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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기옥 Mar 13. 2021

위안의 음식

김치찌개

김치찌개를 끓였다. 


작년 초겨울에 옥섭 씨가 보내 준 김장김치다. 냉장고에서 꺼내 한 조각 꺼내 먹어봤다. 몇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톡톡 터지는 알싸한 맛이 살아 있다. 하, 다행이다. 배춧잎 몇 장을 머리에서 잘라내 잘게 썰었다.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렸다. 냉장고에는 재료가 별로 없다. 반쪽 남은 양파와 시들시들해진 느타리버섯이 몇 가닥 있기에 대충 썰었다. 돼지고기도 있을 리가 만무하다. 참치캔을 따서 기름을 버렸다. 물이 끓어올랐을 때, 준비해둔 김치와 재료들을 착착 넣었다. 김치 국물도 넉넉히 부었다. 잠자코 찌개가 끓어 재료 익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고요했던 방안에 김치찌개 끓는 소리와 냄새 가득했다.


오래간만에 밥도 새로 지었다. 특별한 반찬이 따로 없어도 괜찮았다. 내 마음을 다해 차린 밥상이었다. 별 것 없는 김치찌개도 김치가 맛있으니 찌개도 맛있었다. 뜨거운 국물을 후루룩 후루룩 먹었다. 조금 울컥했다.


요 며칠 혼신을 다해 준비한 제안서는 결국 일차에서 탈락했다. 승패는 병가지상사 아닌가. 게다가 이미 수도 없이 떨어져 봤으니, 괜찮았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면서 지난 며칠을 돌아보니, 실은, 괜찮지 않았다. 무능한 팀장 때문에 우리 팀원들만 고생했네. 미안하고 허탈하고 씁쓸하고 쓸쓸하고....


오늘만큼은 정성 들여 집밥을 먹어야겠다는 결심으로 차린 밥상이다. 세상이 나를 몰라봐줘도, 옥섭 씨 김치가 있으니 다행이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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