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인 듯, 상식 아닌 상식 같은 상식 밖의 사건들
미제로 남은, 미궁 속으로 빠져든 사건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군내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 중에는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초급장교 시절엔 병사들과 밀접하게 접촉하면서 이런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설명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동시에 그런 비합리적, 몰상식적인 사안들에 근접해서 개선의 시도를 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답답함은 더했다. (적어도 영관급 장교가 되어서는 업무와 관련된 실무적 차원에서 개선을 위한 시도의 기회는 종종 있었다. 물론 받아들여진 건은 없다.)
아직도 뇌리에 강하게 박제된 그 시절 국방일보를 장식했던 미담 사례 두 편.
1. 휴가 안 가는 주임원사
정확한 연차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부대 주임원사면 계급으로는 상원사급이고 복무기간은 20년 이상이었던 거 같다. 신문 반면 정도를 차지한 방대한 내용이었지만(사진이 그중 3분의 1 정도 차지했던 거 같기도 하고) 결론은 안정된 부대운영을 위해 단 한 번도 휴가를 가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임관 후 한 번도’였는지, ‘주임원사 보직 후 한 번도’였는지 잠깐 주춤하지만, 후자라고 해도 짧지 않은 기간이었다.
미담이었다. 지면에 실린 사진 속 주임원사도 환하게 웃고 있었고, 국방일보에 실린 취지는 ‘니들도 본받아’ 정도 아니었겠나. 하지만 당신 중위였던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주임원사의 역할이 중요할지라도 부대 내 간부가 그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개인적 신념이라고 해도 부대 지휘관은 뭐 하는 사람일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주임원사가 없으면 부대운영이 어렵다면 문제가 큰 부대 아닌가? 그렇다면 이 사례는 미담은커녕 경고를 받아야 할 사건으로 느껴졌다. 내가 이상한 건가? 밖으로 표 내지 않았지만 그때 이후 지금까지 난 이해할 수 없다.
2. 연대 전술훈련평가(R.C.T.) 기간 중 부친상을 당한 작전과장
연대 전술훈련평가는 연대의 전투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이벤트다. 사실상 연대장 개인의 평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이 엄청난 평가에 얽힌 에피소드는 부대 수와 육군의 연혁에 비례해서 수없이 많은데 맥락은 같다. 전역을 맞은 병장이 이 훈련을 빌미로 전역을 늦추는 건 비일비재했고, 발령이 난 작전과장을 개인적 인맥과 읍소를 가장한 협박을 통해 전출일을 미루는 일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부친상에도 불구하고 훈련에 임한 후 묘소를 찾았다고 대서특필하는 건 여러 면에서 문제가 많았다.
우선, 연대장의 능력에 의심이 갔다. 당연히 작전과장이 공석이면 연대장과 작전장교의 부담이 커질 것이다. 하지만 해야 한다. 하는 게 맞다.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 않았다. 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전과장의 마음을 조종했는지 모른다. 백번 좋은 쪽으로 생각해서 작전과장의 책임감과 의지가 꺾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해도 만류했어야 했다. 그래서 난 훈련을 평가하는 평가단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부대평가의 결과가 자신의 고과에 반영되는 연대장과 그 연대장에게 평가를 받아 진급을 해야 하는 작전과장 사이에서 벌어질 전개는 너무나 뻔하다. 내가 평가 책임자였다면 핸디캡을 주고 훈련을 진행했을 거다. 개전 초 적 공격에 의한 작전과장 사망. 이렇게 상황을 주고 작전과장을 집으로, 연대장은과 그의 부대는 예상치 못한 상황 속으로. 얼마든지 실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그 당시 늘 ‘훈련은 실전처럼, 전투는 훈련처럼’을 강조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작전과장이 없는 상황에서 대처해서 실전처럼 훈련을 진행했다면, 전투의 승패, 즉 결과와 무관하게 제한된 상황에 대처하며 싸우는 모습을 정확하게 평가했다면 어땠을까?
두 편의 미담사례는 모두 평시에 벌어진 일이다. 무론 전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내 생각도 그렇다. 전쟁이라는 상황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으니 그에 대한 대응도 상식적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전속부관 시절 ‘월남에서 전쟁을 치를 때도 병사들 제때 휴가 보내고, 전역시키고 그랬다’ 던 당시 베트남 전쟁에 소대장으로 전투를 치렀던 사단장님의 말씀을 떠올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기사였다.
그 후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때론 이해해 내고, 때론 끝내 이해하지 못하며 견뎌왔다. 이해할 수 있는 군대로, 상식이 통하는 군으로 바뀌길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