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모호한 미래
나는 소위 지역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시험을 쳐 입학한다는 명문여고에 합격했다. 시골에서 올라와 중학교 시절 '천재소녀'라는 별명을 듣던 나에게 큰 자부심을 안겨줄 기회였지만, 그 문턱을 넘어선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곳은 나보다 키도 크고 예쁘며, 세련된 재원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갑작스레 '특별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벗겨진 채, 나는 그저 평범한 학생으로 서 있었다. 학교생활은 성취와 자부심보다는 묘한 소외감과 평범함 속에서 흘러갔다.
학교 옆 조그마한 집 방 한 칸을 얻어 여전히 할머니를 모시고 자취를 했는데 건너 방에는 같은 학교에 입학한 애자라는 친구가 그 애 역시 할머니와 함께 시골에서 올라와 살았다. 그 동급생 친구는 반대로 눈에 띄게 비범한 존재였다. 공부에 있어 진정한 천재였고, 주로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도 그 친구를 따라 도서관을 드나들곤 했지만, 마음은 늘 허공에 떠 있었다.
내 꿈은 무엇인지, 무엇을 잘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저 매일을 살아내기에 바빴다. 특별히 뛰어난 분야도, 목표도 없었던 나는 어쩌면 스스로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 친구와 나는 도서관보다 오히려 동네를 헤집고 다니며 놀았던 추억이 더 많았다. 낯선 도시의 풍경 속에서 우리는 청춘의 단편을 공유했다. 그렇게 친구와의 시간이 흐르고, 그녀는 결국 서울 최고의 S대학에 합격했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성취였지만, 그 뒤에 숨겨진 그녀의 무게를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충격으로 한동안 깊은 슬픔 속에 잠겼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눈부신 성취와 빛나는 미래가 보장된 것 같던 친구의 삶 뒤에는 우리가 알지 못한 고통이 숨어 있었던 걸까?
그 사건은 나를 처음으로 삶의 불가사의와 마주하게 했다. '성공'이라는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내면, 그리고 미래의 모호함이 한꺼번에 내게 밀려들었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 나는 깊은 불안을 느꼈다. 삶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나의 미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이런 질문들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잃어가던 소녀에서,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필요를 막연히 느끼는 어른으로 조금씩 성숙해 갔다.
그 시절은 한마디로 삶의 방향을 잃고 불안 속에서 방황하던 시간이었다. 친구의 죽음은 내게 삶의 불확실성과 어둠을 알게 해 주었고, 나를 현실의 깊은 면모와 맞닥뜨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