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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내 가슴에 1

별처럼 수많은 이야기들...

by 정썰 Jan 08. 2025

짧은 기간이었지만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긴 전속부관 시절. 운명의 갈림길에서 순간적으로 한쪽을 택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사단장님을 보면서 군생활에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아! 저 정도만 할 수 있다면 인생을 걸어볼 만하겠다. 멋진 군인이, 멋진 장교가, 멋진 장군이 될 수도 있겠다는 근거 없지만 강한 확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휴머니즘의 시작은 취임일부터 시작되었다. 승용차 승차 시 조수석에 전속부관 앉고 사단장님이 그 뒤에 앉으신다. 거기가 의전상 상석이다. 감히 사단장님의 시야를 가릴 수 없으니  머리 받침대(headrest)를 제거해 둔다. 명목은 그렇지만 앞에 사람이 앉으면 머리 때문에 안보이기는 매한가지니 부관이 편하게 머리 붙이는 꼴을 못 보거나 졸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짬이 좀 되는 운전병은 1호 관용차 조수석의 머리 받침대를 미리 떼 놓았다. 그리고 사단장님께 혼났다. 난 군단 예하 수많은 사여단에서 유일하게 목에 힘주지 않아도 되는 부관이었다.

목에 힘을 주지 않아도 되는 건 물론이고, 목에 힘을 줘서도 안 되는 부관이기도 했다. 휴일에도 사적으로 일을 보실 때는 직접 차를 몰고 다니셨다. 나와 운전병은 그럴 때마다 달콤하면서도 살짝 불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었는데 어느 휴일 사단장님 내외분께서 외출하셨을 때 낯선 민간 차량이 공관으로 들어왔다. 자신을 공관 건너편에 있는 가든(고깃집) 사장이라고 소개한 중년의 남성은 사단장님 부재를 알리자 금빛 보자기로 곱게 싼 보따리 하나를 내게 안겼다. 축구공 만한 크기였는데 인사가 늦었다며 사단장님께 드리는 작은 선물이니 전달해 달라 했다. 밤늦은 시간까지 술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식당이어서 시끄러울 수 있다며 이해해 달라는 요지의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단순 절달자인 난 고맙게 받아 조심스럽게 주방에 보관해 두었다가 두 분이 복귀하시자 전해드렸다. 화기애애할 줄 알았던 상황은 급변하여 공관 주방엔 극도의 긴장감이 조성되었다. 이게 뭔지 알고 받았냐고 엄하게 꾸짖으셨고, 옆에서 사모님께서 부관이 무슨 잘못을 했냐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려 주셨지만 처음 받은 꾸중에 정신이 혼미했다. 손도 대지 않으시고 펼쳐보라 하셨다. 억울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풀어낸 보자기 안에는 언뜻 봐도 고급스러운 양주 한 병과  2단 찬합에 질 좋은 고기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다시 정성스럽게 보자기를 싸서 운전병을 대동하고 부대 앞 도로 건너편 산으로 진입하는 쪽에 위치한 커다란 음식점으로 갔다. 관용차가 들어오니 낮에 본 사장이라던 분이 놀라서 뛰어나왔다.

“사단장님께서 마음만 감사하게 받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저녁에 음악소리가 들린 적도 없고, 커도 상관없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단장님께서는 문구 하나에도 신경을 써서 내게 직접 주지시키셨다. 자칫 사장님이 오해하거나 불쾌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정중하게 전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선의로 포장할 수 있는 뇌물을 물리치신 거에 더해 상대의 입장까지 배려하시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사장님께 전하고 돌아서는데 내 가슴이 다 웅장해졌다. 사장님은 내게 쉬는 날 한 번 놀러 와 달라고 부탁 아닌 부탁도 하셨는데 못 가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전임 사단장님께서 정기적으로 이런 선물을 받아오신 건 아닐지, 그것도 이쪽에서 먼저 푸시한 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그 사건 이후 난 전속부관으로서 취해야 할 기준을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었다. 그 기준은 합리적이고 상식적이고 격식 있었는데 세상, 아니 부대 내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었으니 수많은 에피소드는 이런 기준에 거스르는 너무나 두터운 관습과 요지부동의 관성이 부딪히면서 생겨난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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