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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플리 Jun 05. 2019

‘No regret’ Spring says.

8th of '33 journal  <여행의 자세>



공기부터가 다르다. 아직 겨울의 여운은 남아 있지만, 땅에서부터 차오르는 생명의 에너지와 온기로 구석구석을 녹인다. 봄은 그런 계절이다. 엄마의 부드러운 속살과 온화한 애정을 닮아, 떠올리면 언제고 달려가 안기고 싶어 진다. 그 봄을 이번에는 체코에서 보낸다. 기대야 당연하고, 오히려 너무 들뜨진 않을까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했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회색 도시에서조차 마음을 적시고 몸살을 앓게 하는 계절. 하물며, 프라하였다. 4월, 이 여행을 마주하는 자세에 대하여.





여행을 시작한 지 며칠이 흘렀다. 아직 폴란드에 머물러 있던 내게 곳곳의 상황이 전해졌다. 한국에는 벚꽃이 조금 일찍 만개했다 하고 그건 프라하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거의 1년 전부터 한 달 살기를 계획하면서 벚꽃 생각은 못한 나와 달리, S는 도시 곳곳에 봄꽃 스팟까지 찾아둘 만큼 빈틈없고 꽃을 좋아하는 여자였다. 조금 일찍 도착해 보내온 그녀의 메시지에서는 같은 유럽에 있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포근한 프라하의 온기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인지 얼마간 계절을 역행하듯 여행하다 프라하로 가는 길은 이제 마치 다른 세계로 향할 것만 같았다.


봄은 늘 조바심을 일으키는 짧은 계절이다. 쌀쌀함에 움츠리다 보면 저만치 달아나 있는. 꽃 좀 피는구나 싶더니 벌써 떨어지는. 일상에 쫓겨 얼마간 지내다 보면 어느 해 봄은 통편집이기도 했다. 그래서 감정적인 사람이 될 좋은 핑계가 된다. 지금 아니면 안 될 것에 주저함이 없어지고, 다시는 볼 수없을 것처럼 애틋해지기도 한다. 더욱이 이 봄은 오기 전부터 끝날 것을 떠올리기도 싫었다. 프라하가 아름다운만큼 아련함도 더 커질 것이기에.


이상하지만, 봄보다 훨씬 길었던 너와의 만남 동안에도 그랬다. 수없이 흔들렸고 끝을 생각했다. 아니 그간 모든 사랑의 순간에는 그랬다. 눈만 마주쳐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최초로 두 손바닥이 서로의 촉감을 확인하는 첫눈 같은 순간에조차. 여러 번 겪어도 끝이 지독히 두려웠기 때문이고 지금도 여전하다. 사랑의 끝은 언제나 나의 지구를 통째로 부쉈다. 그리고 산산조각 난 그것을 홀로 다시 붙이는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 알게 됐다는 것이다. 고약한 숙취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죽을 것 같아도 정말 죽지는 않는다는 걸. 얼마 지나면 또 허공 같은 이름 앞에 나를 내던지고 싶어 질테고, 지금 화약처럼 타올라 부서진들 다시 옹골차게 단단해질 것임을. 뼈아프고 값진 교훈들.


그래서 이번 여행의 시작 전부터 마음을 휘감은 두려움을 알아챘을 때, 전에 없던 성숙한 마음가짐을 준비했다. 결국 마지막이 올 만남이었고 날짜까지 정해져 있으니 다르긴 달라도 최상의 연습이 될 것 같았다. 즉, 프라하와 만났을 때 내 나름대로 헤어질 준비를 마쳤던 것이다. 흠뻑 적셔 사랑할 자신과 적당한 무모함으로. 이제 목마른 채 오아시스를 찾은 사슴처럼 홀가분하게 마시고 채우기만 하면 될 일이다. 그래도 후에는 어떨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계절은 말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을 즐기라고.

'후회하지 말 것' 귀에 들려온 그 소리는 내 혼잣말일지도 몰랐다.

어차피 끝이 올거라면 불러주리라 모두. 사랑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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