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
장사 하루이틀 하나
부임 초반 업무는 예하부대 초도업무보고 수행이 대부분이었다. 사단 예하 세 개 연대와 직할대대까지 부대를 방문하셔서 업무보고를 받으셔야 했다. 예하 부대에 하달하라는 첫 명령은 '보고서를 열 장 이상 준비하지 말라. 형식에 치우쳐 과도하게 준비하면 보고 받지 않겠다.'라는 요지였다. 대망의 첫 방문 부대 작전과장께 전화했다. “알았어. 장사 하루이틀 하나? 알아서 잘 준비할게. “ 연대 작전과장이니 노련한 소령이다. 아무래도 사단장님 의도가 잘 전달된 거 같지 않아서 한 번 더 강조했다. “보고서 두터우면 업무 보고 받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십 년이 훨씬 넘는 군생활 동안 수많은 업무보고를 보고, 준비했을 그였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사단장님을 모시고 도착한 연대 지휘통제실 중앙석 탁자 위엔 반뼘에 가까운 두터운 보고서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사단장님께서는 자리에 앉지도 않으셨다. 바로 돌아서시며 ”현장으로 가자.” 단호한 어조였다.
초도 업무보고는 통상 지휘통제실에서 부대 전반에 관한 보고를 하고 작전지역으로 이동하여 작전계획 브리핑을 했다. 당황한 연대장과 참모들, 연대 예하 지휘관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뒤를 따랐다. 전술차량에 오르자마자 물으셨다. “부관, 전달 안 했나?” “했습니다.” 분명 명확하게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범이 된 거처럼 떨리고 기가 죽었다. 계획되어 있던 작전지역 고지에 오르자 눈앞이 캄캄했다. 브리퍼 옆에 집채만 하게 확대해서 정성 들여 색까지 칠한 지도가 합판에 의지해 위엄을 뽐내고 있었다. 보고자의 경례도 받지 않으시고 돌아서 산을 내려오셨고 바로 사단으로 돌아오셨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업무보고 일정을 다시 잡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해당 연대는 말할 것도 없고 사단 전체가 난리가 났다. 그날 퇴근길에 사단장님께서는 내게 물으셨다. “정중위, 미군은 사단장이랑 중대장이 전술차량 보닛에 두루마리 지도를 펴고 껌 씹으면서 전술토의를 하고 하는데 우리는 왜 안될까?” 그때는 몰랐다. 내가 전역할 때까지 군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그날 충격적인 사건은 예하부대에 소문으로 퍼졌고 다음 부대부터는 내 전화가 잘 먹혔다. 사단장님이 부대를 떠난 후 계속 이런 업무보고가 전통처럼 자리 잡았는지는 확일할 길이 없다. 어쩌면 말짱 도루묵이지 않았을까? 그랬을 거 같다.
변화는 어려워
그 후 업무보고는 간략하고 밀도 있게 진행되었다. 전속부관은 업무보고 시에 예하부대 참모장교들 주로 중, 소령이 마련해 준 뒷자리에 앉아있다가 회의가 끝날 기미가 보이면 미리 일어나 출입문을 열어 사단장님 이동로를 확보? 하고 후다닥 달려서 다시 차량 문을 열고 기다린다. 사단장님이 자리에 앉으시면 절도 있고 신속하게 하지만 부드럽게 문을 닫고 조수석에 재빨리 오른다. 그날도 그렇게 사이드미러 속에 경례로 배웅하는 예하부대 지휘관, 참모들을 뒤로하고 출발했다. 물론 운전병의 “부대로 복귀하겠습니다.”라는 보고와 “그래, 출발하자.”라는 나의 대답 후에. 차량이 부대에 도착하고 다시 재빨리 내려서 문을 열어드렸다. “정중위, 나도 손이 멀쩡하고 내가 육군중위를 문 열게 하려고 데려다 놓은 게 아니니 앞으로는 문 열고 닫는 일은 하지 마라. 내가 한다.” 일이 하나 줄었다는 만족보다는 부담이 더 크게 밀려왔다. 하지만 곧 적응할 수 있었다. 적응 못하는 건 또다시 예하부대 중, 소령들이었다. 예하부대에서 사단장님께서 회의를 주관하신 어느 날. 회의가 끝나가는데도 꼿꼿이 앉은 옆에 앉은 중령 계급의 참모님이 내 허벅지를 툭하고 쳤다. 내가 눈으로 “네?”하자. 그분은 눈으로 출입문쪽을 가리켰다. 회의 끝났으니 문 열라는 거다. “아닙니다.” 나지막한 내 대답에 그분이 안절부절못하더니 직접 문을 열려고 했다. 내가 막았다. “사단장님 지시사항입니다.” 난 예의 바르게 문옆에 서있었고 사단장님께서 집접 문을 여셨다. 차량문도 마찬가지였다. 그 짧은 몇 분 동안 난 수많은 눈치를 즐기고 있었다. 사단장님과 난 변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어지러워했다. 변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