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집에 싹이 나고 잎이 났다.
결혼 후 우리부부는 하찮은 곳간을 늘려보자며 소소한 성취를 위해 '모든 곳에 모든 것이 다이써'에 들려 씨앗 키트 꾸러미를 집으로 데려왔었다. 각자 작은 방에서 자취를 할 땐 꿈꿀 수 없던 것들을 하루하루 이뤄나가는 신혼재미에 빠져 새생명 심기라는 꿈도 하나 더 추가 되었다.
근데 그해 겨울, 유난히도 춥고 깊게 지나더니 우리마저도 낯선 동네에 무덤히 이 씨앗을 놓았을까. 오매불망 기다리던 남편의 애절함을 뒤로하고 새싹은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어울리는 이름도 붙여주고 매일 엎드려 종알종알 잘 자라고 있는거냐며, 뿌리를 잘 내리고 있는거냐며 보살피던 남편의 모습에 얼른 고개를 내밀어주길 바랬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던 그 성취는 이루어지지 않고 어느새 간절함으로 바뀌었다.
단지 '소소했던 그 성취'는 너무도 겸손치 못했다.
안타깝게도 해가 너무 잘 드는 집이지만, 낮에 사람이 없다보니 누구도 돌봐줄 수 없어 그런가. 위 사진 중 보이는 화분 중 한 아이만 잘 살아내고 있다. (맞벌이 부부에게 추천하는 여인초... 정말 기특하게 잘 자라요)
그렇게 1년이 흐르고, 모든 일은 준비없이 찾아오듯 갑작스럽게 수술을 했다. 생명에 지장없는 수술이었지만 걸을 수 없어 집에서 2~3개월 정도 재택을 하게 됐다. 온 지구가 역병으로 난리나도 절대 재택은 하지 않던 회사였고, 악착같이 강남역으로 출근하던 나였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온전히 쉴 수 있던 집에 재택환경을 만들어야하는 것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그냥 어쩌다 삐끗한건 줄 알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 자책하기 바빴다.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었지만 눈 뜨면 나가고, 해지면 집에 들어오던 것이 일상이었던 보통사람에겐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생활의 불편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은 별일 없이 끝났지만, 쉬운 케이스가 아니었기에 이 회복속도가 더딘건지, 엄살인건지, 괜찮은건지에 대해 알 수 없었다. 타고난 노예근성인데다가 걱정인형인 나는 이대로 집에 들어앉게 될까봐 불안이 커져만 갔다. 아마 이런 날 지켜보는 남편이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우리 부부에게 '바질씨앗' 한 봉이 도착했다. 유난히도 가물었던 올해 봄, 지독한 산불이 계속되고 새댁 주머니에서 조금이나마 보태보려는 찰나 제주도 희귀 식물 그림이 그려져있는 컵을 사면 기부활동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그 컵과 함께 사은품으로 온 씨앗이었다.
남편은 내가 조금씩 걷게되자 다시 배양토를 비롯해서 이번엔 조금 더 탄탄한 흙들을 종류별로 구입해왔다. 그리고 거실 한 바닥에 신문지를 가득 깔고, 오이소와 방울이를 심었던 키트 화분에 씨앗들을 뿌렸다. 그리고 흠뻑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었다. 그러자 정말 신기하게도 씨앗을 감싸는 물막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이 수분 보호막 안에서 쉬다가 싹이 나올거야"
신기하게도 한번 생긴 물막은 자궁 속 양수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그 물막을 보고도 처음엔 별 기대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물을 주더라도 얘는 죽어버릴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가 재택하는 책상 한 켠에 은근히 보이는 구석, 불편한 무릎을 조금이라도 다른 자세로 놓으려하면 열심히 물막 안에서 애쓰는 것 같아 보이는 씨앗들이 보였다. 나는 눈에 띌 때마다 물을 주고, 닫아놓았던 암막 커튼을 열어 작게 열어둔 창가 앞으로 바람을 느끼게 화분을 옮겨 놓았다.
그렇게 2~3일이 지났을까. 보통 3일이 지나면 발아를 한다고 하는데 우리 화분에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렇게 그 다음날 4일 저녁에도 아무런 발아소식은 없었다. 열심히 돌보아도 안되는건 안되는가보다 저 흙은 어디에 갖다 버려야하나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남편이 이거봐! 라고 했다.
5일쯤 지나 남편도 재택하는 날 아침, 바질에 싹이 났다.
남산만한 등짝을 말아 옅게 틔운 바질 새싹을 보는 남편의 등이 기세등등하다. 이 날 이후 눈 뜨고 뒤 돌면 바질은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오전 10시 30분쯤되면 정남향인 거실창을 열어 창 틀에 바질 화분을 두고 물을 준다. 그럼 기분 탓일까 '호들호들' 살랑인다. (약간 오글거림 주의)
어느 새 봄은 벌써 지나고 날도 많이 따뜻해졌다. 보조기 하는 날이 점점 줄고 나는 마지막 진료일을 정하고, 이제 곧 출근을 앞두고 있다. 기다리고 때가 있다는 말은 언제나 맞는 말이지만, 그 말에 신뢰를 갖고 기다리는 성인으로 크기 쉽지 않다. 근데 기특하게도 저 옅은 싹들이 그렇게 크고 있다.
하지만 이 중에도 언제나 느린 아이는 있다. 어제 간만에 저녁자리를 하고 퇴근한 남편에게 호들갑 떨며 오늘은 더 자란 것 같다며 오늘 내가 돌본 바질들이 얼마나 푸릇한지 우쭐하며 자랑했다. 그러자 남편이 역시나 아쉽지 않은 리액션과 함께 이 아이를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엇, 엄청 작은데 나름 쌍떡잎이 났네!!"
남편이 얘기하길,
다른 자리에선 손가락 한 마디씩 크고 있을 때 유난히 싹이 안트는 씨앗 한 알이 보였다고 한다. 왠지 곧 싹을 틔울 것 같이 보이기는 하는데, 조금 두꺼운 흙이 위를 덮어 못나오는 것 같았다고.
저 모래같은 흙을 치워줘야 할까, 아니면 괜히 건드렸다가 그 마저도 포기해 아무것도 안나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에이 몰라' 하고 말았다고..
그렇게 괜히 모른척 한게 맘에 걸려 화분을 볼때마다 그 자리에 시선을 바로 두지 못했는데 그 자리에서 저 싹이 나왔다고 한다.
심지어 나름의 모양을 갖추고 말이다.
오늘 아침에 보니 이 녀석 열심히 더 크고 있다. 유난히 지난 새벽 더 추웠는데도 말이다. 조금 늦어도 같은 바질이라며. 이렇게 모양도 똑같고 잎은 작아도 줄기는 똑같이 두껍다고. 그렇게 열심히 크고 있다. 내가 혹여나 끊임없이 나를 의심하고 자기확신이 부족한 시점이 오면 남편은 언제나 '내가 그 불안은 없다는 걸 보여줄게'라 말하고 내가 볼 수 있도록 행동한다. 이 작은 새싹이 그 중 하나다. 이 옅은 새싹이 그렇게 울컥한다.
세상사람들 우리 바질이 좀 보세요. 이렇게 잘 자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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