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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갈림길

직업군인이 되고 싶은 거지?

by 정썰 Jan 01. 2025

녹색반지를 빼야 할 사건은 곧 일어났다. 


사단에서 전속부관 면접을 마치고 다시 강안경계부대로 돌아와서(당시 한강 경계부대 지원임무로 파견 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았다. 


사단 전속부관한테서 부대로 전화가 왔다. 내일 바로 공관으로 와서 인계인수를 시작하라는 명령?이었다. 

떨어질 줄 알았는데 신임 사단장님 전속부관에 선발된 것이다. 중대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래? 뭐 사단에서 들어오라면 들어가야지. 정도의 반응이었다. 소대원들과 함께 지낸 세월이 1년이 채 안된 시점이었고, 지원 파견 중이어서 후임 소대장도 없었지만 일은 이미 벌어져 있었다. 이임식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는데 소대원들에게 뭐라 설명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내무실에서 쉬고 있는 소대원들을 몰고 P.X.로 갔다.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라. 소대원들은 그게 나와의 마지막 만찬인지 몰랐지만 무슨 일 있냐고 연신 물었다. 아니, 그냥 쏘는 거야. 그동안 많이 못 사줬잖아. 천진난만한 소대원들은 처음에는 주저하는 듯하더니 이내 맘껏 P.X. 를 털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 난 강안부대 위병소를 야반도주하듯 빠져나와 사단장 공관으로 갔다. 짧은 소대장 생활을 그렇게 끝낸 건 지금 생각해 보니 내 군생활의 마지막까지 일종의 패턴이 된 듯하다. 전속부관 부임 후 얼마 지나서 부속실(사무실)로 작은 소포 하나가 도착했다. P.X. 에서 파는, 기상나팔 소리가 나는 알람시계였다. 짧은 편지와 함께. 소대원들은 매너 없는 소대장을 그렇게 이해해 주고 무운을 빌어주었다. 


육사 출신 사단장님은 작고 날렵한 체구에 알이 굵은 안경 너머 눈빛이 매서운 분이셨다. '정중위 반가워. 잘 부탁해' 먼저 악수를 청하셨는데 목소리는 명료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소령시절 R.O.T.C. 훈육관(교관) 경험에 친형님이 학군출신이셔서 타 출신에 대한 이해가 많으신 편이었고, 호감을 갖고 계셨다. 아들이 둘이었는데 첫째는 내 후배벌이이었고, 당시 종교(불교)도 영향을 미친 거 같았다. 어쨌건 난 무능한 연대 인사과장의 영향력에서 빠져나온 거 만으로 감사했다. 


공관 쪽방에 침대와 책상을 갖춘 독방이 생겼고, 공관 요리병이 해주는 아침과 저녁을 먹고 병과마크 대신 하얀 별이 두 개 새겨진 전속부관 기장을 전투복 상의 왼쪽 주머니 위에 붙이고 권총을 차니 폼도 났다. 사단장님께서 데리고 온 운전병을 포함한 세 명의 공관병은 동생들처럼 친하게 지냈고, 사모님은 수수하고 인자한 분이셨다. 물론 예상치 않은 빌런들도 등장했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거의 모든 사단 예하 지휘관, 참모들에게 존중받았고, 인접한 부대의 전속부관들과도 잘 지냈다. 출신이 다른 날 선택해 주신 사단장님의 마음에 부응한다는 생각에 더해 다양한 출신과 계급의 선배 장교들과 소통해야 해서 왼손 약지에 끼우고 있던 임관반지를 빼고 생활하기로 했다. 보직 후 한 달쯤 지나서였던 거 같다. 


그렇게 1년쯤 지나 전속부관이란 자리가 몸에 익을 때쯤 예하부대 순시 후 복귀하는 전투차량(흔히 지프차라고 하는) 안에서 갑자기 받은 질문. '정중위 너 멋진 군인으로 살고 싶어서 임관한 거지?' 장기복무 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복무연장을 통해 총 5년의 군생활까지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직업군인에 대해서는 아직 확고한 마음 정함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아직 잘 모르겠는데요. 조금만 더 겪어보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할 상황과 분위기가 아니었다. 49 : 51. '네! 사단장님'. 전속부관이 될 때보다 조금 더 큰 운명의 갈림길에서 난 방향을 정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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