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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 사라진 기억, 놓쳐버린 만남

엄마와의 마지막 순간들: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배움

by 김원자 Dec 18. 2024

사람의 건강의 증표는 의욕이다. 모든 것이 시들하고, 가고 싶은 곳이나 보고 싶은 곳, 혹은 만나고 싶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이미 그 사람의 어딘가에 병이 있거나 문제가 있다는 신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노년기에 접어들면 의욕이 떨어진다고 한다. 특별한 일부를 제외하면, 노년에는 교제의 범위가 좁아지고, 가고 싶은 곳도 점점 줄어든다.


어머니도 그렇게 의욕이 떨어졌는데 그런데도 꼭 하나 원하시는 것이 있었다. 서울에 사시는 올케, 그러니까 작은오빠의 부인이자 나에게는 외숙모가 되는 분을 만나고 싶어 하셨다.

외숙모는 어머니의 친정동네인 와레기에서 오래 사셨는데, 외삼촌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한참을 그곳에서 지내시다가 어느 해에 자식들이 있는 서울로 이사하셨다. 그러나 외숙모는 자식들과의 합가 생활에 충분히 만족하지 못하셨던 것 같다. 시간이 날 때마다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서울 생활의 답답함을 호소하셨다.

“그러니까 형님이 잘못했어라우. 그냥 고향에 남아 계셨어야 했는데...”


이게 어머니의 지론이었다. 버젓한 집을 두고 왜 불편하게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광주로 내려오라고 자꾸 권하셨다. 어머니는 자신은 몸이 불편해 갈 수 없으니, 외숙모가 내려와 함께 지내자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렇게 전화로 '언제 만날 것이냐', '자식들이 좀 데려다주지 않느냐' 하며 통화만 하시더니, 언제부턴가 두 분의 대화가 동문서답으로 이어졌다. 두 분 모두 귀가 어두워져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이가 더 어리던 외숙모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우리는 차마 외숙모의 부고를 어머니께 전해드리지 못했다. 그 후에도 어머니는 가끔 외숙모의 안부를 궁금해하시고 전화를 기다리셨다. 그 모습을 보며 “아, 보고 싶을 때 누구든 만나게 해 드려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유일한 시누이인 고모님을 뵙게 해 드리기로 했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몇 가지 선물을 준비하고, 시골에 계신 고모님을 찾아갔다.


두 분의 상봉에 대한 기대가 컸다. 막 시집올 무렵 아직 처녀였던 고모님과 함께 지내셨던 어머니, 그리고 그 시절을 기억하실 고모님. 그러나 기대는 전혀 맞지 않았다. “아이고 형님~” 하며 반가워하실 줄 알았던 고모님이 치매에 걸리셔서 어머니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신 것이다. 어머니 역시 하얀 머리의 고모를 보고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셨다.  함께 갔던 우리 형제들이 민망할 정도였다.


사람은 만나야 할 때가 있는 모양이다. 시간이 지나 추억이 희미해지고, 상대방이 그 기억을 잃어버리기 전에 만남의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존재의 소멸이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므로,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돌보는 것, 소소한 목표와 만남을 통해 삶의 활력을 찾아주는 것도 돌봄의 한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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