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처음 걸었다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걷기다. 목적지를 설정하지 않고 그저 어슬렁어슬렁 걸으면 도시가 보인다. 소리의 향연을 듣고, 다양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천천히 느리게 걸을수록 느끼는 게 많다.
옥섭 씨와 반둥을 걸었다.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이 많이 남아, 고풍스러운 매력이 있었다. 한 블록 지나고 모퉁이를 돌면 또 색다른 길이 이어졌다. 우리는 길 위의 사소한 것을 소중하게 보았다. 들꽃을 함께 감상하고, 건물 문양의 디테일을 살폈다. 반둥 사람들의 미소에 답했고, 하늘의 파란색을 좋아라 했다.
우리는 또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나 사는 이야기, 옥섭 씨가 생각한 이야기, 내가 서운했던 것, 그녀가 원했던 것을 발걸음의 속도에 맞춰 도란도란 이야기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더 많은 것을 몰랐다. 우리는 사랑했지만 친하지 않았다. 걸으면서 우리는 이만큼 몰랐다는 걸, 멀었다는 걸 알게 됐다.
"엄마 힘들지 않아?"
"내가 우리 딸이랑 언제 이렇게 걸어보니? 더군다나 해외에서. 너랑 걷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고 좋다."
옥섭 씨의 대답에 뭉클했다.
'엄마, 나도 엄마랑 걷는 게 제일 좋았어.'
우리는 이날 비로소 친해졌다.