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에서 만난 시민문화회관 1987

일에 대한 생각

by 강병호

군산에서 키다리 아가씨가 소개해준 ‘살고 싶은,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30대 신혼부부를 만났다. 온종일 함께해 주셨다. 군산역까지 마중 나와 밥을 사주셨고, 동네 시장을 걸었고, 건축가 김중업의 마지막 작품인 군산시민문화회관(1987)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이 회관 구석구석엔 시간이 멈춘 흔적들이 종종 보였는데 - 특히 벽에 붙은 표지판 글꼴들은 90년대에서 멈춰있었다. 공연장 무대 위의 ‘수은 조명’은 무료하게 낮잠 자다 일어나 심드렁하게 우리를 맞이했다. 전시실에 걸린 달력을 보니 2013년 달력이었다. 문을 닫은 시점이라고 한다. 모든 게 멈춰있는 이 ‘잠든 거인’ 같은 군산시민문화회관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자리가 매진되어 경유해 겨우 집으로 되돌아가는 무궁화 열차 안에서 - 군산시민문화회관이 지어진 1987년에 태어난 나는 35년간 어떤 이야기를 갖게 되었는지 되돌아봤다. 입사하고 싶던 서체 회사 윤디자인연구소에 채용 합격 문자를 받고 집에 내려가며 울던 때가 생각났다. (아. 그때도 창원에 내려가던 기차가 무궁화 열차였다)


손글씨 - 필체가 좋다며 칭찬받던 초등학교 6학년 시절로도 되돌아가 보았고, 경남대학교 앞 표지판에 쓰인 서체가 서울 서체라서 창원만의 서체 만들겠다던 대학생 시절로도 돌아가 봤다.


군산시민회관이 2013-2020까지 문이 닫혀 곰팡이가 생기고 먼지가 쌓였듯 2013-2020까지 고향집 떠나 지내서 고향이 낯설어져 있음도 되돌아봤다. 오늘은 주말에 고향 가려다 일이 생겨 고민하니 “가족은 언제든 만날 수 있으니 일거리가 있을 때 일을 하렴.” 하시는 부모님 말씀이 있었다. 아들이 그립지만 괜찮다 하시는 고향집처럼. 군산시민회관은 내게 ‘여긴 언제든 올 수 있으니 일거리가 있을 때 일을 하라’며 등 떠미는 고향 집 같다.


다음 군산시민문화회관에 갈 땐 무엇을 하려고 말고, 그 35년 세월에 켜켜이 쌓인 회관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줘야겠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줄 때 쉼 없이 떠드는 나의 35살처럼 분명 35살의 군산시민회관도 할 말이 어마 무시하게 많을 것이기 때문에.


#군산 #시민문화회관 2021년 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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