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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거나 말라리아

도깨비 부대에서 겪은 도깨비 같은 일들

by 정썰 Feb 05. 2025

백마사단에도 편제대로 세 개의 연대가 있다. 사단의 백마처럼 연대도 각각의 상징을 부대 별칭으로 정한다. 처음 소대장으로 전입 간 곳은 황금박쥐부대였고, 사단을 떠나 전임 전속부관이 물려준 자리로 찾아간 곳은 도깨비부대였다. 도깨비연대의 2대대 작전항공장교 자리였는데 정식 명칭은 전시 임무를 토대로 정해진 거였고 흔히들 교육장교라고 하는 자리였다. 악몽의 시작이었다.


교육장교의 하루는 아침 6시 이전에 시작해서 자정이 넘어서 끝난다. 일일상황보고를 준비하고 회의가 끝나면 교육훈련과 부대운영 관련 업무를 하면서 계속해서 지휘통제실에서 상황장교 역할을 해야 한다. 상황파악, 유지, 전파로 일과시간에는 주 업무를 못한다. 어쩌면 이게 주 업무다. 점심도 마음 좋은 후배들이 자리를 대신해 주지 않으면 건너뛴다. 낮동안 준비한 결산이 끝나면 첫 끼니를 때우고 야근에 돌입한다. 어중간한 전방부대라 건물상태도 최악이었다. 지휘통제실과 붙어있던 작전과 사무실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웠다. 집기들도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상태였고, 그나마 휴식을 취하면 피곤을 풀 장교숙소도 변두리 여인숙 수준이었다. 언제나, 어디나 그렇듯 이런 물리적 상황은 참을만했다. 진정한 어려움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죽거나

살아오면서 죽고 싶다는 감정을 찐으로 느낀 건 딱 두 번이다. 이 모두가 군생활 중에 찾아왔고, 그 시초가 이즈음에 찾아왔다. 내가 교육장교로 부임할 당시 작전과 우두머리인 작전장교 자리는 공석이었다. 야전부대 알보병 경험이 없던 내가 작전장교 직무대리까지 맡았다. 전임 전속부관을 둘씩이나 참모로 데려온 대대장은 내게 호의적이었다. 업무가 미숙했지만 큰 문제없이 일을 배워가고 있었다. 그러다 소령으로 막 진급한(막 진급했지만 3차 진급이어서 대대장보다 1년 선배였던) 작전장교가 왔다. 변한 건 없었다. 군대업무를 참 쉽게 하는 사람이었다. 부대훈련계획을 세우는데 인접부대 계획을 받아서 출력한 다음에 가위로 잘라서 짜깁기 후 스테이플러로 찍어 이어서 작전병에게 새문서로 작성하라고 하고 퇴근하는 스타일이었다. 대대장 대면 보고는 거의 회피하고 내가 보고하도록 했다. 부대운영에 별 관심이 없어서 대대 체육대회 날 아무것도 모르고 출근했다가 실무장교인 인사장교를 불러 뺨을 때려 장교 탈영사건을 일으킬 뻔했고, 막차 진급도 하나님 은혜라며 독실한 크리스천 코스프레를 했는데 병사들에게 손찌검을 한 후 마귀와의 싸움에서 졌다고 캔맥주를 사 먹이며 무마했다. 배울 게 일도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하루는 작전과 전원을 소집했다. 사무실에 나부터 서열대로 중사인 작전담당관, 병사부터 이등병까지 작전병을 주욱 세워두고 나한테 이등병만도 못한 놈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보직 후 매일 쌓이는 일에 치여 살던 시절, 늘 자책을 달고 살았다. 그래서 그때 달려들지 못했다. 하지만 모욕감은 참을 수 없었다. 복수심과 자괴감이 섞여 고달픈 일상 안에서 끓어오르며 폭발했다. 안으로. 처음으로 자살을 생각했다. 나 같은 놈이 살아서 뭐 하냐는 마음 반, 유서에 저 새끼의 만행을 고발하고 싶은 마음 반. 그때 알았다. 사람마다 건들지 말아야 할, 죽음을 켜는 스위치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스위치는 결코 대단하거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라리아

당시 작전과에는 병사가 셋 있었다. 병장, 일병, 일병. 주로 병장과 일을 했다. 나보다 작전과 짬밥을 많이 먹은 친구였는데 작고 얼굴이 하옜다. 이름이 상일이었나? 하루는 여느 때보다 둘이 하는 야근이 길어졌다. 새벽까지 그날 오전에 연대장님께 대대장이 직접 보고해야 하는 훈련 문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새벽 4시쯤 작업이 끝났다. 둘 다 숙소로 돌아가기엔 애매한 시간이었다. 한두 시간 뒤에 다시 출근해서 출력과 검토를 해야 했다. 소파에서 잠깐 눈만 붙이자. 상일이는 그냥 책상에 엎드려서 졸겠다고 했다. 몇 번이나 잠깐이라도 허리 펴고 누우라고 했지만 고집이 만만치 않았다. 여섯 시에 알람을 듣고 일어나 키보드 위에 팔을 베고 엎어져 있는 병장님을 깨웠다. 상일아 문서 출력하고 마무리하자.

네…. 어…. 어???? 아….. 단말마 같은 녀석의 비명소리. 불길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불변의 법칙. 황급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녀석의 얼굴은 일그러져 울기 직전이었다. 밤새 작업한 문서가 다 날아가고 모니터는 내 머릿속처럼 하얗게 비어 있었다. 다시 시작했다. 계주 앞 주자에게 바통을 넘기 듯 지프차에 시동 걸고 달려 나갈 준비를 한 대대장님께 문서를 건네고 둘은 하루종일 멍하니 보냈다. 원망스러웠지만 혼낼 이유가 없었다. 녀석도 나도 위로와 휴식이 필요했다.

 지휘통제실 출입문 옆에 대자보가 붙었다. 의무대에서 작성한 말라리아 증상 및 예방법에 관련된 문서였다. 지나가다 홀린 듯 빠져들어 읽고 있었다. 예방에는 관심이 없었다. 증상에만 집중했다. 혹시 나에게 말라리아의 축복이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하. 말라리아는 아니구나. 아쉬움에 겨우 발길을 돌리려다 옆에 선 누군가와 부딪쳤다. 작전과 병장 상일이었다. 나처럼 대자보를 탐독하던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염화시중의 미소란 이런 건가. 쓴웃음이 서로 닮았다. 잠시나마 우리 둘은 국군병원의 병실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이게 전우애구나. 상일아 잘 지내지?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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