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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Sep 28. 2021

오징어 게임: 번호 노출 피해자의 미국 법적 구제방안

만약 한국 피해자가 미국에서 소송을 진행한다면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을까

미국 드라마 및 영화 스트리밍 업체인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인기가 세계를 들썩이는 가운데, 극 중 명함 뒷면에 등장하는 전화번호가 실제 존재하는 번호임이 밝혀졌다. (관련 기사) 해당 번호의 소유주는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소상공인인데, 하루에도 수천수백 통의 전화가 와서 업무를 제대로 볼 수 없을 지경이라고 한다. 넷플릭스 측에서는 이에 대해 고작 100만 원이라는 보상금을 제시했다는데, 과연 미국 법상 구제 방법은 없는지 한 번 고민해 보았다.


적용 가능한 법 개념

우선,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소송의 근거는 미국 판례법상 불법행위법(torts)에 속하는 사적 방해(private nuisance)와 사생활 침해(invasion of privacy)가 있다. 둘 다 비슷한 개념이지만, 사적 방해는 본인의 재산권이 타인으로부터 침해받은 경우, 사생활 침해는 말 그대로 개인에 대한 사생활의 자유가 침해되었을 경우 이를 구제받을 수 있는 개념이라는 차이가 있다.


이를 오징어 게임으로 인해 번호가 노출된 피해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개인의 휴대폰 번호는 하나의 사유 재산으로 볼 수 있는데 해당 드라마로 인해 본인의 번호가 한국 전역, 아니 세계 각 국에 노출되었고 이로 인해 수많은 전화에 시달려 정상 업무가 불가능해졌으며 휴대폰의 배터리가 급속도로 방전되는 등의 실질적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사적 방해가 성립될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제작 과정에서 한 번만 번호를 확인했으면 이런 피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넷플릭스 측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많지 않다.


사생활 침해의 경우, 정당한 타인의 휴대폰 번호를 회사의 이윤이라는 사적 이득을 위해 부당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사생활 침해의 한 종류인 사적 정보 무단 도용(appropriation of name or likeness)이라는 법적 주장이 가능하다. 물론 이 경우 전화번호가 이름 및 기타 사적 정보에 해당한다는 점에 대해서 판사나 배심원을 설득시켜야 하겠지만, 실질적으로는 (후술 하겠지만) 그전에 소송이 합의될 가능성이 크다.


소송과 합의 가능성

일단 넷플릭스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고, 미 전역에 구독자를 두고 있는 인터넷 기업이기 때문에 속인적 관할권(personal jurisdiction) 문제없이 어느 주, 어느 법원(즉 연방 법원이나 주 법원에 상관없이)에서나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 그 말인 즉, 원고(피해자)는 미국 전역에서 가장 소비자 친화적(혹은 반 기업적)이며 사적 방해나 사생활 침해 요건의 입증 기준이 낮은 지역의 법원을 고르는 이른바 포럼 쇼핑(forum shopping)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소송을 어디에서 시작할지 정했으면, 소장을 작성하면 된다. 소장에서는 앞서 설명한 법적 소송의 근거(cause of action)와 청구 금액이 포함되는데, 미국 민사소송에서는 소송 금액에 상관없이 소송 인지대와 송달료가 동일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보상액을 크게 불러서 판을 키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에서처럼 시시하게 백만 원 단위가 아니라, 미국에서는 밀리언(한화로 약 11억 원) 단위로 소송을 진행할 수도 있다. 이렇게 청구 금액을 크게 부르는 이유는 피고가 해당 소송을 가볍게 생각하지 못하도록 (왜냐면 무시할 경우 결석 재판으로 청구 금액이 일방적으로 선고될 가능성이 존재하기에)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목적과 합의 협상을 시작할 경우, 청구 금액이 일종의 심리적 시작점(anchor)으로 간주되어 원고가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미국 소송의 위협이 존재하는 경우, 넷플릭스는 가급적인 사건이 커지기 전에 합의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 왜냐면, 소송과 동시에 원고는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하여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injunction)을 할 수 있는데, 현재 오징어 게임의 인기로 봤을 때 판사가 혹시라도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게 되면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큰 타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사안은 애초에 넷플릭스와 제작 업체의 명백한 과실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이 사건이 대중에 널리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넷플릭스의 주가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업들은 이러한 소송의 위협에 매우 민감하고 신속하게 반응하는 편이고, 특히 실질적 위협이 있으면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한국 넷플릭스가 제시한 100만 원은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이라면 담당자의 심각한 착오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100만 원, 혹은 미국에서의 약 1천 불의 가치는 위와 같은 소송이 벌어질 경우 넷플릭스 같은 대기업이 고용하는 로펌 변호사의 1시간 변호사 비용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은 그만큼 변호사 비용이 비싸고 소송에 돌입하면 그 돈은 천문학적으로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소송의 결과가 확실하지 않으면 차라리 변호사 비용을 낼 바에 그 돈을 합의금으로 줘버리고 소송을 일찍 끝낸다는 사고방식이 오히려 합리적인 경우가 많다. 특히 이번 번호 유출 사건처럼 회사 측의 과실과 피해자의 피해 사실이 비교적 명백한 경우, 소송 끝에 회사 측이 법적으로는 승소하더라도 거기에 투입되는 변호사 비용과 소송 과정에서 비판적 미디어 노출로 인해 생기는 주가 하락을 고려하면,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게 된다.


더불어, 해당 번호 유출로 인해 피해 본 당사자와 유사 번호를 가져서 피해 본 사람들, 더불어 계좌 번호 유출로 인해 피해본 사람들끼리 소규모로 나마 집단 소송(class action) 시작할 수 있다면 판은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넷플릭스의 입장에서는 조속히 피해자들의 진지한 피해 보상 논의를 시작하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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