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균 미국변호사 Jan 13. 2021

미국 법 실무: Motion Practice

판사를 움직이는 방법

형사든 민사든 미국에서 소송을 하게 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motion practice이다. 이 motion practice를 한글로 해석하자면, motion을 다루는 실무라고 할 수 있는데 정확히 motion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motion은 판사에게 무언가를 공식으로 요청하는 매개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서면으로 제출되지만, 종종 구두로 요청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motion의 종류는 판사의 권한만큼이나 다양하고 기발하게 사용될 수 있다. 보통 motion의 경우에는 뒤에 to + 동사 (문법 용어로는 일명 "to 부정사") 혹은 motion for 명사의 형태를 띠는데, 예를 들면 피고가 원고의 소 제기를 각하시키고 싶을 경우 Motion to Dismiss Complaint, 혹은 피고인이 검사의 공소장을 기각시키고 싶은 경우 Motion to Dismiss Indictment를 법원에 제출하게 된다. 그런데 왜 하필 많은 단어 중에 "mo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할까? 정확한 어원은 모르겠지만, motion이라는 것은 판사를 "움직여서 무언가를 이룬다"라는 뜻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왜냐면 서면이 아닌 구두로 무언가를 요청할 때, "I move the court to do XX"라고 하는 것을 보면, 영미법계 법정에서 판사는 일단 가만히 있는 방관자의 역할인데, 변호인이 굳이 판사를 "움직여서" 무언가를 하도록 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로스쿨에서 민사소송법 수업을 들을 때만 해도, motion의 종류는 소송법 규칙에 언급되는 내용으로만 한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막상 실무를 해보니까 그 종류가 무한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민사소송법 규칙에 나오는 우리가 흔히 아는 motion은 Motion to Dismiss, Motion for Sanction, Motion to Compel, Motion for Summary Judgment, Motion for Judgment Notwithstanding the Verdict (JNOV) 등등인데, 실제로 실무에서는 이보다 훨씬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필자는 형사 사건을 자주 담당하면서, 그나마 민사 사건보다는 motion practice를 할 일이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평소에 적지 않은 motion을 작성하고 제출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흔하고 일반적인 motion은 Motion for Continuance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continue라는 단어는 무엇을 "계속하다"라는 의미로 알고 있어서 continuance라고 하면 무언가 계속 이어서 하게 해 달라는 뜻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결국은 법원 (특히 재판) 기일을 다른 날짜로 연기해달라는 요청이 Motion for Continuance이다. 이와 반대로 이미 예정된 재판 기일을 앞으로 당길 수도 있는데, 이 때는 Motion to Advance Trial이 된다.


형사 변호인으로 자주 사용하는 motion 중에 하나는 Motion to Recall Bench Warrant도 있다. 쉽게 말하면, 피고인이 법원 불출석을 해서 판사가 체포 영장을 발부했을 때 법원에 출석하지 못할 정당한 사유가 있었던 경우, 해당 체포 영장을 거둬들이기(recall) 위한 목적의 motion이다. 혹은 반대로 피고인이 원하는 시간에 법원에 출석해서 체포 영장에 응하고 싶은 경우 Motion to Serve Bench Warrant을 제출하여 피고인과 함께 법원에 출석하여 법원 내 자진 구속(?)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위와 같이 피고인 불출석의 위험을 미리 방지하고자, 아예 판사로부터 피고인의 출석을 면제받도록 요청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Motion to Waive Defendant's Appearance를 제출하면 된다. 중범죄가 아닌 경범죄의 경우에는 사건이 단순히 벌금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미리 판사의 사전 허가(waiver)를 받으면 굳이 의뢰인이 출석하지 않고 변호인 단독 출석으로만 유죄 인정으로 사건을 종결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여행 금지 명령으로 법원에 출석하지 못한 의뢰인을 대신하여 해당 motion을 사전에 제출하여, 재판 당일날 유죄 협상으로 사건을 종결한 적도 있었다.


한편, 무언가를 요청하기 전에 판사에게 사전 허락 요청을 하는 경우도 있다. 쉽게 말하면, "제가 이러이러한 요청을 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요청을 하기 위한 허락을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공손하게 묻는 것이다. 보통 어떤 요청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거나, 혹은 요청 자체를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경우에 이러한 사전 요청을 한다. 이때의 사전 허락을 영어로 "leave"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leave는 동사로 "떠나다"의 뜻이지만, 명사로 쓰이면 "허락/허가"의 의미가 된다. 그렇게 때문에, 이러한 motion은 Motion for Leave to (do something)의 형태를 띤다. 예를 들면, Motion for Leave to Amend Second Complaint (소장 수정 요청 기한이나 횟수를 초과한 경우) 혹은 Motion for Leave to File Supplemental Memorandum (이미 기 제출한 서면에 대한 보충 서면을 제출하고 싶은 경우) 등이다.


이렇듯 법으로 금지되지 않으면서 판사의 권한을 벗어나지 않은 모든 요청을 motion으로 할 수 있다. 다만 모든 motion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1) motion을 요청하는 당사자와 이해 관계자가 존재함. (예를 들어, 형사 사건의 경우 99%는 피고인 vs. 검사)

2) 해당 요청 사항이 판사의 권한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법적 근거. (성문법 혹은 판례법)

3) 해당 법적 근거의 구성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사실 관계의 제시. (증언 혹은 진술서 등) 

4) motion의 요청 사항이 받아들여질 경우, 판사가 서명만 하면 되는 명령서 초안. (Proposed Order) 


다시 말하면, 이 테두리 안에서라면 판사에게 그 어떤 신박한(!) 요청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결국 변호인의 경험과 창의성에 따라 의뢰인에게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전 06화 변호사의 업무와 불확실성에 대한 관용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