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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경화 Apr 15. 2020

가우디와 <안젤로>... 그리고 여행

데이비드 맥컬레이 지음, 북뱅크

가우디와 안젤로... 그리고 여행


유럽여행중인 딸아이가 사진을 보내왔다. 런던의 빅벤 앞에서, 파리의 에펠탑 앞에서,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에서 뻣뻣하게 엄청 촌스러운 포즈로 서서 찍은 사진이다. 뭔가 했더니 28년 전 지 엄마가 찍었던 사진의 패러디란다. 여행 전 우연히 엄마의 사진첩에서 사진들을 발견하고 그대로 찍어보자 작정했던 모양이다.


그래, 그해 여름, 여행을 했었다. 대학 졸업 전 취직자리가 정해졌던 나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졸업식을 맞이했다. 3월부터 고향에 있는 한 사립중학교에서 사서교사로 근무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첫출근 며칠 전, 난데없이 교육부에서 교사증원 중지 명령이 내려왔다나 하면서 한 학기만 늦게 출근해달라고 전화가 왔다. 여름방학까지 그렇게 강제 백수가 되었다. (결국 그 백수 기간은 길어져서 가을쯤에야 학교를 포기하고 회사에 다녔다.)


대학원에 다니던 친구와 여행계획을 세웠다. 40일쯤 유럽을 도는 배낭여행이었다. 무려 28년 전이니 인터넷이 있나 도서관이 잘 되어 있나. 유레일패스를 사면 함께 주는 두꺼운 기차시간표를 활용해 여행계획을 세우고 안 되는 영어와 수줍은 몸짓을 장착한 채 여행을 떠났다. 


어찌나 썼다 지웠다 했던 계획이었는지 지금도 그 당시의 여행 루트가 눈에 선하다. 런던 인 파리 아웃이었는데, 중간중간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밤기차를 타고 멀리 한번씩 나가주었던 것이 포인트였다.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기차칸에서 마른오징어를 고추장에 찍어먹었다가 여권검사하러 온 승무원이 코를 막고 검사 없이 패스했던 기억, 융프라우에서 알프스소녀처럼 걸어서 내려왔으나 알고 보니 우리 기차표는 왕복이었던 기억, 너무나 맑은 눈을 가졌던 집시 소녀에게 여권을 털릴 뻔한 기억 등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딸아이가 전해주는 지금의 여러 가지 소매치기 수법에 비하면 그 때의 소매치기는 정말 신사였다. 눈이 마주치면 잘 생긴 이태리 소매치기가 씽긋 웃으면서 넌 봐주겠다는 듯이 그냥 갔으니까. 


딸아이는 바르셀로나에서 본 가우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나는 가우디를 딸아이가 고3때, 한창 입시에 열올리고 있던 시절, (그 압박을 딸아이는 잘 견디는데 엄마인 내가 견디지 못하고^^)  막내와 단둘이 훌훌 떠났던 여행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천재였다. 건축이라는 것이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이구나! 생각하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었다.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그림책 <안젤로>(북뱅크)를 읽다 보면 가우디를 떠올리며 쓴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다. 성당 외벽보수공사를 하는 사람이고, 늘 허름한 옷을 입고 있고, 죽은 후 성당에 묻히고... 하는 것에서 아마 그런 느낌을 받았나 보다. 안젤로는 외벽 보수공사중에 아픈 새 한마리를 만난다. 

텍스트에는 '"원, 참! 벽 고치는 것도 모자라서 새까지 고쳐야 하다니!" 새의 잠자리를 마련하면서 안젤로는 툴툴거렸습니다.'라고 쓰여 있지만 그림을 보면 종이상자로 새의 침대를 만들어주고, 새는 온 몸에 붕대를 감았는데, 원하면 움직이지 않아도 언제라도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물통과 빨대를 연결하여 새의 부리 바로 앞에 설치해두었고, 나무도 한 그루 심어 두었으며, 벽에는 성당 사진까지 붙여 두었다. 

새가 튼튼해지자 안젤로는 새를 데리고 일터로 나가고, 주말이면 차에 태워 교외로 나가 푹 쉬게 해주는데 그림 하나하나가 정말 깨알같은 디테일을 보여준다. (건축을 전공한 사람 답게 작가는 그림 하나하나에 디테일을 살려 두었다. 그림책은 역시 그림을 봐야 한다.)

<안젤로>를 만난 후부터, 여행을 가면 건물 외벽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곤 한다. 우연히 새둥지라도 발견하면 어찌 그리 반갑든지 ^^


매년 초, 버킷리스트를 만들면서 빠지지 않는 것이 다이어트와 운동(죽을 때까지 숙제일란가...ㅜㅜ), 책읽기, 그리고 여행이다.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스카이스캐너에 들어가 비행기값을 확인해보고 혼자 루트를 짠다. 작년에는 오직 싼 비행기가 나온대로 런던 - 더블린 - 마드리드 - 도쿄 라는 아무런 맥락 없는 여행을 하기도 했다.

올해도, 갈 형편이 안 된다는 걸 뻔히 알지만 난 또 겨울여행을 위해 혼자 루트를 정한다. 이태리에 가서 미술관만 옴팡 돌아봐야지. 아니 네덜란드로 가서 고흐만 계속 보다 돌아올까? 핀란드에 가서 오로라를 보는 것도 좋겠고, 몸도 여기저기 안좋은데 휴양지에서 햇빛이나 쬐다 오는 것도 좋겠다.


아, 여행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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