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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의 Apr 04. 2017

여기 커피가 있습니다

이해와 배려



 한 할아버님이 카페로 들어섰다. 눌러 쓴 옛스러운 모자 사이로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님은 등장부터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낯선 듯 주변을 한참을 둘러보시다가 머뭇머뭇 카운터로 다가가 짧은 한마디를 툭 꺼내놓으셨다.

 “커피.. 있소?”

 바로 옆에 커피 종류가 수두룩하게 적혀 있는 메뉴판이 무색해지는 말이었지만 젊은 매니저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 커피 있습니다.”

 주시오. 고맙소. 짧은 말과 함께 할아버지는 카페의 한 구석으로 가 의자에 걸터앉았다. 내 시선은 매니저에게로 향했다. 아직 카운터 앞에 선 그의 표정에 잠시 고민이 어렸다. 포스에 무슨 커피를 찍어야 할지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주문이 아닌 주문을 받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젊은 매니저는 할아버지에게 무슨 커피를 원하시냐고 다시 묻지 않았다. 그저 난처하게 한 번 웃고는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따뜻하게, 설탕 넣어드릴까요?”

 할아버지는 고맙다고 대답하셨다. 매니저는 커피를 들고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커피 값을 받았다. 이천오백원입니다. 할아버지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하나씩 세는 동안, 그는 옆에 서서 기다렸다. 매니저는 돈을 받아들고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자리로 돌아갔다.


할아버지가 카페에 들어서서 낯설게 두리번거리는 것을 처음부터 왠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나는, 괜스레 고마웠다. 언젠가의 기억이 떠오른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연세가 많으신 편이다.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오시는 일도 드물었다. 그러던 아버지가 어느 날 함께 궁궐 구경을 하자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초여름 뜨거운 햇볕에 궁궐을 다 돌아보고, 잠시 쉴 곳을 찾아 한적한 카페로 아버지를 모시고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러 잠시 자리를 비웠다 카페로 들어오는데, 카운터 앞에 서신 아버지가 보였고 그 너머로 카페 아르바이트생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러니까 커피 뭘로 드리냐구요. 똑바로 말씀을 하셔야죠.”

 의아한 마음으로 아버지 옆에 다가서자, 짧은 순간 몇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머쓱한 표정과 주문대 앞 테이블에 놓인 메뉴판을 신경질적으로 흔드는 아르바이트생. 상황이 이해가 되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카라멜 마끼아또. 카페라떼. 스트로베리스무디. 넘쳐나는 영어 이름 속에서 딸에게 음료 한잔이라도 사주고 싶었던 나이든 아버지는 그저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낯선 것을 어려워하는 것이 타박할 일이란 말인가.

온갖 억울함이 스쳐지나갔지만, 그냥 아버지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우리 나가요. 여기는 마실 걸 안파네요. 돌아가는 길, 아버지는 알바생이 내밀었다는 그 메뉴판에는 종류가 너무 많았다고만 하셨다.

 매니저가 묵묵히 웃으며 할아버지에게 건넨 커피가, 그 모습이 나에게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쌀쌀한 가을 날씨에도 카페의 공기가 어딘가 모르게 따뜻해졌다. 아버지와 함께 쫓기듯 나왔던 기억 속의 카페와, 낯선 할아버지가 커피를 홀짝이는 카페 모두 ‘카페’였지만, 달랐다.


 이곳에는 소통이 있었다. 매니저가 할아버지에게 전해준 것은 따뜻한 커피이면서, 한잔의 소통이었다. 아버지에게 딱딱한 메뉴판을 내밀었던 알바생에게도 소통하려는 의지만 있었다면, 하나의 주문거리가 아니라, 마른 목을 축일 마실 것을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쉬다 나가시는 낯선 할아버지를 보며, 지난 기억이 떠올라 그저 고마웠고, 마음이 따듯해졌다. 의지만 있다면 소통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친절은 복잡한 것이 아니고, 배려 역시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이 카페에는 ‘커피’가, 커피가 있었다.




* 인권연대 웹진_ 사람소리 기고

* 오마이뉴스_ 20170402일자 기사에 실렸습니다.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311826#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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