법률 신문에 기고할 내용을 쓰느라 약 4천자 가량의 글을 작성하면서 문득 느낀 점은 "자유로운 글쓰기를 해본지 오래 됐다"는 것이다.


춤으로 비유하자면 자유로운 글쓰기는 들려오는 음악에 몸을 싣고 몸 가는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박자가 틀려도 상관 없고, 스텝이 꼬이거나 팔다리가 아무렇게나 널부러져도 괜찮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은 소위 "칼군무"이다. 박자가 정확하게 딱딱 맞아 떨어져야 하는 것은 물론, 팔 다리의 각도도 정확하고 힘이 있어야 한다.


내가 법률가로서 쓰는 글들은 춤으로 보면 "칼군무"에 가깝다. 정보를 전달하든 설득하는 글쓰기든 명확한 주제가 있고, 논리적 흐름이 명확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정확해야 한다. 독자의 가독성을 고려해서 문장의 길이와 문단의 구성도 고민해야 한다. 일단 초안을 작성한 뒤에는 여러 번, 심지어는 수십 번 글을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어서 어색한 문장이나 부적절한 호응관계 등을 찾아내어 고치는 퇴고 단계를 거친다. 그러다보면 글을 매우 정돈되고 깔끔한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


반면 자유로운 글쓰기는 말 그대로 손 가는대로, 생각 나는대로 쓰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자판을 두들기는 것보다는 하얀 백지에 잉크 철철 흐르는 부드러운 만년필로 쓰는 것이 제격이다. 예전엔 항상 곁에 만년필이 있어서 무언가 항상 끄적이곤 했는데,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을 쓰다보니 이젠 만년필을 쓸 일도 없어졌다. (최근 오랜만에 법원에 서면 제출할 일이 있었는데, 서명하려고 만년필을 한창 찾았다는...) 어쨌든 자유로운 글쓰기는 문법이나 논리적 흐름, 딱히 주제 의식이 없이 그냥 당시의 생각과 느낌을 적는, 춤으로 치면 말 그대로 "막춤"이다.


평소 무대 위에서 칼군무를 추는 아이돌이 집에 오면 아무 음악이나 틀어놓고 "막춤"을 추려나? 아마 추더라도 무의식 중에 배웠던 안무의 일부가 스며 나오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막춤이라고 해도, 아이돌이 추는 막춤과 내가 추는 막춤은 클라스가 다를 것 같다.


사실 나도 이 글을 오랜만에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고 싶은 생각에 시작 했는데, 어느 새 단어를 몇 번 지웠다 쓰고, 문장을 고치고, 문단을 다시 나누는 등 "칼군무"를 하려고 있다. 이것이 직업병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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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도 집에 가면 "막춤"을 추려나?

(사진 출처: idol-story.com,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101229_sbs%EA%B0%80%EC%9A%94%EB%8C%80%EC%A0%84-%EC%98%A4%EB%A0%8C%EC%A7%80%EC%B9%B4%EB%9D%BC%EB%A9%9C_(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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