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주먹구구 연구소의 박졸렬은 평소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불만을 키운 건 8할이 유명세를 향한 허영심이고, 나머지 2할은 그의 타고난 인격적 결함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세상은 그를 알아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흔하고 흔한 꼰대라서 대중에게 큰 신선함을 주지 못했다.
박졸렬은 자신이 고고한 지식인이기 때문에 점잖게 앉아 말만 해도 세상이 까무러칠 것을 원했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까무러치게 할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엉덩이로 풍선을 분다던가, 그에 상응하는 기묘한 행위를 하여 이목을 끄는 것뿐이었다. 이를 알 리가 없는 박졸렬은 안타깝게도 계속 헛물만 켜고 있었다.
앞서 꿈나무 강연이 좌절된 이후, 그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유명세를 얻고자 했다. 연구소는 그의 작은 왕국 같은 곳이었으므로 그는 다수의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으며 손쉽게 이목을 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밖에선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노력은 번번이 실패했다. 때마침 그의 원수 같은 친구이자 엉망진창 학술원의 원장 권조조가 TV 교양 프로그램에 잠깐 얄미운 얼굴을 비치고 말았다. 이를 계기로 유명세를 향한 박졸렬의 강박은 더욱 심해졌다.
우리는 박졸렬의 사회에 대한 불만이 공공장소 테러와 같은 우발적 범죄로 발현되지 않았다는 것에서 위안을 얻어야 할까? 홍차는 이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의 불만은 폭력적으로 분출되진 않았지만, 무더운 여름날 말매미의 울음소리처럼 홍차의 정신을 서서히 좀먹었기 때문이다.
"말차씨, 우리가 직접 토론회 같은 거 해서 내 얼굴이 유튜브로 나올 수 있게 하려고 하는데, 젊으니까 이런 거 뭔지 알지? 이부조 팀장, 말차씨 데리고 이거 좀 해봐."
박졸렬은 한껏 무게를 잡고선 커다란 콧구멍을 긁으며 홍차를 찾았다. 젊다는 이유로 온갖 잡일을 다 떠맡게 된 홍차는 자신의 젊음이 조금 저주스럽게 느껴졌다. 이부조도 그다지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들인 노력에 비해 자신에게 그다지 돌아올 것이 없는 일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 같았다.
지상파는커녕 종편,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조차 출연 기회를 얻지 못하자 스스로 기회를 만들기로 한 그의 노력이 참 가상했다. 알랭 드 보통은 유명해지고 싶어 하는 욕망의 핵심엔 사실 인간의 가장 연약하고 단순한 열망이 있다 말한다. 바로 제대로 대접받고 싶어 하는 열망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자신이 제대로 대접받을 만한 인간이라 착각하게 했는지 알 수 없으나, 박졸렬은 대접받고자 하는 열망 바로 그 자체였기 때문에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다만 홍차는 그가 이렇게까지 구차한 방법을 쓸 줄은 몰랐을 뿐이다.
"권조조 원장님 알지? 그분도 올 테니까 그렇게 알고. 그러니까 스튜디오나 알아봐. 최대한 싼 데로. 이런 거 말 안 해주면 또 일을 못하지, 쯧쯧."
그날도 홍차는 박졸렬의 머그잔을 씻지 않고 바로 찬장에 넣어버렸다.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것들은 깨끗한 식기를 사용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 홍차의 지론이었다.
반면 이부조의 지론은 '무조건적인 동의와 아부는 세계 만국의 공용어'라는 것이었다. 이부조는 홍차가 찾아온 스튜디오 중 가장 저렴하고 열악한 곳을 골라 박졸렬에게 마치 자신이 찾은 것처럼 알랑방귀를 뀌며 보고했다. 박졸렬은 의심스러울 정도로 낮은 가격을 보며 입이 찢어질 듯 기뻐하며 한치의 의심도 없이 결정을 내려버렸다. 홍차는 너무나도 불안했다.
