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그만 저만 평온한 나날이었는데 2003년 가을 어느 날 갑자기 배가 아프고 열이 나 병원으로 가시게 되었다. 진단은 담도가 막혔다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누워 있으면 담즙분비, 소화, 근육 활동 정지로 생길 수 있는 증세였다. 급히 수술을 받고 잠시 회복되는가 싶더니, 해가 바뀌면서 다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셨다. 우리 형제들은 모여서 결론을 내렸다. 이제 떠날 순간이 온 것 같다고. 하지만 어머니는 안방 침대와 병원을 오가며 네 달여를 더 견디셨다.
그동안 친척들이 다녀갔고, 아들딸, 손주들과도 눈을 맞추며 온화한 미소를 지으셨다. 이상하리만치 '아프다'는 말씀은 별로 하지 않으셨다. 오빠는 '연로하셔서 통증 감각이 무뎌진 것'이라 했지만, 나는 그것이 어머니의 성품 때문이라 믿는다. 누구에게도 쓴소리를 하지 않으셨던 온화한 성품이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그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내게는 너무 아프고 쓰린 기억이라 차마 글로 남길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결정적으로 병원에서 생겼던 욕창이야기다. 어머니는 병환이 깊어지면서 계속 병원 침대에 누워 계셨는데 간병을 하며 모든 정성을 다하려 했지만, 끝내 욕창은 막아내지 못했다. 그 사실이 지금도 가슴 한편에 죄책감처럼 남아 있다.
욕창은 단순히 피부의 상처가 아니라, 오랜 시간 움직이지 못하는 몸이 외치는 절박한 신호였다. 하지만 나는 여러 다른 일들에 쫓겨 '에어 매트도 깔았으니 괜찮겠지' 하고 마음 한구석에서 안심하려 했던 것 같다.
떠나실 시간이 가까워 오면 환자는 침묵 속에 들어간다. 세심한 보실핌만이 후회를 덜어준다.
어느 날, 어머니의 등을 들춰본 순간 나는 비통함과 무력감에 휩싸였다. 작게 시작된 욕창이 깊어지고 있었다. "요즘 같은 첨단 의료 시대에 왜 욕창 하나 막지 못한단 말인가?"
왜 병원에서는 욕창에 대해 더 심각하게 경고하지 않았을까? 왜 더 적극적인 예방책을 제안하지 않았을까?' 에어 매트만으로는 역부족임을 보면서,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어머니의 고통을 줄일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지나가버린 이야기로 남았다. 그러나 시간을 되짚어 보면, 분명 배운 것이 있다. 욕창은 단순히 한 가지 기계나 약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간병인의 손길, 사랑, 그리고 세심한 돌봄이 합쳐져야만 비로소 막을 수 있는 결과물이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내가 어머니를 돌보며 한 부족한 점들은, 누군가에게 교훈이 되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글을 남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사랑하는 이를 간병하고 있다면, 꼭 전하고 싶다. 욕창은 침묵 속에서 생겨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들어 아프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더욱 세심히 살펴야 하고, 더 자주 몸을 움직여 주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간병인도 자신을 너무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완벽할 수 없다. 사랑하는 이를 향한 정성과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다. 나는 그 사실을 믿는다. 어머니의 아픈 상처 속에서도 나는 우리가 함께 나눈 사랑과 시간을 읽을 수 있었기에, 지금도 그 믿음을 품고 살아간다.
* 제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 누르시고 다음 이야기도 함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