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홀인원, 영어로 Hole in one. 말 그대로 골프에서 공을 한 번 쳐서 홀컵에 넣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 아이언으로 티샷을 하는 파 3홀에서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아마추어 골퍼들 사이에서는 평생 홀인원 한 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고, 프로들 사이에서도 자주 보기는 쉽지 않은 진귀한 광경이다. 어디선가 홀인원 확률이 아마추어의 경우 약 0.008% (1/12000)이고, 프로들도 0.03% (1/3000)라고 한다. 그만큼 아마추어 골퍼들에겐 홀인원이 평생의 꿈인데, 한편 홀인원을 하면 기념을 위해 들어가는 비용(?) 만만치 않아서 "홀인원 보험"이라는 것도 있다고 한다.
홀인원 관련해서 재밌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곳도 있다. 미국의 프로골프 대회 중에 하나인 PGA 그린브라이어 클래식에서는 마지막 18번째 홀(파3)에서 선수들이 홀인원을 할 때마다 관중석이 있는 모든 관중들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그 돈을 나눠주는 사람은 바로 골프장 소유주인 짐 저스티스. 참고로 이 그린브라이어 골프장이 웨스트 버지니아에 있는데, 짐 저스티스는 바로 웨스트 버지니아의 현 주지사이다.
그 금액은 첫 홀인원의 경우 100불, 두 번째 홀인원은 500불, 세 번째는 1000불씩, 현장(정확히는 그랜드스탠드)에 있는 모든 관객들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것인데, 그만큼 관객들에게는 재미와 동시에 '혹시나'하는 기대를 갖고 그린브라이어 대회를 구경 오도록 하는 홍보효과도 톡톡히 하고 있다.
물론 골프장 입장에서도 정말 말도 안 되는 확률로 홀인원이 연속으로 터지고, 마침 수백 명의 관객들이 이를 목격하여 엄청난 지출을 해야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역시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홀인원 보험을 들어 놓았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015년 그린브라이어 클래식 대회에서 두 명의 선수가 홀인원을 한 것이다.
(아래는 그 동영상, 초반부에 흰 모자를 쓰고 관객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짐 저스티스를 볼 수 있다. 게다가 후반부에는 3번째 홀인원이 거의 나올 뻔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Dgdj-piGVY
물론 PGA급 프로골프 대회를 주최하는 단체답게 이 정도 위험부담은 미리 보험으로 안전보장을 해놨다. 즉, 미리 보험사를 통해서 첫 홀인원이 나오면 15만 불, 두 번째 홀인원은 75만 불, 세 번째는 1백4십만 불의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도록 보험을 가입한 것이다. (결국 회마다 약 1400/1500명의 관객에 줄 현금까지 커버하는 보험)
여기에서 이야기가 끝난다면, 위에서 나온 것처럼 홀인원이 두 번 나왔어도, 관객들은 돈 받아서 좋고, 골프장은 홍보돼서 좋고 (어차피 현금은 보험사에서 나오니), 선수들은 홀인원 해서 좋고, 방송국은 뉴스거리 나와서 좋은 등 (보험사 빼고) 모두가 행복한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험사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바로 보험 약관에 "18번 홀의 길이가 170야드 이하일 경우 이 보험 약관은 적용되지 않음"이라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2015년 위에서 두 번이나 홀인원이 나왔던 그린브라이어 클래식 대회 18홀의 길이는 과연 얼마였을까? 바로 137야드였다... orz.
위 동영상에도 나왔지만, 홀인원 두 번으로 인해 골프장 측이 관객들에게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약 20만 불(한화 약 2억 2천만 원 상당)인데, 이는 처음 189명의 관객에게 100불씩(189 x $100=$18,900), 두 번째는 347명의 관객에게 500불씩(347 x $500=$173,500)을 준 금액이다. 졸지에 2억이 넘는 현금을 지출하게 된 골프장 측은 해당 보험을 중개해준 보험 대리인인 Bankers Insurance와 실제로 보험을 제공한 All Risks를 상대로 문제가 된 보험 약관을 계약 체결 당시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약 5년 동안 연방 지방 법원에서의 1심, 연방 항소 법원에서의 2심을 거쳤지만 결국은 항소 법원에서 골프장 측의 패소로 사건은 사실상 종결됐다. (이론상 연방대법원에 상고를 할 수 있지만 사실상 불가능) 여러 가지 주장이 오고 갔지만, 결국 법원은 "골프장 측 직원이 계약서에 서명할 당시에 '18번 홀의 길이가 170야드 이하이면 해당 보험 약관이 적용되지 않음'이란 조항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었음"이라는 논지를 바탕으로 보험사 측 손을 들어줬다.
내 예상으로는 5년 동안 소송 공방을 하면서 든 변호사 비용이 실제 보험 청구비보다 훨씬 많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골프장 측 입장으로는 계약서 하나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서명하는 바람에 2억 넘게 상품비로 쓰고, 그 보다 훨씬 많은 돈을 소송에 쏟아부었으니 참으로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았을까?
교훈: 계약서 서명을 하기 전에 내용을 제대로 읽자 (물론 변호사인 나도 실제로 실천하기가 쉽지는 않음)
참고: 연방 항소법원의 판결문 링크 (영어 되시는 분은 읽어보면 재밌을 듯)
https://casetext.com/case/old-white-charities-inc-v-bankers-ins-llc-1
글: 김정균 변호사(미국 VA/DC/NY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