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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일들 1

도깨비부대에서 겪은 귀신이 곡할 사건들

by 정썰 Feb 12. 2025

보병 병과로 임관을 했지만 첫 보직이 포병과 유사했다. 다음은 완벽한 행정업무였으니 흔히 말하는 알보병 부대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빌런 같은 직속상관과 급격하게 낮아진 의식주의 허접함도 한몫했지만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대에 일어난 사건은 압도적이었다.

이름하여 ‘야투경 도난사건’. 야투경은 야간 투시경의 줄임말로 고가의 장비였다. 때는 일요일 아침. 대대장님은 휴가 중이었고, 대대 당직사령은 대대 최고참인 7 중대장. 야간 근무를 마무리하며 동이 터오는 부대 시설물을 순찰하고 있었다. 5중대 창고를 지나던 당직사령은 창고를 물고 있는 자물쇠가 풀려있는 걸 발견했다. 해당 중대 확인 결과 A급 야간투시경 두 개가 사라졌다. 중대장들과 참모장교들이 모였고, 휴가 중인 대대장께 보고가 끝났다. 대대장님은 서둘러 귀대하셨고, 긴급 대책회의가 소집되었다. 내부소행이다. 부대원 출입을 통제하고 찾아보자. 대대장님이 내린 결론이었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하루 이틀이면 찾을 줄 알았던 거다. 부대 내에 숨겨둔 걸 찾거나 관리 담당자의 착각 정도의 해프닝으로 끝날 거라 생각, 아니 기대했던 거다. 결국 며칠 만에 상급부대에 보고했고, 5부 합동조사를 한 달 동안 받았다. 모든 부대운영은 멈췄고, 대대 전 간부는 출근하면 대대 교회에 모여 작전장교 주도하에 눈치게임을 하다가 한 명씩 사단 수사관들에게 호출되었고, 부대원들은 매일을 부대 내외 수색정찰로 보냈다. 부대 안은 재래식 화장실까지 싹 비워가며 찾았고, 울타리 밖으로는 손에 손 잡고 토끼몰이하듯 보물 찾기를 했다. 수사관에게 호출된 간부들은 제각각의 취조를 받았는데 내 경우는 사단에서 근무할 때 안명이 있던 터라  단순하게 전날 시간대별 내 활동을 물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은 집요함은 저녁에 독신자 숙소에서 텔레비전을 봤다는 대답에 프로그램 이름과 진행자까지 물었다. 그리고 수사가 종결될 때까지 매일 동일한 일과를 반복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내부자의 소행으로 결론을 짓고 용의자를 색출하기 시작했다. 수사망을 좁혀 용의 선상에 오른 몇몇의 부사관들은 마침내 거짓말 탐지기까지 체험해야 했고, 영외 거주자들도 영내에 잡아두었다가 퇴근을 시킨 날 미행을 하기도 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야간투시경은 찾지 못했다. 부대는 풍비박산이 났다. 의심을 받은 간부들은 배신감을 토로해서 몇몇은 전출을 원했고, 흉흉한 말들이 돌았다. 당시 대대에는 육사 출신이 몇 없었는데 대대장과 5 중대장, 그리고 몇몇 소대장들. 중대장들은 5중대에 이런 일이 생긴 걸 안타까워했지만 한편으로는 남의 일이라는 안도와 시기, 질투도 느낄 수 있었다. 미결의 사건은 결국 대대장, 5 중대장 징계와 감봉으로 끝났는데 육사출신이라 그 정도로 끝났다는 뒷말들이 들렸으니 뿌리 깊은 출신 간의 알력은 이런 사건을 통해서도 감출 수 없었다. 도깨비 부대에서 겪은 첫 도깨비 같은 사건이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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