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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甚深)해야 깊어진다

by 말글손 Mar 09. 2025

엄마가 요양원에 가신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어가는 듯하다. 

작년 10월 말 경에 넘어지셔, 고관절 수술하고 요양병원 계시다 요양원에 가신 지 벌써.

그 사이 다시 입원도 한 차례하셨지만, 그래도 잘 버텨 주시니 자식으로 참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곁에 계시는 동안이라도 자주 뵙는 수 밖에 없다.


일요일이다. 토요일은 나름대로 일을 본다고 통영 용호도에 다녀왔다. 술도 한 잔 마시고, 토요일이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말았다. 일요일 아침. 나름대로 일찍 일어나, 아들과 브런치를 먹었다. 남은 갈비를 조금 굽고, 남은 꼬막을 간장에 비벼서 브런치를 푸짐하게 먹었다. 아들은 야구 보러 간다고 가고, 나는 혼자서 집을 지켰다. 가져갈 것도 없는데 집을 지켜야한다. 내가 주문한 에어컨 위치 변경을 위해 기사님이 오셨다. 지금도 기사님은 열심히 에어컨을 이동시켜 달고 계시고, 나는 <나는 자연이이다>를 틀어놓고, 밀린 숙제 하나 마무리하고, 방에서 누우려는데, 그래도 눈치가 보여 집 안팎을 오가며 시간만 보내고 있다. 심심하다.


심심하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할까 잠시 고민하는데, 아침에 절에 모셔다 드린 장모님이 깻잎을 한가득 사오셨다. 뭘 이리 많이 사오셨느지. 참. 이리 많으면, 담기도 어렵지만, 담아둬도 너무 익어 다 먹지도 못하고 버려지는 경우도 있는데, 장모님은 늘 욕심이 많다. 욕심이래야 육십 넘은 자식들 오면 싸주려고 한다는 건 알지만, 자식들도 잘 가져가지 않는데, 늘 이러신다. 나는 적당히 적당히, 먹을 만큼, 맛있게 먹을 만큼 하자고 그렇게 말하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다. 깻잎을 씻고 계시는 장모님께 잔소리 했더니 들어가란다. 나도 그냥 들어왔다. 그리고 또 심심해졌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긁적인다. 일기라도 남겨둘 요량으로.


배가 고프다. 그사이에 배가 꺼졌나 보다. 내일 해야할 일을 떠올려보면, 뭐 딱히 특별한 일은 없지만,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요즘은 강의가 뜸해서 쉬어가고 있으니, 꽤나 여유가 있다.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가서 염증수치를 확인하고, 다시 창원 모학교에서 OMR을 회수하고, 내서읍 어느 학교에 검사지를 전해드리고. 그리고 나면 뭐 특별한 일은 없는데, 특별한 일을 하기 위해서 준비를 해야하는데. 늘 준비란 것이 시간과 에너지가 투자되지만, 산출되는 게 없으니 재미나는 게 없다. 그래서 내일도 심심할 예정이니, 내일도 조금은 긁적거릴 시간이 있겠다. 그런데 말이다. 조금 더 심심하면, 생각이 조금 더 깊어질 듯한데 말이다. 아직은 잡념이 더 많다. 머리속에는 지렁이가 수십마리 꿈틀거리는데, 언제쯤 다는 아니더라도 몇 마리라도 내 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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