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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고개를 넘어서

셀프 소대장 길들이기...

by 정썰 Dec 11. 2024

임관 전 세상 떠들썩하게 뉴스를 장식하던 제목. 소.대.장.길.들.이.기.

전대미문의 상황 속에서 처음 부임한 곳은 일산의 한 부대. 일명 황금박쥐부대.

지금 보면 만화 제목이 떠오르는 살짝 민망한 이름이지만 당시엔 진지했다.

전투 1 소대장. 연대장의 왼팔 격인(연대장이 오른손잡이라고 전제할 때 오른팔은 특공중대. 기억에 실제로 당시 연대장은 오른손잡이였다.) 전투지원중대의 1 소대장 자리였다.


소대장 길들이기는 첫날 중대장님부터 시작이었다. 연병장 박격포와 차량을 배치하고 훈련하는 도중 부임 인사를 했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훈련을 지휘해 보라 하셨다. 그 자리에 선채로 굳어버렸다. 식은땀이 흘렀던 거 같다. 중대장식 농담이었다.

인접부대 간부들도 동참했다. '네~ 전투 1 소대장 소위 아무개입니다.' 꼴에 장교라고 병사들처럼 '통신보안'을 붙이지 않고 점잖게 전화를 받았다. '간부 바꿔라~'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권위 쩐 목소리. '제가 간부입니다.' '소위가 무슨 간부야~ 간부 바꿔~' 이것도 뭐 나름 유머스럽다.

아버지뻘 주임원사와의 관계, 형뻘 중사와의 관계, 동생뻘 소대원들과의 관계. 나이와 계급, 이론과 경험, 원칙과 융통성,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느껴지는 새로움과 낯섦.

소대원들은 오랜 기간 곁을 내주지 않았다. 부임 직전에 병장들이 몰래 술을 반입해 마시다 걸려 징계를 받은 상태이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소위 선임들은 후임병들에게 ‘간부는 적’이라는 주입식 세뇌교육을 시킨 상태였고, 성범죄 경력이 있는 일병과 소대 내 왕따를 당해 면담 때마다 죽고 싶다던 상병까지 저마다의 이유로 관심과 관리가 필요한 동생들부터 학생운동하다 늦게 입대해서 매주 기무사 중사가 동향파악하러 오던 인접소대 서무계원까지 정말 버라이어티 한 인간관계 속에서 때론 고민하고, 때론 함께 울고 웃었다. 그러면서 얻은 결론은 진심은 통한다는 거다. 그리고 가식은 쉽게 들킨다는 거. 이름을 잊을 정도로 야, 저, 너, 인마, 김병장, 이상병으로 불리던 소대원들의 얼굴빛은 무표정의 회색이었다. 간부들은 계급이 깡패라며 본을 보이지 못했고, 수신(修身)은 물론이요, 제가(齊家)도 실패한 인사참모 소령의 대여섯 살 난 아들놈은 부대를 쏴 댕기며 만나는 삼촌, 형들한테 ‘너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알아?’를 영화처럼 뱉고 다녔다. 때론 창피했고, 때론 미안했다. 그래서 이름을 불렀고,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했던 거 같다.


부대 후문을 나서면 마을로 통하는 고개가 하나 있다. 일명 박쥐고개. 고개 중턱에 개인 차를 숨겨둔 부르주아 선배가 태워주지 않으면 주로 걸어서 넘곤 했던 그 고개.

소대 통신병이 억지로 빼앗듯이 가져가 다려주고 광내준 군복과 군화를 착용하고 나갔던 첫 휴가를 마친 마지막 날 밤 고개를 넘어오는데 정말 들어가기 싫었다. 소대원들 생각이 문득 났었다. 장교인 내가 이런 마음인데 우리 소대원들은 얼마나 싫었을까.

그렇게 난 소대원들에게 길들여지고 있었다.

소대장 길들이기는 쌍방과실이다. 5대 5가 아닌 7대 3 정도로 소대장 과실이 크다. 길들여지는 건 나쁜 게 아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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