"그런데 여기 위치가... 지하예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제가 다녀왔을 때는..."
이부조는 감히 박졸렬이 내린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홍차를 째려봤다. 박졸렬은 이부조를 흡족하게 쳐다본 후 입을 쩝쩝거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미 내가 결정 내렸다고 했는데, 왜 자꾸 말대답을 하지?"
그렇게 박졸렬은 스스로 끔찍한 운명에 자신을 옭아 넣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 홍차는 통쾌함보다는 피로감을 더 느꼈다고 말한다. 윗사람의 어리석음은 처음엔 큰 웃음을 자아내긴 하지만, 결국 설명하기 어려운 찝찝함을 남기기 때문이다.
대망의 토론회 날.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은 물론 아직도 좌변기를 사용하는 유서 깊은(!) 상가 건물 지하에 위치한 그곳은 악몽에서나 볼 법한 곳이었다. 홍차는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박졸렬과 권조조를 스튜디오로 안내하며 그들의 표정이 서서히 변하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평소라면 깐죽거리며 박졸렬을 살살 약 올렸을 권조조는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 넋이 나가 박졸렬을 모욕하는 것을 잊은 것 같았다. 박졸렬 또한 권조조 앞에서 체면을 구겼다는 사실보다도 비위생적인 것을 봤을 때 느끼는 원초적인 공포감에 휩싸여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스튜디오 내부를 바라봤다.
촬영을 약속한 스튜디오 사장이 껌을 짝짝 씹으며 권조조와 박졸렬을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가볍게 목례를 했다. 아직 전 타임 팀이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어서 홍차와 이부조, 권조조와 박졸렬은 방금 엄청난 양의 닭발을 먹어 치우며 먹방을 끝낸 유튜버의 우렁찬 트림 소리를 생중계로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박졸렬의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트림 소리보다 더 크게 지하 스튜디오를 울렸다.
"바.. 박소장... 방송이라며... 방송국 아니었어?"
권조조가 겨우 입을 뗐다. 홍차는 앞 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상황이 너무 우스워 숨죽여 웃었다. 이부조는 웃을 여유도 없이 하얗게 질려 박졸렬과 권조조에게 알록달록한 마카롱을 건넸지만 그들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더러운 잿빛 지하실과 대비되는 아기자기하게 개별 포장된 마카롱은 잘못된 장소에 놓인 연극 소품같이 느껴졌다.
그나마 방송에 몇 번 출연해 본 경험이 있는 권조조는 조금은 세련된 표정과 제스처로 주어진 악조건과 맞섰지만, 허영심만 앞섰던 박졸렬은 어색한 시선 처리와 불안한 몸짓이 그대로 화면에 담겼다. 안간힘을 다해 설사를 참으며 교통 경찰관에게 과속한 이유를 설명하는 사람 같기도, 말하는 법을 방금 배워 TV에 출연하게 된 원시인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얼굴이 썩은 감자같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박졸렬은 스크린에서 움직이는 자신의 모습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목소리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는 몇 번씩이나 그 망할 동영상을 다시 보며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그런 식으로 스스로 조회수를 올려놓고는 그래도 이런 걸 찾아보는 교양인들이 대한민국에 아직 남아있다며 기뻐했다.
물론 직원들에게 조회수를 올리고 좋아요를 누르라며 종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리석과 이부조는 경쟁하듯 동영상을 재생하며 충성심을 입증하려 했다. 덕분에 홍차가 단 한번도 동영상을 재생하지 않았어도 큰 표시가 나지 않았다.
유명세를 향한 박졸렬의 허영심은 불빛에 현혹되어 랜턴에 타 죽는 날벌레나, 고기잡이배의 불빛을 따라가다 결국 죽임을 당하는 오징어와 다를 바가 없었다. 홍차는 박졸렬 또한 허영심으로 인해 파멸하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굳게 믿으며 하루하루를 견뎌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